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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금동반가사유상과 중국 사유보살상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3. 15. 21:59
과거 우리나라 역사유산이 '한국미술5천년전'이라는 이름으로 일본과 미국 각 도시에 순회 전시될 때 가장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단연 금동반가사유상과 신라 금관이었다. 금관의 경우, 언뜻 흔할 듯 여겨지지만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출토된 금관의 수는 13개에 불과하다.
그중 9개가 한국에서 출토돼 현재 8개는 한국에 있고 나머지 1개가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있다. 신라의 화려한 금관에 세계인의 눈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자에 따라 숫자에 약간 차이가 있고, 신라의 것은 망자의 얼굴에 씌우는 데드 마스크라는 말도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금관보다 반응이 더 뜨거웠던 것은 금동반가사유상이다. 여기서 반가(半跏)는 반(半)가부좌의 뜻으로 가부좌 형태에서 한쪽 다리 자유롭게 내린 모양새를 의미하며, 사유상(思惟像)은 생각에 잠긴 형상을 말한다. 사유의 형상을 돕는 것은 고개를 앞으로 살짝 구부리고 한쪽 뺨을 손가락으로 받치고 있는 모양새다. 불교에서 가부좌는 참선을 할 때의 앉음새를 말하는 것이므로 반가부좌는 그보다는 조금 릴랙스 한 자세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모양새로 눈을 가늘게 뜬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이 세계인의 마음을 뒤 흔든 것인데, 반가사유상의 사유는 석가모니가 태자 시절인 고타마 시타르타 때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첫 명상에 들었던 장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표적 반가사유상으로는 국보 78호와 83호을 두 점을 들 수 있다.
메트로폴리턴 박물관의 반가사유상 / 1957년 '한국 국보전'에 이어 '황금의 나라 신라' 전으로 지난 2013년 다시 뉴욕을 찾았다. 금동보살반가사유상은 '한국미술5천년'전의 대표 미술품으로 그 미소는 이미 세계인의 혼을 빼앗은 바 있다. (매경 DB사진) 국보 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이 두 점의 불상은 단연 인기 최고다. 그래서 2015년 열린 '고대불교조각대전'에서는 일 년에 한 점씩 교대로 전시되던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함께 전시되었는데 그 시너지 효과가 엄청났다. 그러자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 민병찬은 이 두 점의 불상을 함께 상설 전시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지금의 불교조각실 옆 영상실과 다용도실로 쓰이던 곳을 사유의 방으로 꾸몄다.
이후 사유의 방은 대박을 쳤던 바, 한시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 달리 지금껏 운영되며 내외국인 관람객들의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사유의 방은 개관 후 2년간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모았다는데, 지금도 늘 북적거려 인파에 가려지지 않은 불상 사진을 얻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아래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것을 빌려왔다)
나아가 지금은 불교 예술품의 전시장이 아닌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는 방으로 여겨지며, 영국박물관의 '로제타 스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와 같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예술품(Iconic artifact)이 되었다.
사유의 방의 두 블상 영국박물관의 '로제타 스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하지만 이 같은 구도는 불교 교리상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운 구도다. 이 두 개의 국보 사유상에 붙어 있는 '미륵'이란 명칭 때문이니 두 개 모두 금동미륵반가사유상으로 이름이 같다. 알다시피 미륵불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56억7000만 년이 지난 미래의 사바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님이다. 그와 같은 미륵불 두 분이 동시에 현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예전처럼 일 년에 한 점씩 교대로 전시되는 것이 불교 세계관에 부합되는 옳은 방식이라는 말도 간간이 들려온다.
조형상의 연원을 따지자면 미륵반가사유상 또한 뿌리는 고대 그리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미륵반가상도 다른 불상들과 마찬가지로 인도 미투라와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그 원류는 물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에 묻어온 헬레니즘 문화로서, 그리스 고금(古今)의 조각에서 사유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유하는 그리스 여신상 (오른쪽) 사유하는 그리스 여신상 생각하는 헤로도투스상 생각하는 소크라테스상 생각하는 아리스토텔리스상 도쿄 마츠오카미술관의 간다라 반가사유상 중국에서 나타난 첫 사유상은 3세기 삼국시대 오나라(吳, 229~280)의 청동거울인 '부처·봉황무늬 거울'(佛像夔鳳紋鏡) 속의 반가사유상으로 미투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유물로 알려져 있다. 북쪽 지역에서는 5호16국시대 북양(北梁)의 불탑에서 사유하는 관음보살상이 출현했고, 북위(北魏, 386∼534), 북제(北齊, 550~577)를 거치며, 북제의 불상이 고구려 · 백제 · 신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북제의 사유상은 하북(허베이)에서 먼저 유행했으며 이후 산둥으로 퍼졌는데, 산둥의 유행이 한반도로 옮겨 온 것으로 짐작된다.
오나라 '부처 ·봉황무늬 거울' 속의 반가사유상 중국 돈황석굴의 북위 사유보살상 중국 용문석굴의 북위 사유보살상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북위 청동사유보살상 남북조시대 말기 북주와 북제 / 북주는 577년 북제를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고, 이어 북주에서 나온 수나라가 598년 남조의 진(陳)을 정복해 천하통일을 이룬다. 북제 허베이성의 사유상은 주로 중남부 지역인 곡양(曲陽), 고성(藁城), 당현(唐縣) 등지에서 발견되었으며 수나라 시기까지 미쳤다. 이 유물들은 인도 나가르주나 간다라 미술의 영향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북제의 '대리석 쌍사유보살상' / 광배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타이페이 고궁박물관의 북제 '쌍 사유보살상' / 화려한 문양의 광배가 일부 남아 있다. 하북성 곡양 출토 대리석 쌍사유상 하북성 곡양 출토 대리석 사유상의 화려한 좌대 하북성 한단시 출토 북제 '쌍 사유보살상' 산둥지역의 사유상은 주로 허베이와 가까운 북부지역인 오장(五場), 청주(靑州), 복흥(復興) 등지에서 나타나며 쌍이 아닌 홀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시기적으로는 북제의 후기에 해당한다. 앞서 말한 대로 산둥지역의 사유상 문화는 우리나라 삼국에 영향을 주어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후반까지 고구려 · 백제 · 신라에서 모두 반가사유상이 제작되었으며, 7세기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전파된 후 1세기 동안 인기를 유지했다. 반면 당나라에서는 반가사유상이 거의 제작되지 않았던 바, 중국의 사유상 문화는 수나라가 멸망하며 끝난 것으로 여겨진다.
산둥에서 출토된 북제 석조반가사유상 미국 위싱톤불교미술관의 북제 후기(575년) 반가사유상 상하이 오로라박물관의 북제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의 북제 반가사유상 / 북제시대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중국 불교조각 가운데 최고작으로 꼽힌다. 국립중앙박물관의 7세기 고구려 금동미륵반가상 프랑스 기메박물관의 백제 금동미륵반가상 서산 마애삼존불 속의 미륵반가상 같은 듯 다른 듯.... 신라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 주구지(中宮寺) 소장 목조 반가사유상이 2016년 한국과 일본에서 교류 전시된 적이 있다. 크기는 한국 반가사유상이 높이 83.2㎝, 일본 반가사유상은 126.1㎝로 일본 것이 크다. 자주 비교되는 일본 광륭사 목조 반가사유상과 신라 금동반가사유상 / 한국 것은 높이 93.5cm, 일본 것은 123.5cm이다. 이 반가사유상이 신라의 불상임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 고(故) 황수영 박사에 의하면 이 불상은 경주 남산 서쪽 내남면 삼불사에서 발견됐다. 일본 국보 1호 광륭사 목조 반가사유상이 안치된 광륭사는 신라사람 진하승(秦河勝, 하타노 가와카쓰)이 설립한 절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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