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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
    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5. 4. 7. 20:37

     

    앞서도 말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의 성공회 교회는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건물을 비롯해 모두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신앙과는 별개로 발 닿을 수 있는 곳이면 찾아가 보고 사진을 올려놓곤 하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강화 온수리성당을 찾았다. 

     

    성공회와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1890년 9월 29일, 조선 초대주교로 서품을 받은 영국인 존 코프(한국명 고요한) 신부가 제물포 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런데 당시 조선에 상륙한 서양선교사들은 약간 특이한 협정을 맺었다. 선교지를 분할해 싸우지 말고 각자도생하자는 신사협정과도 비슷한 선교지 분할 협정을 맺었던 것이다. 이때 강화도는 감리교와 성공회의 선교지가 되었다.

     

     

    인천 내동교회 화단의 존 코프(Bishop Charles John Corf ) 주교 흉상

     

    그 외 평안도 황해도 경상도 서울은 미국 북장로교, 전라도와 충청도는 미국 남장로, 강원도는 미국 남감리교, 충청도는 침례교, 부산은 호주장로교, 함경도는 캐나다장로교가 맡았다. (물론 이것이 항구적이지는 않았지만 이와 같은 선교지 분할 협정은 초기의 출혈경쟁을 막고 나아갈 지역이 제시된 점에 의의가 크다)   

     

    이에 강화도 선교에 들어간 존 코프 신부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포교를 할 수 있을까 고심하다 한옥 성당을 지어 현지인의 거부감을 덜자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던 바, 1900년 전통 한옥양식의 외관에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꾸민 1호 교회를 강화읍에 설립했다. 나아가 그는 성당 입구에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고 쓴 한문 현판을 걸었고, 성당 뜰에는 유교와 불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와 보리수나무를 심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었다. 

     

    그의 의도는 멋지게 들어맞았던 바, 초기 박해를 당했던 감리교와 달리 순조롭게 강화도 선교를 뿌리내릴 수 있었다. (반면 강화도 선교에 너무 치중한 탓에 내륙 선교가 늦어지기도 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 교회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424호로 지정되었다. 오래전에 찍었던 강화성당 사진을 다시 올려본다. 

     

     

     

    이와 같은 까닭에 성공회 강화성당은 서구 기독교 토착화에 있어서의 기념비적 산물로 꼽히기도 하는데, 그런 면에 있어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온수리성당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52호인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은 강화성당의 성공에 힘입어 1906년 강화도에서 두 번째로 건립한 성공회 교회로 역시 한옥성당이다.

     

    이 교회는 1906년 영국인 주교 마크 트롤로프(Mark N. Trollope, 한국명 조마가)가 건립했으며 영국성공회의 지원 없이 신도들의 성금으로 건립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영국 성공회의 성공적 한국 정착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옥 본당 건물은 9칸 옆면 2칸으로 당시로서는 규모가 큰 건물이었으며 삼문(三門) 솟을대문 형식의 종루를 둔 것이 이채롭다. 솟을대문을 들어서 위를 바라보면 매달린 서양종이 보인다. 입구 쪽에 역시 한옥형식으로 지어진 생활공간인 사제관이 있고 본당 옆에는 2004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새 교회가 있다.

     

     

    온수리 성당 내의 주교 조마가 영세기념비

     

    본당의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용마루 양끝에는 연꽃 모양으로 된 곡선미를 살린 돌십자가가 달려 있다. 이 역시 한국의 전통을 가미한 듯하다. 겉으로는 한옥 외관이지만 안에 들어서면 강화성당과 같이 한식과 서양식 건축양식을 절충해 꾸몄음을 알 수 있는데, 우선 입구에 놓인 주물 난로가 눈길을 끈다. 그 외도 눈여겨 살펴볼 것이 많은 곳이다. 

     

     

     

    성공회(聖公會)란 단어는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한 공회'(거룩한 보편적 교회, The Holy Catholic Church)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나에게 이 성공회를 한마디로 설명하라 하면 '개신교도 아니고 천주교도 아닌 범 기독교계에 속하는 영국의 종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성공회 사람들은 성공회를 영국 기독교로 정의하거나 '영국국교회'로 지칭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 태생이 영국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성공회 사람들은 성공회가 영국 종교개혁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국왕 헨리 8세(1491~1547)의 바람끼의 산물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력왕 헨리 8세가 본부인을 버리고 앤 볼레인이라는 새 애인과 결혼하기 위해 로마교황청에 이혼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성질이 난 헨리 8세는 로마교황청과의 결별을 선언했고, 이어 영국 왕을 수장으로 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든 것이 바로 성공회의 시작이다.

     

     

    고전 '천일의 앤'(Anne Of The Thousand Days)의 포스터
    뉴 버전 '천일의 스캔들'
    '천일의 스켄들'의 한 장면 / 궁중 시녀 엔 볼레인은 헨리 8세의 이혼을 성사시키고 결혼에 성공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고 남편 헨리 8세의 바람끼도 도졌던 바, 이러저러한 구실로 결국 사형에 처해진다. 감옥에 갇힌 그녀가 죽기 직전 왕비로서 호사했던 날을 헤아려보니 꼭 1,000일이었다는 야그.

     

    그 새로운 종교의 바탕은 물론 기독교였고, 당시 영국까지 불어닥친 종교개혁의 열풍은 때마침 좋은 불쏘시개가 돼 주었다. 성공회 사람들은 성공회는 세계적인 신앙공동체(Anglican Communion)이며 '영국국교회'는 그 가운데 하나인 잉글랜드 교회(Church of England)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지만 성공회의 본부는 분명 영국 캔터베리에 있는 켄터베리 대성당이다. (아울러 켄터베리 대주교는 명목상이든 어떻든, 좌우지간 세계 성공회 공동체를 대표한다. 세계에서 성공회를 국교로 삼은 나라 역시 영국이 유일하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의 영어 표기는 Anglican Church가 아닌  Sungkonghoe를 사용하고 있어 나름대로의 독립성을 추구한다. 좌경 이념으로도 유명한 성공회대학교도 뿌리는 강화도에서 비롯되었던 바, 1914년 강화읍 관청리에 세워진 '성 미카엘 신학교'가 전신이다.

     

    1994년 성공회신학대학에서 성공회대학교로 이름을 바꾼 이 학교는 언제부턴가 좌익의 선봉에 서며 세인의 주목을 받았는데, 내 생각에는 1990년대 이재정 총장이 유명 진보학자들을 영입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시교육감을 지내며 전교조의 대부로 불리던 조희연 전 교육감도 이 학교 출신이며, 그 외도 유명 좌익 인사가 수두록하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항동의 성공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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