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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암산 불암사와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6. 14. 22:44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자리한 불암사(佛巖寺)는 불암산 자락에 있다. 즉 불암산에 있다 하여 불암사인데, 사찰 입구에는 '불암산은 봉우리가 모자를 쓴 부처 형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는 안내문이 서 있다. 그렇다면 불암산은 '산 전체가 불국토(佛國土)인 신(神)적인 산인 셈'이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부처는 신이 아니기에 '신적'이라는 말 자체가 오류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서 본 불암산
    이와 같은 모양새가 언뜻 모자를 쓴 것도 같다.
    절 입구의 안내문

     

    기독교의 야훼는 두 말할 것 없는 절대자요 신이다. 하지만 불교의 석가모니는 깨달은 자일뿐 신은 아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석가모니와 같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바, 성불(成佛)하시라는 말은 불가의 더없는 덕담이다. 까닭에 서양인들은 불교에 대해, 1)부처가 창조주와 같은 신이 아니고, 2)천당과 같은 내세관 없이 윤회의 사상을 근간으로 삼으며, 3)특별한 도그마 없이 자유로운 주제로 접근할 수 있는 개념으로 보아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깝다고들 말한다.

     

    나 역시 그 말을 옳게 여기며 천당이라는 장소를 지향하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보다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그 심오한 방법론을 선호하는 바, 불자도 아닌 내가 심심찮게 절을 찾는 이유도 거창히 말하자면 그와 같은 궁극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다만 그 방법이 절대 쉽지는 않겠으니 절의 입구인 일주문 주렴의 문구로 자주 등장하는, '역천겁이불고 긍만세이장금'(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 천겁이 지났어도 옛날이 아니며 만세를 지나도 항상 지금)라는 문구가 그 어려움을 한마디로 대변하는 듯하다. 

     

     

    불암사 일주문

     

    불암사 일주문의 주렴 역시 그러했는데, 그런데 엉뚱하게도 현판은 '천보산 불암사'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하늘의 보배를 뜻하는 천보산(天寶山)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붓의 모양을 닮아 필암산(筆巖山)으로도 불렸다는데, 그런데 대체 어디가 붓의 모양인지..... 그리고 불암산을 이를 때마다  서쪽 진관사, 남쪽 삼막사, 북쪽 승가사와 더불어 수도 서울을 수호하는 4대 사찰, 혹은 서울 인근의 4대 명승지라는 말이 덧붙여지는데,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불분명하다. 

     

    절 입구의 사적비에 따르면 불암사는 824년(신라 헌덕왕 16) 지증대사가 창건하고 도선국사(827~898)와 무학대사(1327~1405)가 중창한 고찰이다. 이후 불암사는 조선시대에도 번창해 세조가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비는 국찰을 선정할 때 동쪽을 대표하는 사찰로서 선정했는데, 동쪽 사찰로 뽑혀 동불암(東佛巖)이라고도 불렸다 한다. 하지만 옛 당우는 하나도 남아 있는 게 없고 가장 오래되었다는 칠성각 당우조차 주초가 새것인지라 어디에서 옛것의 흔적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웅전 본존불인 목조여래좌상은 1743년 개금 기록이 있는 오래된 불상으로, 이때 영조의 딸 화평옹주(사도세자의 누나)가 시주자로 참여했다고 되어 있다. 화평옹주는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남영주 궁집의 주인이기도 하다. 불상은 경기도유형문화유산(제348호) 으로 지정됐다.

     

    좌우의 협시불은 관음전 내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모방해 재현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7세기의 유명 조각승 무염(無染)의 작품으로 2018년 보물(제2003호)로 지정됐다. 후불탱화인 석가삼존십육나한도 역시 경기도유형문화유산(제345호)로 지정된 귀중한 유물들이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대웅전
    대웅전 / 현판글씨는 한석봉의 것을 집자했다.
    대웅전 내 불상과 탱화
    불암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 / 무염스님을 비롯한 총 5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여 1649년 완성한 높이 67cm의 수작이다.
    대웅전 내 신중탱화
    신통전 · 칠성각 · 산령각 현판이 함께 걸린 당우
    보는 바와 같이 절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새것이다.
    대웅전 뒤편 마애삼존불도 현대작이다.
    마애삼존불 뒤의 오층석탑도 현대작이나 신라 오층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수작이다. 기단부에는 팔부신중상을 새겼다. 유행처럼 번진 복잡다난하고 화려한 탑을 세웠다면 실망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워 몇 번이나 올려 봤다.

     

    이 절의 자랑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관음전 내 목조관음보살좌상과 함께 보물 지정(제591호)된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이하 석씨원류)으로 4권 212매 완질의 목판본이다. 석씨원류는 붓다의 일대기와 붓다 열반 이후 서역 및 중국에 불법이 전파된 된 사실을 400 항목에 걸쳐 서술한 것으로, 인조9년(1631) 정두경이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얻어 온 책을 저본으로 하여 1673년에 지십스님이 양주 불암사에서 판각한 목판이다. 

     

    석씨원류는 국내에는 불암사와 고창 선운사에만 남아 있는 귀중본으로, 선운사판은 임진왜란 직후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가지고 온 것을 저본으로 하여 인조26년 선운사에서 판각한 것이다. 선운사판은 4권 각 100항목으로 모두 408항목의 설화가 수록되었고, 불암사판은 4권 각 100 항목씩 400 항목의 설화가 수록되었다. 불암사 석씨원류는 그 귀중함으로 인해 불교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현재 불암사 지장전 내에 전시돼 있어 직접 볼 수가 있다.

     

    불암사에는 석씨원류 외에도 금강경 · 마하반야밀다경 · 약사경· 대승무량수장엄경 ·부모은중경 ·묘법연화경 등을 포함한 31종 총 379매의 경판이 보존되어 전해지는데, 경판의 양 끝에 나무를 끼워서 판목의 뒤틀림을 방지한 지혜가 돋보인다. 이 경판들은 거의가 1635년(인조 13)과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것으로 현재는 동국대학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중 하나가 지장전 내에 전시돼 있다. 불암사 경판은 경기도 유형문화재(제53호)로 지정되었다.  

     

     

    지장전
    지장전 내 삼존불 / 지장보살의 협시불로 염라대왕이 모셔진 것이 특이하다.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
    불암사 경판
    지장전 앞 불암사 경판 안내문
    불암산 절벽 위에서 내려 본 불암사
    불암사 입구의 불암산유격대 충혼비 / 6.25전쟁 당시 불암산을 거점으로 활약한 20명 반공유격대의 충혼비로, 그들에게 도움을 준 불암사 주지 윤용문 스님의 이름도 함께 새겨졌다. 높이 2.5m, 너비 0.75m로 2020년 6월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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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