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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가 말하는 예수 탄생의 비밀(II)성서와 UFO 2018. 12. 30. 22:30
훗날 세례자 요한이라 일컫어지게 되는 요한의 모친 엘리사벳은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친척으로 누가복음에서는 그녀의 임신이 마리아의 임신에 앞서 언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할애된 지면도 많을뿐더러 서술 또한 훨씬 생생하다. 아울러 요한의 출생 스토리는 오직 누가복음에만 실려 있으며 더불어 그 가치 또한 귀중하다. 만일 루가가 자신의 책에서 그에 대한 출생을 다루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른 복음서에 밑도 끝도 없이 출현해 예수에게 세례를 주기까지 하는 이 원시인 같은 몰골의 사내를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했을까?
누가복음의 가장 오랜 기록(AD 9세기)이라 주장되는 양피지 문서
그럼에도 학자들은 그에 대한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니 그저 요한 자신의 말 그대로 ‘예수의 전도(前途)를 여는 광야의 외침에 지나지 않는 자’로서 국한됐다.(I am the voice of one calling in the wilderness, Make straight the way of the LORD) 이는 필시 그의 허망한 죽음에의 영향일진대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주목해왔고 그 결과를 '예수의 세례 때 출현한 UFO와 세례자 요한의 허망한 죽음', '성서와 UFO/세례자 요한의 정체' 등에 실었다. 그에 대해 할애된 지면이 많은 만큼 숨겨진 얘기 또한 많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루가 역시 그러했던 듯 여겨지는 바, 그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요한에 관한 비밀스런 이야기를 득의(得意)로서 자신의 책 첫 장에 담았다. 정말로 L자료가 존재했었다면 아마도 그 내용이 적혀 있었으리라 본다.(* L자료에 대해서는 '루가가 말하는 예수 탄생의 비밀 I' 참조)
단언하거니와 공관복음서 중에서 글쓴이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누가복음의 앞 글 뿐이다. 루가는 아마도 누가복음 1장 2절에 거론된 어떤 특별한 기록을 보았거나 남들이 못 들은 구전을 전해 들었던 바, 이를 소신껏 테오필루스에게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거니와 루가는 자신이 입수한 어떤 이야기를 테오필루스라는 높은 사람에게 자신 있게 소개하는 것으로써 편지글을 시작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소 엉뚱하게도 엘리사벳이라 하는 늙은 유다 여자의 임신에 관한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루가는 임신이 불가능한 노구(老軀)의 부부가 아이를 가진 사실을 주목하며, 그들의 생자(生子)의 과정이 사실이라 주지시키고 있는 것인데, 그 요지는 엘리사벳의 남편이자 유대교 제사장인 사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요한이란 이름의 아들을 점지해 주었고, 이것이 정말로 현실에서 발현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것은 예수의 불가사의한 탄생을 주지시키려는 전치(前置)에 불과했으니 곧바로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임신 과정이 서술된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누가복음 1:26-38)
이로써 누가복음의 서두를 장식한 엘리사벳의 잉태 사실은 예수라는 인물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음이 증명되는데, 이는 당대인에게도 동정녀의 임신은 납득되기 힘든 일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루카의 포석인즉 가임 연령이 지난 늙은이의 임신과 처녀의 임신이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는데, 기실 그의 노력은 공감되는 바 매우 크다. 당대의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불가사의한 잉태를 믿게 만드는 일은 21세기를 향유하는 현대인에게보다도 더 힘들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까닭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기독교가 종교로서 정립된 마당이라 신앙적 차원에서의 무비판적 믿음이 가능하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게 동정녀의 임신이니 승천이니 하는 일은 그저 혹세무민의 요설(饒舌)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러나 루가는 자신이 채록한 것이 그랬던 바, 예수의 탄생과 부활과 승천에 관한 내용을 데오빌로에게 써 보내게 된 것인데, 다만 그러함에 있어 구성상의 테크닉이 발휘됐다. 그 테크닉이란 보다시피 요한의 탄생이 편지글에 전치된 것으로, 이 편지글이(적어도 2통 이상이었을) 훗날 신약성서의 편집 과정에서 누가복음의 서문 격으로, 그리고 예수 제자들의 활동을 그린 사도행전(Acts)으로 나누어 실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누가복음이란 명칭도 그 때문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상의 편지글에 의지하자면 루가는 늙은이의 몸에서 태어난 요한의 탄생이나,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의 탄생을 동류(同類)의 불가사의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같은 편지글에서는 조상 아브라함의 이름이 거듭해 강조되는데, 여기서 루가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임신도 동류로 여겼다는 추측까지 이끌어냄은 무리겠지만, 이쯤에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사라의 잉태 과정을 살펴 볼 필요는 있을 듯하다. 구약과 신약의 내용이라는 것이 다를 뿐 그들의 잉태 과정이 매우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까닭인 바, 그 내용은 이러하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창세기 17:15-19)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오 하느냐.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할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세기 18:10-15)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창세기 21:1-5)
위의 내용과 같이 당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고령이었다. 게다가 사라는 생리까지 끊긴 수태 불능의 상태로서 본인조차 잉태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까닭에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장담을 비웃었지만 정말로 임신과 출산을 하였는데, 이상의 불가사의를 본인의 저작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고, 아내 사라는 90세의 고령이기도 했거니와 이미 생리까지 끊겨 임신이 아주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사라는 임신하였고 이듬해에는 여호와의 장담대로 출산에 성공하는 바, 아마도 아브라함의 몸에서 추출한 조직세포를 줄기세포로 하는 인간복제의 생산 방법이 시행되지 않았나 싶다. 이는 남자의 피부 등에서 추출한 세포를 배아 단계의 원시 세포로 만들어 불임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방법으로서 현재 우리 인류의 기술로도 가능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저 우주의 천문학적 거리를 극복할 수 있는 저들 외계인의 경우라면 시술의 단계는 물론 이보다 훨씬 축약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방법이라면 줄기세포를 이용한 영생까지도 가능하다는 이론에 이르게 되니 저들 외계인이 에덴 시절에 언급했던 ‘우리와 같은 영생’인즉 바로 이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우주여행이라고 해봤자 유인우주선으로서는 저 달나라를 갔다 온 것이 전부인 우리 인류이지만, 그 인류조차 지난 20세기에 영장류 복제에 성공한 바 있다. 시술의 방법은 차이가 있었겠지만, 나는 이런 유(類)의 복제 생산 방법이 기원전 18세기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그리고 기원전 1세기의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똑같이 행하여졌다고 보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누가복음 내용에서 천사가 사가랴에게 강제적 함구 조치를 행한 것(그를 한시적 벙어리로 만듦)이나 엘리사벳에게 칩거를 강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러니, 엘리사벳이 ‘부끄러움’ 어쩌고 한 것은 그녀의 나름대로의 생각이었을 뿐, 괜히 돌아니며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얘깃거리 대상이 되지 말라는 의도였을 터였다.(기원전 18세기 아브라함이 살던 청동기 시대와 기원전 1세기의 로마 시대는 당연히 그 환경이 달랐을 것이기에)
이처럼 그 시기가 좀 더 오늘날에 가까운 까닭일까, 창세기의 기록과 달리 누가복음의 기록에서는 그와 같은 시술을 행한 시술자의 이름을 알 수 있으니 바로 가브리엘이다. 그리고 이 가브리엘이란 이름의 외계인은 그 여섯 달 후,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사는 마리아라는 처녀에게 나타나 보다 높은 이의 체세포를 그녀의 자궁 속에 착상시키니 이 태아가 바로 예수라는 이름으로 태어나게 된다. 아울러 그의 높은 격은 마리아가 친척인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은 과장으로써 증빙된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꼐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누가복음 1:39-56)
그리고 루가의 편지글은 엘리사벳이 낳은 아들 요한이 예수의 앞길을 준비하는 역할로써 태어났음을 강조한 후 세례자 요한으로 성장할 때까지 빈 들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끝을 맺는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누가복음 1:76-80)
이는 곧 요한의 부모인 스가랴와 엘리사벳이 죽었고 이후 요한은 들판에서 홀로 성장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그가 세례자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짐승가죽의 옷을 입고 메뚜기와 꿀을 주식으로 살았다는 마가, 마태복음의 내용과도 상통한다.
세례를 받은 후 광야에서 헤메며 그 정체성의 회복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 예수와 달리(* '방황하는 예수 I' 참조) 요한은 AD 28년(티베리우스 황제 재위 15년이 되는 해/누가복음 3:1) 자신을 만든 외계인으로부터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의 행하라는 지령을 받게 된다. 그리고 즈음해서 예수 역시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으나 이후 예수에게 버림을 받고 결국은 용도 폐기되어 그저 로마제국의 일개 분봉왕에 불과한 헤롯 안티파스의, 그것도 그 소실의 간계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 '세례자 요한의 정체' 참조)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에 실린 오브리 비어즐리의 삽화
요한의 목을 확인하는 헤로디아를 표현한 그림으로 앞서 소개했던 아래의 삽화와 더불어 유명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브리 비어즐리의 대표적 삽화
여기서 요한의 목을 들고 있는 여인은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이나 앞서 말했듯 정작 성서에는 살로메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자신의 저작에서 이렇게 밝혔다.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맏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6-13)
교회에서 익히 많이 들어 어쩌면 귀에 딱지가 앉았을지도 모를 이 말 속에는 예수와 요한이 사람에게서 난 자식들이 아니라는 내용이 명확히 포함돼 있다. 다시 말하자면 외계인의 피를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비록 그 격은 달랐지만(예수는 고위 엘로힘의 피를 받았으나 요한은 승천한 지구인 엘리야의 피를 받았음을 '세례자 요한의 정체'에서 말한 바 있다)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그들은 모두 외계로부터의 DNA가 입식된 존재가 되겠다. 그런데 예수의 달리 요한의 죽음은 무력하고 무의미하기 이를 데 없었던 바, 하늘나라의 일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사의 풍파를 뛰어넘지 못함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여기서 성서의 내용을 좇자면 요한은 그저 예수의 앞 길을 열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난 사람인 바, 비유하자면 그저 에이스 마라토너의 페이스 메이커에 불과한 자였다. 따라서 요한의 죽음은 그 역할의 마감이라 볼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으나 그 퇴장의 과정 만큼은 왠지 가련하고 또한 씁쓸하다. 아무튼 요한과 같은 페이스 메이커까지 만들어 붙이며 탄생시킨 예수였던지라 그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 기대되는 이유를 다음 회에 살펴보기로 하자.
-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 국내도서
- 저자 : 김기백
-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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