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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실오름 까마귀에 대한 오해
    탐라의 재발견 2022. 5. 10. 22:03

     

    강릉 오죽헌에 가보니 그 앞에 전에 없던 조형물이 하나 서 있었다. 우리나라 5만원 화폐와 5천원 권 화폐를 내리붙여 놓은 조형물로서 필시 두 인물이 난 곳임을 강조하자는 뜻일 게다. 생각해보니 모자(母子)가 이렇듯 화폐 속 인물이 된 예는 세계적으로도 드물 듯하다.  

     

     

    오죽헌 앞의 신사임당 이율곡 캐릭터 조형물

     

    잠깐 재미난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그런데 조폐공사에서는 이것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과거 5천원 권과 1천 원 권이 새로 발행되었을 때 퇴계 이황 선생의 후손들이 몰려와 '퇴계 이황이 율곡 이이보다 뛰어난 인물이거늘, 어째서 이이는 5천원 권의, 이황은 1천원 권의 모델이 되었는가' 따진 것이었다. 액면가에서 뒤지니 딴은 화가 날 법도 했다.

     

    잘못하면 애써 발행한 화폐를 폐기시키고 다시 새로운 화폐를 찍어야 될지도 모를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설마 그럴 리는 없었겠지만) 한 직원이 나와 그 이유를 다음 같이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맞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더 뛰어난 분입니다. 그래서 5천원보다 많이 유통되는 천원 권에 담아 사람들이 많이 보고 우러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퇴계 후손들은 수긍을 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국론 분열을 막고 엄청난 세금의 낭비를 막은 이 분은 훈장을 수여해야 마땅하다. ^^)

     

    그 5천원 권의 뒷면에는 이이의 생가인 강릉 오죽헌이 그려져 있다. 이이는 오죽헌 몽룡실에서 태어났다. 오죽헌은 사임당 신씨의 외할아버지 이사온(李思溫)의 집 별당으로, 율곡 이이뿐 아니라 사임당 신씨도 여기서 태어났다고 하니 뜻깊은 건물임에는 틀림없다.  

     

    오죽헌 / 오른쪽 방이 몽룡실이다. 신사임당이 율곡을 낳을 때 용이 날아드는 꿈을 꾸어 몽룡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오죽헌은 그 별당 뒷마당에 까만 대나무가 자라는 까닭에 까마귀 오(烏)자를 써 오죽헌(烏竹軒)이 되었다. 과거에는 오죽헌 주변의 대나무가 지금보다 훨씬 울창했는데, 국가의 관리도 없었고 꺾어도 무방했던 시절이라 그것으로 담배 파이프를 만들어 자랑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때 오죽이 속까지 까만 것을 알았는데, 겉은 물론 살과 뼈까지 까만 오골계(烏骨鷄)도 이 까마귀 오자를 쓴다. 

     

     

    5천원 권의 율곡 이이와 오죽헌

     

    하지만 정작 까마귀의 속은 하얀지 고려말 이집(李集)은 아래와 같은 시조를 지어, 겉으로는 흰 척하지만 속은 시커먼 사람을 비웃고 있다. 즉 밖으로는 고려의 충신인 척하면서도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한 자리 얻으려 애쓰는 세태를 까마귀에 비유해 비웃고 있음이다. 이집은 고려의 신하로서 충절을 지켜 여주의 초야에 은거하다 세상을 하직했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까지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까마귀 오자는 한문으로 '烏'이지만 '鳥'하고는 거리가 멀다. 옥편을 찾으면 鳥는 글자 자체를 부수로 쓰는 옹근 부수이나 烏자는 찾기도 쉽지 않다. 오자의 부수는 의외로 화(火, 灬)자이다. 보는 바와 같이 烏자는 鳥에서 획(ㅡ) 하나를 빼 만들었다. 까마귀는 온몸이 까만 데다 눈 또한 까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언뜻 그럴싸하다. 

     

    까마귀는 이 같은 외양으로 인해 흔히 흉조의 선입견을 가지나 까마귀에 있어 흉조(凶兆)나 흉조(凶鳥)의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우리 선조들은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 불렀다. 까마귀는 사람들처럼 집단생활을 하는데, 자신을 키워 준 부모가 늙고 병들면 그 자식이 어김없이 먹이를 물어다 공양한다. 어쩌면 까마귀는 사람보다 나을지도 모르니 인간은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다. 이러한 까마귀의 효성을 옛사람들은 반포지효(反哺之孝)라 불렀다. 먹을 것을 되물어다 갚는 효성이라는 뜻이다. 

     

    또 우리는 건망증이 심한 사람에게 까마귀 고기를 먹었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까마귀와 기억력, 혹은 IQ를 연관시킴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다. 뜻밖에도 까마귀의 IQ는 45~50 정도로 새 중에서 가장 높고, 고양이과 동물과 맞먹는다. 아래 사진은 긴 관 속의 먹이를 먹기 위해 굽은 철사를 사용하는 모습인데, 이 철사는 어디서 물어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구부려 만든 것이다. 그리고 적합하지 않을 경우 다시 고쳐 쓰기까지 한다. 이걸 보면 까마귀의 지능은 그 이상으로 여겨진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까마귀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은 까마귀 떼를 본 건 한라산 영실 오름  부근에서이다. 이 근방에서 집단적으로 모여사는 까마귀들은 특별히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괜히 위협적이라 예전에는 매우 마땅치 않게 여겨 쫓을 궁리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이 사는 쪽을 택한 듯하니, 영실 휴게소의 이름도 아예 '오백장군과 까마귀'가 되었다. 영실 코스의 가장 큰 볼거리인 영실기암 오백장군과 패키지로 관광상품화한 것이다. 인간의 지혜가 긍정적으로 발전한 사례이다. 한라산 오백장군 기암은 괜한 신비로움을 주는데 지금은 거기에 까마귀가 주요 조연으로 활약한다.

     

    금강산 1만2천봉의 축소판 같은 한라산 오백장군
    영실 휴게소 '오백장군과 까마귀'

     

    영실의 까마귀는 큰부리까마귀(jungle crow)로서 텃새에 속하며 까마귀과(Corvidae, 갈까마귀, 떼까마귀, 큰부리까마귀, 까치, 어치) 중에서도 가장 똑똑한 새이다. 따라서 큰부리까마귀를 '새대가리'로 치부함은 옳지 않으니 이를 테면 호두나 개암 같은 견과류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 놓아 깨먹는데, 이때 큰부리까마귀들은 반드시 파란불에서만 일을 본다. (반면 인간들은 빨간불에서도 무시로 길을 건너다 변을 당하기도 하니 까마귀는 저희들끼리 머리 나쁜 친구들을 '인간 대가리'로 부를지 모르겠다)  

     

     

    로드킬 당한 다람쥐를 먹는 까마귀
    가운데 까마귀 : "야! 그만 처먹어. 신호 바뀐다."

     

    까마귀의 군집 생활은 먹이를 혼자 처먹지 않는 이타심을 지녔기에 가능하다고 한다. 영실의 까마귀는 큰부리까마귀로서 텃새에 속하며 관광객들의 던져주는 먹이를 탐하기도 하지만, 주로 낙곡, 과실, 해충 등이 먹이가 된다. 가을철 울산 태화강 등에 몰리는 철새인 떼까마귀, 갈까마귀 등도 마찬가지로 해충을 잡아먹는데, 동남아에서 오는 철새와 달리 시베리아 청정지역에서 날아오므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레인저 감염 우려가 없다고 한다. 

     

     

    등산객들의 음식을 기다리는 영실 큰부리까마귀
    울산 태화강 까마귀 / 울산신문 사진

     

    문득 영실의 까마귀 떼에 질겁하던 옛 친구가 생각난다. 그때 한라산을 같이 올랐던 찬하는 이듬해 설악산에 갔다가 심장마비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재섭이는 소식이 끊겼다. 또, 몇 해전 같이 올랐던 광민이는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영실의 까마귀 / 한라산지킴이 오희삼 님의 사진
    추억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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