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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물난리와 을축대홍수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8. 21. 10:11

     

    8월 늦장마에 서울을 할퀴고 가더니 지금은 충청도 지방을 헤집고 있다. 그동안 행정당국에서 나름대로 치수(治水)를 했을 텐데 이처럼 큰물이 지나간 후에는 늘 무력감을 느낀다. 잠시 내려갔던 장마전선이 주말에 다시 북상한다는데 참으로 전에 없던 사태라 지구의 기후변화를 체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도 강남역이 잠기려나? 

     

    지난주 월요일 비 오는 강남역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다 미끄러져 계단 모서리에 등을 찧었다.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갈비뼈 2개가 금 갔단다. 여러모로 자세가 안 나와 (특히 잘 때) 고생하고 있는데 그래도 뒤통수를 부딪히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위안하고 있다. 비단 강남역뿐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날 일대는 정말로 난리였다. 주변보다 지대가 낮은 지역이니 물이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인데, 반면 배수시설은 열악해 큰물이 나면 피해가 반복되는 것이다. 

     

     

    지난 8일 밤 폭우에 잠긴 서울 강남역 일대
    불어난 물에 일시 버려진 차량들
    강남역 트위터 gif
    강남역 상습 침수의 원인 / 서울시 자료
    2020년 비왔을 때 강남역과 대치역 사이의 도로

     

    이와 같은 폭우 속에서 반지하 가구는 물론이요, 아파트와 빌딩 할 것 없이 지층에 위치한 구조물은 모두 피해를 보았다. 차량은 말할 것도 없고 인명 손실도 컸는데, 그런 가운데 서울 강남에서 무탈하게 비껴간 건물 하나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강남역 사거리 부근의 청남빌딩으로, 이 빌딩은 이번 큰물에도 피해를 벗어나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비책은 건물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를 길이 10m, 높이 2m의 차수문이 막아선 것이었다.  

     

     

    2011년 큰물 났을 때의 사진 / 이때 높이 1.7m였던 차수문은 더욱 방비를 강화해 2m로 높혔다.
    이번 물난리 때의 사진 / 높이 1m 이상의 물이 밀려들었지만 끄떡없음!
    성산엔지니어링이 설치했다는 차수문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은 왜소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는 없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피해를 현저히 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니, 반지하 주택의 경우는 계단 입구에 모래주머니만을 둘러놓아도 빗물이 급격히 밀려드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이 모래주머니의 효과는 생각보다 크며, 요즘은 물막이용 긴 모래주머니도 나왔다.

     

     

    생각 이상의 효과를 지닌 침수 예방 플러드백 물막이 모래주머니

     

    물론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을 터, 지금이라도 수방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인데 오래전 일본 도쿄와 사이타마현에서 직경 30m가 넘는 배수터널과 어마어마란 지하 저수조 공사를 벌이는 이른바 'G-Cant Project'라고 하는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OVER 아닌가 했지만 유비무환이었던 것 같다. 굳이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후 그곳에서 물난리가 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듯하다. 

     

     

    직경 32m 배수로
    높이 18m, 저류 용량 67만톤의 방수시설
    도쿄 'G-Cant Project'의 일환이다.
    오사카 시의 초대형 DIY 배수관 시설

     

    치산치수(治山治水)는 옛부터 나라의 근본이자 제왕의 의무로서 일컬어져 왔다. 그래서 수표(水標)를 설치해 큰물에 대비했던 세종대왕 같은 이를 성군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빅토르 위고가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에서 해수(海獸)의 내장 같다고 한 2,100m 길이의 하수 시설은 없었다. (이 하수도를 통해 장발장은 총을 맞은 코제뜨의 남친 마리우스를 업고 탈출시킨다) 하지만 언뜻 열악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한양의 배수 체제는 의외로 뛰어난 듯하였으니, 구한말 육영공원 교사 길모어(George W. Gilmore)가 본 하수 시설은 다음 같았다.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의 수표
    파리의 하수도
    파리 하수도 박물관

     

    「한때 이곳에는 하수 처리 체계가 정비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도시 전체에 걸쳐 그 중심부에 개천이 있는데 가장자리에 벽을 쌓고 너비를 6~25피트로 확장했다. 하수도 깊이는 아직도 4피트 정도이며 모래와 오물이 섞인 진흙이 밑에 깔려 있다. 이 작은 수로를 통하여 도시 전체의 모든 하수와 오물이 장마철에 모두 쓸려간다. 이 도시의 설계를 살펴보노라면 이 하수 처리의 지침만 내려준다면,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건장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용이한가를 알게 될 것이다.」 <서울풍물지(Korea from it’s Capital: with a Chapter on Missions)>

     

     

    발굴 복원된 광화문 중학천 배수 유구

     

    하지만 이 같은 시설도 1925년 을축년에 일어났던 '을축대홍수' 앞에는 무력했다. 을축대홍수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7~8월에 중부 지역에 큰 장맛비가 내려 민가 273채가 유실되고 647명의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역사상 최대·최악의 홍수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장마비는 한강뿐 아니라 압록강 · 대동강 · 임진강 · 금강 · 만경강 · 영산강 · 섬진강 · 낙동강까지 모두 범람시켰는데 이중 한강 유역은 753mm의 기록적인 강우량을 남겼다.

     

    이 기간 중 서울은 특히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 무려 400~500mm의 비가 쏟아졌는데, 이 폭우로 한강 일대는 물론이요, 서울 전체가 난리가 났으니 범람한 한강물이 남대문 앞까지 말려와 물바다를 이루었다. 지금 남양주에 있는 정약용 생가 여유당(與猶堂)과 서울 망원동 망원정(望遠亭)도 모두 그때 부서져 쓸러 나간 것을 미루어보면 그 범위와 위력이 능히 짐작이 간다. (지금의 유적은 모두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망원정 / 을축대홍수 때 유실되었으나 1989년 유구의 일부가 발견되어 복원시켰다. 대홍수를 이룬 한강물이 이 높은 곳까지 쓸고 갔다.
    자주 인용하는 이 사진은 을축대홍수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 당시의 용산역 부근 사진으로 용산역의 1층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윤영수는 소설 <광야에서>에서, "부지기수가 집을 잃었고 부지기수가 죽거나 다쳤으며 그보다 더 많은 부지기수가 당장 굶주림 앞에 알몸으로 섰다. 비가 그치자 돌림병이 돌았고 부지기수가 더 죽었다"라고 당시의 참상을 묘사했다. 쓸려내려갔어야 할 청계천 등의 한강물이 역류되어 오히려 오물이 침투했던 것이니, 시민들은 물난리에도 마실 물이 없어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때 조선총독부는 전체 예산의 60%에 해당하는 1억300만원의 재산피해가 났다고 발표했는데, 특히 한강 중류인 서울 잠실 · 뚝섬 · 풍납 · 광진 · 마포 · 용산 일대의 피해가 컸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은 한강의 물줄기를 바꿀 정도였으니 당시 강북에 속했던 잠실은 강남이 되었다. 그 증거가 지금도 석촌 호수로서 존재하니, 당시는 이 호수가 한강의 본류로서 근방에 송파나루가 있었다. 그때의 대범람으로 인한 토사에 물줄기가 바뀌었고 지금은 호수가 된 것이다.

     

     

    송파나루터 표석

     

    이때 가장 큰 피해를 당했던 송파나루 일대 주민들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돈을 갹출해 비석을 세웠다.(당시 송파나루가 있던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사무소 앞) 주민들이 이 비석을 세운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고 이에 대비하라는 뜻이었을 게다. 1.7m 높이의 그 비석 앞면에는 ‘을축7월18일 대홍수기념’(乙丑七月十八日大洪水紀念), 옆면에 ‘증수사십팔척 유실이칠삼호'(增水四十八尺  流失二七三戶: 물이 14.5m나 불고 273호의 집이 유실됐음)이라는 짧고도 강렬한 문구를 새겼다.

     

     

    송파근린공원의 을축대홍수 기념비
    기념비 옆 안내문
    을축대홍수 이전까지 한강의 본류였던 석촌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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