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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도 내비에도 없는 김화 충렬사 & 겸제의 화강백전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3. 9. 23. 23:01
병자호란에 대해 띄엄띄엄 쓰고 있는 중이다. 병자호란은 임진왜란과 더불어 조선조의 양난(兩難)으로 불리나 임진왜란과 달리 승전의 기록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전쟁이 불과 52일간이라는 단시간에 끝난 점에도 있겠지만 그간에 일어났던 거의 모든 전투에서 패전을 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경기도 광주(廣州) 쌍령(雙嶺) 고개에서 벌어진 쌍령전투는 병자호란의 최대 패전을 넘어 한국 역사 3대 패전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의 칠천량해전, 한국전쟁 때의 현리전투와 더불어) 하지만 병자호란 때의 모든 전투에서 조선군이 패한 것은 아니니, 광교산(光敎山)전투는 드문 승전의 결과로 제법 유명하다. 약술하자면 이 전투는 1637년 1월 28일부터 1월 31일까지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전투로, 남한산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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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열하일기>와 정조의 문체반정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3. 7. 27. 23:57
유명한 는 1780년(정조 5) 연암(燕岩) 박지원이 8촌형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 축하사절로 중국에 갔을 때 이것저것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기록이다. 당시 박지원은 공식 직함이 없는 평범한 시골선비였다. 따라서 사신의 자격에 미달하였지만 정사(正使)인 8촌형 금성위(錦城尉) 박명원의 배려로 정사의 개인 수행원인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사신단에 합류할 수 있었다. 당시 박지원의 나이 44세 때였다. 박명원은 족보상 박지원의 삼종형(8촌 관계)으로 영조의 딸 화평옹주와 결혼해 금성위가 되었다. 그래서 그 끗발이 장난이 아니었으니 평소 호기심 많던 종질 하나쯤을 사신단에 끼워놓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신단이 북경에 도착했을 때 건륭제는 자금성에 없었고 만리장성 너머 열하(熱河)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