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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똥값에 팔아넘긴 노다지 운산금광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9. 13. 00:25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1889년 주미 대리공사로 근무하다 귀국한 이하영이 기차 모형을 가지고 와 고종에게 철도에 대해 설명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왔다. 이에 고종이 철도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이때부터 철도 도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의 학설은 2019년 2월,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2등 서기관이었던 월남(月南) 이상재의 이라는 문서가 발견되며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상재는 이 문서에 1888년 탈능돈(달링턴)이라는 미국인 사업가가 경인철도부설권을 따내기 위해 조선정부에 제시한 내용을 보고서 형식으로 자세히 수록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달링턴이 제시한 계약서 초안인 '철도약장(鐵道約章)'이 함께 수록돼 있는데, 결과적으로 달링턴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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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춘대성과 창의문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1. 6. 04:12
지금은 창의문 쪽에서 내리 이어지던 성벽 구간이 사라졌지만 탕춘대성(蕩春臺城)은 본래 창의문에서 북한산의 비봉까지 이어지던 성벽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수도 방위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은 조선왕조는 숙종조에 이르러 청나라 몰래 한양의 도성(都城)을 보강하고 북한산성을 새로 수축했다. 그러면서 도성과 산성을 연결하는 성벽인 서성(西城)을 쌓았는데, 그중 서쪽 구간 일부가 남아 있는 것이 탕춘대성이다. ~ 탕춘대성의 이름은 연산군이 놀던 탕춘대(蕩春臺)에서 비롯됐다. 연산군은 왕명으로 모집한 기녀(妓女)들인 흥청(興淸)을 끼고 흥청망청했는데 북한산 계곡의 홍제천이 내려다 보이는 이 근방도 주요 놀이터로서, 봄을 탕진한다는 의미의 '탕춘대'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었다. 탕춘대성을 축조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