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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룡사 비로자나괘불도와 오래된 의문 하나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3. 1. 7. 17:39

     

    서울 종로구 숭인동 청룡사 비로자나 괘불도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다 하여(2022년 12월 29일) 들여다보았다.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는 조선 23대왕 순조 내외의 장수를 기원하여 상궁 최씨가 발원하고, 민관(旻官, 敏寬)스님 외 다섯 화승이 조성한 작품으로 18세기말~19세기 초 서울·경기지역에서 활동한 민관스님의 대표작에 속한다.

    문화재청은 "협시불의 위치를 본존불보다 반걸음 정도 앞세워 배치하는 등 19세기 초 서울·경기지역에서 선보인 새로운 괘불 양식을 반영한 첫 작품이고,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보관을 쓴 보살형으로 구성한 유일한 삼신불 도상이라는 점, 18세기와 19세기 신·구 양식을 모두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 등에서 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밝혔다.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
    비구니 절 정업원 자리에 세워진 청룡사 / 유배 가는 단종과 부인 정순왕후가 마지막 하룻밤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서울·경기 지역의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는 확실히 그 시절의 트렌드라고 할만하니 서울 흥천사, 남양주 봉선사, 도봉산 천축사 등에서 같은 유형의 괘불도를 볼 수 있으며, 18세기말에 제작된 서울 상계동 학림사의 삼신괘불도, 화성시 용주사의 삼세불회도와도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서울 흥천사의 것은 그 시기도 비슷하고 (1832년/순조 32) 형태도 매우 흡사한데, 그도 그럴 것이 흥천사 삼신괘불도를 제작한 17명의 화승 중의 대표격인 화담신선(華潭慎善)은 민관스님의 화풍을 계승한 인물로, 19세기 경성화파(京城畵派)의 일인자로 불리기도 한다. 

     

     

    서울 흥천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
    신흥사 자리에 세워진 흥천사 / 1865년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건립되었으며 2022년 사진과 같이 입구가 새롭게 단장되었다.

     

    괘불은 사찰의 옥외 의식 때 내거는 대형 불화로서 '걸 괘(掛)' 자를 쓴다. 괘불은 행사 때는 나무로 틀을 만들어 거는데, 대개 길이 6~7미터 정도이며 14미터가 넘는 대형 괘불탱도 있다. 건물 3~4개 층 정도에 해당하는 높이이다. 사단법인 성보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괘불탱은 120점이며, 가장 오래된 것은 1622년에 조성된 나주 죽림사괘불도이다. 전문가들은 괘불도에 대한 기록이 17세기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임진왜란 이후에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괘불도는 그림 속의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영산회상괘불도를 비롯하여 아미타불괘불도, 미륵불괘불도, 노사나불괘불도, 지장보살괘불도 등으로 나뉘며 당연히 석가모니불의 영취산 설법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괘불도가 으뜸으로 많다. 노사나불괘불도도 많이 조성되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 불교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화엄사상의 영향으로 여겨진다. 노사나불은 비로자나불의 다른 이름으로 산스크리트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각각 번역된 것이다. 바이로차나는 진리를 발하는 태양이라는 뜻이다. 

     

    비로자나불은 <화엄경>과 <법망경>의 교주로서, 만들어진 과정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 탄생은 불교가 철학이 아닌 종교임을 말해준다. 겉으로의 교리만을 보자면 불교를 종교로 보기는 힘들다. 해탈로써 무(無)를 지향하고 내세 없이 윤회하며 인간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중요 교리는 적어도 절대자를 의지하여 평안과 발복(發福)을 추구하며 내세를 믿는 종교의 기본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필시 고대인도의 철학개념이 불교사상의 저변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비로자나불은 다분히 종교적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 / 신라 경문왕 5년(865)에 조성된 불상으로 당시 유행한 비로자나불은 선종의 발흥과 연계성을 지닌다.

     

    석가모니는 불교의 최고신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그래서 그를 신적인 초월자로 받들어 의지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만들어진 불상이 바로 비로자나불로서, 이 불상은 석가모니불가 설법한 진리 자체를 형상화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로아스터교의 신 이후라마즈다의 영향으로 보는 학자도 있는데 전혀 무시할 것은 아니다)

     

    <범망경>에 의하면 비로자나불은 천엽연화대(千葉蓮華臺)의 단상에 앉아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왼손은 무릎 위에, 그리고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는 모습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권인(양 손을 주먹 쥔 다음 왼손 집게손가락을 펴서 오른손으로 감싸 쥔 모양)의 형상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1963년 국보로 지정된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 / 858년(헌안왕 2) 조성된 불상으로 지권인 형상이다.
    일본 국보인 동대사 대불 / 747년 신라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높이 15m의 철조비로자나불로서 <범망경>의 내용에 충실히 조성되었다. 비로자나불의 인계(손모양)가 신라 하대에 변형되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개성 적조사 철조여래좌상 / 개성시 방직동 고려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보 제137호로, 손이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돼 있으며 인계 변화의 형태를 살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로자나 부처님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이나 대광명전(大光明殿), 혹은 비로전이나 화엄전에 봉안되는데,  대적광전이나 대광명전의 경우에는 보통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협시불로 둔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다시피 그 세 부처님은 동일인이다. 그래서 매우 어색하다.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모니 부처님의 협시불로는 일반적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로 배치되나 때로는 관음보살상과 미륵보살상 등이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어느 쪽이 됐든 협시불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동일인이 아니므로 개념의 충돌이 없다. 유명한 불국사의 경우는 법신불(法身佛) 비로자나불과 보신불(報身佛) 아미타불, 화신불(化身佛) 석가모니불을 각각 다른 법당에 모시고 있어 동일인이라 해도 당장의 개념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불국사 대웅전
    아미타불을 모신 불국사 극락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국사 비로전

    그러나 위에서 말한 비로자나 삼신괘불도처럼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이 함께 출현하는 경우는 당황스럽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노사나불은 구라마습(쿠마라지바)이 <범망경>을 번역하면서 만들어낸 바이로차나(Vairocana)의 현학적 산물이다.

     

    그리고 <법망경>에서의 노사나불은 결부좌를 하고 앉아 거대한 침묵에 잠겨 있는 존재로만 등장하는 바, '석가모니가 설법한 진리=비로자나불(혹은 노사나불)'이라는 논리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마치 유일신 하나님을 외치면서도 성부(The Father 여호와), 성자(The Son 예수), 성령(The Holy Spirit)이 하나임(=삼위일체)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모순과도 비슷하다.  

     

     

    성부, 성자, 성령의 3신(神)을 그린 정교회의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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