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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타워 돈의문 빌딩 지하의 타임캡슐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3. 2. 6. 20:37

     

    앞서 서대문 경기감영에 대해, 역대 경기관찰사(민선 경기도지사 포함)와 더불어 살펴보았다. 언급한 대로 장려했던 경기감영 건물은 1903년 한성부(서울시청)가 전용(轉用)했고, 이어 징상평양대(徵上平壤隊, 평양에서 올라온 진위대대)와 고양군청, 경교보통학교(京橋普通學校), 경성감옥의 분감 등으로 쓰이며 교란되기 시작했다.

     

     

    한성부로 쓰일 때의 경기감영 선화당
    고양군청으로 사용될 때(1914~1928년)의 선화당
    고양군청으로 사용될 때의 선화당 내부
    경성감옥 분관이 설치되었을 때의 사진 (중앙 왼쪽의 긴 건물)

     

    다만 그때까지는 형태가 유지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1921년 서대문 경찰서가 신축되고 1923년 적십자병원 간호부양성소와 적십자진료소(1926년 일본적십자 조선본부병원으로 개칭됨)가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교란되었다. 선화당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는 1980년대 유석당빌딩과 박영빌딩이 들어서며 원지형을 완전히 상실했는데, 경기감영의 본청인 선화당은 변변한 사진조차 없고, 남은 것이라곤 현판(추정)뿐이다. 

     

    그렇게 사라져 간 경기감영의 흔적이 2020년 건립된 D타워 돈의문 빌딩 공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지상 26층 지하 7층의 초대형건물이다 보니 지하를 깊게 파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간 지하에 잠들어 있던 경기감영 흔적의 일부가 드러나게 되었던 것인데, 그것이 지금 D타워 돈의문 빌딩 지하 2층에 부분이나마 전시돼 있다. 과거에는 건축물 건립시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면 무시하고 서둘러 덮었다. 공사 지연은 물론이요 최악의 경우 건물이 지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D타워 돈의문 빌딩의 건축주는 발굴비용을 가감없이 부감하였고, (지금은 법이 바뀌어 792㎡ 이상은 건축주가 발굴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나아가 지하에 'D타워 돈의문 박물관'이라는 유적전시관을 마련했다. 박물관이라 부르기에는 옹색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도심 빌딩에 공간을 할애하여 전시관을 마련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임대오피스 빌딩으로 지어진 이 건물에는 현재 DL케미칼, DL에너지 등을 거느린 DL그룹이 입주해 있는데,(우리에게는 대림산업으로 익숙한) 'D타워 돈의문 박물관'으로 인해 DL그룹의 격도 상승된 느낌이다. 선진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우리 눈앞에도 펼쳐지게 된 것이다. (이는 앞서 종로 센트럴폴리스 빌딩 지하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선례를 보인 바 있다)   

     

     

    D타워 돈의문 빌딩

     

    서대문역 사거리에 위치한 위 건물이 바로  D타워 돈의문 빌딩으로 그 옆으로는 서울적십자병원이 보인다. <경성부사>에는 "명치29년(1896년) 경기감영이 수원으로 옮겨감에 따라 감영 건물은 군영(징상평양대 군영)과 한성부 건물로 일부를 사용하였고, 일부는 일본거류민단소학교 사택으로 사용됐다. 그러다 대정3년(1914년) 벽제관 건물을 전용해 쓰던 고양군청이 옮겨와 소화3년(1928년)까지 14년간 사용됐으며, 그후 조선적십자병원 간호부양성소로 사용되다 동(同)병원이 바로 인근 땅에 설립됨에 따라(지금의 서울적십자병원) 유서 깊은 건물은 철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D타워 돈의문 빌딩의 위치

     

    이 기록에 의하자면  D타워 돈의문 빌딩은 '유서깊은 건물', 즉 경기감영에 해당되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아래 'D타워 돈의문 박물관'에 전시된 유적들은 경기감영 건물의 유구가 분명하다 할 수 있을 터, 100년 만에 공개된 타임캡슐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가히 삼삼하다. 'D타워 돈의문 박물관'의 아래 설명에 따르면 감영 정문인 포정문 자리에는 서대문우편국이, 선화당 앞과 영리청(營吏廳)이 있던 곳에는 서대문경찰서가, 선화당 뒤쪽의 건물은적십자병원이 건립되며 훼철되었다.  

     

     

    1930년경 경기감영지에 신축 건물이 건립되는 사진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
    박물관에 전시된 경기감영도
    지하 제1문화층 사진 / 근대문화층으로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 수술실과 병동의 유구가 보인다.
    지하 제2문화층 사진 / 조선후기층으로 경기감영 관풍각의 유구가 보인다.
    관풍각 유구의 일부가 전시돼 있다.
    관풍각 앞 원지(園池)는 원형 그대로 전시됐다.
    경기감영의 미니어처
    D타워 돈의문 박물관의 구조

     

    ▼ 경기감영과 관계는 없지만 차제에 그 남쪽의 서울미동초등학교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미동초등학교는 1896년(고종 33년)에 개교한 유서 깊은 초등학교로서 경기감영이 있던 시절에도 영리청 담장에 연접해 존재하던 그야말로 살아 있는 박물관과 같은 학교이다.

     

    서울미동초등학교 정문
    서울미동초등학교 후문

     

    ▼ 경기감영과 관계는 없지만 지하 유적전시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곳은 2015년 종로 공평동 도시환경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한양 중부(中部) 견평방(堅平坊)의 건물 터를 보존·전시한 곳으로서, 도심 정비사업에서 발굴되는 매장문화재를 최대한 '원위치에 전면 보존'한다는 '공평동 룰'을 적용한 첫 사례이다. 견평방은 조선 최고의 번화가이자 시전의 중심지로 왕족의 사가(私家)와 의금부·전의감 등을 비롯한 관청이 자리하였으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유적들은 그 건물들의 유지(遺址)라 할 수 있다. 

     

    전시된 유지 (부분)
    지하 3층 식당가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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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