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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미전쟁과 영러전쟁, 그리고 시대를 전혀 읽지 못한 김홍집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6. 26. 18:42

     
    얻어 온 중고 PC 문서 저장함에 있던 영미전쟁에 대한 짧은 글을 옮겨본다. 글은 '전쟁은 주로 3개의 전선에서 치러졌다'로 시작해 다음 글로 이어진다. 

    * 오대호 지방 및 캐나다 전선 

    인디아나주의 주지사로 인디언 땅을 빼앗는데 열심이었던 미국의 윌리엄 헨리 해리슨 장군은 전쟁 발발 다음 해인 1813년 켄터키주로부터 민병대, 의용군 및 정규군의 부대를 이끌고 캐나다로 진군했다. 9월 12일 올리버 해자드 페리 제독이 이리호에서 영국 함대를 섬멸했다. 해리슨은 디트로이트를 탈환하고 캐나다로 진격하였다. 쫓기는 영국군과 영국과 동맹한 인디언들을 템즈 전투(Battle of Thames)에서 크게 이겼다. 
     
    * 불타는 워싱턴 

    유럽 전선에서 나폴레옹군과의 전투에서 이겨 여유를 되찾은 영국 해군은 1814년 미 동해안 메릴랜드에 상륙하여 수도 워싱턴으로 진격하고, 건방진 미국인들에게 교훈을 남겨주기 위하여 미 대통령 관저를 불태워 버렸다. 전쟁이 끝난 후 관저를 수리할 때 불탄 자국을 숨기기 위해서 새하얀 페인트를 칠한 것에서 백악관(White House)이라는 이름이 유래된다.

     

    이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가 메릴랜드의 맥 헨리 요새(Fort McHenry)에서 벌어진다. 요새가 위치한 곳은 미국 해적선들의 근거지였다. 함포 사격과 25시간에 걸치는 격전이 끝난 후에도, 요새에는 여전히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이것을 바라보던 프랜시스 스콧 키라는 변호사는 눈물을 흘리며 성조기를 찬양하는 시를 읊었고, 이 시에 멜로디가 붙어 오늘날 미국의 국가인 'Star Spangled Banner'가 된다.
     
    시인이자 변호사로 일하다 참전했던 프랜시스 키는 이미 포로가 돼 영국 함선에 갇혀 있다가 문틈으로 본 영국군이 밤새도록 쏘아댄 로켓 무기의 붉은 섬광으로 인해 맥 헨리 요새를 빼앗겼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달리 다음날 아침 맥 헨리 요새에는 여전히 성조기가 게양돼 있었다는 내용의 미국국가 Star Spangled Banner는 뛰어난 멜로디로 인해 가사의 내용을 몰라도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이 가사말에  영국 작곡가 존 스탠퍼드 스미스가 작곡한 '천상의 아나크레온에게'의 곡을 붙인 노래가 미국국가 Star Spangled Banner이다. 
     
     

    위 내용에 소개된 삽화 / 1812년 미해군 Constitution호가 영국 해군 HMS Guerriere간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장면
    USS Constitution호 / Constitution호는 1797년에 진수한 목조 범선으로 배수량 2,200t에 50문 이상의 포를 장비하였다. 미영전쟁에서 영국 군함 게리에르호(號)와 쟈바호를 격파하였고, 1931년에 복원되어 미국 내 90여 항구를 방문하였다.
    USS Constitution호는 1934년 보스턴항에 계류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 배는 Old Ironsides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며 오늘날까지 미국 해군의 함적(艦籍)에 현역함정으로 남아 있다.
    전투가 벌여졌던 메릴랜드주 맥 헨리 요새 / 1814년 9월 영국군 함대는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공략을 위해 주요 방어기지인 맥헨리 요새에 포탄을 퍼부었다.
    맥헨리 요새는 1798년 프랑스인 장 퐁신이 볼티모어 항구를 방어하기 위한 설계한 오각형 별 모양의 성형(星形)요새이다.
    맥헨리 요새의 부감 / 트립 어드바이저 사진

     
    이처럼 격렬한 전투를 벌였던 영국과 미국은 지금은 더없는 맹방으로서 자유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한때 아메리카 대륙까지 지배했던 영국은 위의 영미전쟁 이후 아메리카 식민지를 상실했지만 여전히 굴지의 강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다 19세기말에 들어 이번에는 드디어 맹수의 본성을 드러낸 시베리아 북극곰과 싸워야 했다. 
     
    제국주의 러시아는 이미 19세기 초입부터 영토적 야심을 드러냈던 바, 세기말에 있어서는 세계 곳곳에서 제국주의 영국과 충돌했다.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으로 불린 전쟁이데, 그중에서 영국이 가장 취약성을 가진 곳이 극동(Far East)이었다. 무엇보다 영국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땅이기 때문이었다.

     

    지구는 둥글고 회전회므로 동·서가 따로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가장 동쪽 땅으로 치부된 것 역시 제국주의적 논리이다. 즉 영국이 런던 교외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경도를 나눠 그 오른쪽을 동쪽을 삼은 결과인데, 아무튼 조선이라는 나라는 영국과는 먼 나라였기에 관심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러시아는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는 제국주의 영·불로부터 청나라를 보호해준 베이징조약을 알선한 대가로 1860년에 연해주 땅을 할양받았다. 러시아가 연해주를 노린 것은 부동항을 원해서였다. 그래서 러시아는 연해주 땅의 가장 남쪽에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건설했지만 그곳도 겨울에는 얼었다. 이에 더 남쪽으로 가기를 원했는데, 그곳에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러시아가 조선 땅에 관심을 두자 우선 청나라가 급해졌다. 당시의 중국은 제국주의 열강에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음에도 조선만은 속방으로 두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와 맞붙을 자신은 없었던 바, 조선에게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과의 수교를 권했다.
     
    즉 러시아에 직접 맞설 힘도, 자신감도 없었던 청나라 리훙장은 이른바 균세론(均勢論, POWER OF BALANCE)을 이용해 러시아의 한반도 점령을 막으려 했던 바, 친중국(親中國) · 결일본(結日本) · 연미국(聯美國)하여 나라를 지키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1880년 7월 일본에 2차 수신사로 파견됐던 김홍집이 가지고 귀국한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하 조선책략)이라는 책의 내용이었다. 

     

     

    문제의 책 <조선책략> / 위의 내용이 쓰여 있는 부분이다.

     

    그때 김홍집 이하 수신사들이 일본에 머문 기간은 1880년 7월 6일부터 8월 말까지 약 2개월이었다. 그러면서 수신사들은 일본의 선진문물을 경험했는데, 이 무렵 김홍집 일행은 주일 영국공사로부터 만찬 초청장을 받았다. 대영제국(The Great Kingdom of British Empire) 명의의 공식 초청장이었다.

     

    하지만 그 꼬부랑 글씨의 권위를 알 수 없었던 김홍집은 그들이 초대한 만찬을 거절했다. 가봤자 2명의 통역자를 거쳐야 되는 과정이 번거로웠고, (조선어→일본어→영어) 또 중국 공사의 허락 없이 초대에 응했다가 괜한 후환이 있을까도 걱정스러웠다. 

     

    대신 김홍집은 주일 청국공사 허루장(何如璋)의 부름에는 응했다. 그리고 공사관인 참찬관(參贊官) 황쑨셴(黃遵憲)으로부터 <조선책략>이란 책을 받아가지고 돌아와 조선의 조야(朝野)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고종 17년 김홍집이 임금 앞에 내민 <조선책략> 청나라 외교관 황쑨셴이 리훙장의 뜻의 받들어 쓴 책으로, 내용인즉 러시아에 대한 방어책이었다. 

     

    내용은 앞서 말한 대로 "친중국(親中國)·결일본(結日本)·연미국(聯美國)하여 자강(自强)하라"(중국을 가까이하고, 일본 · 미국과 손을 잡아 조선 스스로 강해짐으로써 러시아를 막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리훙장의 뜻은 조선 내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으니, 영남 유생들로 대표되는 위정척사파들이 이른바 영남만인소를 올려 이 사문난적의 책을 가져온 김홍집을 처벌하라며 생난리를 피웠다. 우리 조선은 오로지 저 중국만을 상국(上國)으로 받들고 모셔야 하거늘, 일본과 결탁하고 미국과 같은 서양오랑캐와 연맹을 맺으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두쪽 나도 결코 해서는 안 될 금수 같은 행동이라는 항의였다. (이상의 바보천지 같은 혼란은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하며 물러날 때까지 지속됐는데, 조선백성들의 우매함이 지금의 현실과도 흡사하다)

     

    한편 이와 같은 혼란을 바라보던 영국은 결국 조선의 자강을 포기하고 말았다. 영국이 바라는 베스트 플랜은 조선이 스스로 강해져 러시아의 남진을 막아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에 대한 방책을 의논하려 하였으나 김홍집이 중국의 눈치를 보며 만찬 초청을 거절하는 바람에 나가리가 돼 버렸다. 앞서 말한 대로 영어를 못하는 김홍집으로서는 가봤자 불편하기만 했을 것인데, 이상은 마치 금번 헤이그 NATO 정상회담의 초청을 거절한 이재명 정부와도 진배없는 상황이다.  

     

     

    반면 서방 정상들은 다 모였다. / 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네덜란드 헤이그의 하우스텐보스 궁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의 일환으로 열리는 만찬에 앞서 빌럼 알렉산더드 네덜란드 국왕과 막시마 네덜란드 여왕,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헤이그 로이터, 사진 출처 뉴스1)

     

    영국은 별 수 없이 조선 땅에 자국의 군대를 파병할 수밖에 없었던 바, 1885년 3월 1일, 일본 나가사키항에 주둔하던 영국 동양함대사령관 도웰 제독이 군함 3척으로 남해 거문도를 점령했다. 이른바 영국의 거문도 점거 사건이었는데, 영국군은 이후 2년 동안이나 조선에 주둔하다 러시아 정부로부터 조선의 영토를 침탈할 의지가 없음을 보장받고 철수했다. (1887년 2월 5일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조선정부는 모르고 있었다는 거짓말 같은 현실)

     

     

    거문도에 정박 중인 영국군함 플라잉피쉬 호
    영국정부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거문도(Port Hamilton) 점령 명령서
    거문도의 영국군 묘지 / 그간 7명의 영국인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러시아는 계속 조선에 껄떡댔던 바, 영국은 조선의 이웃나라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으로 진출하는 러시아를 막게 했다. 조선을 위해 괜한 피를 흘리기 싫었던 영국이 동맹을 맺고 일본을 내몰아 대리전쟁을 시킨 것이었다. 이것이 1904년 일어난 러일전쟁으로, 영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일본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러시아에 승리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서 영국과 미국의 승인하에 한반도를 전리품으로 챙겼고,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영국이 일본을 내몰아 러시아와 붙게 만드는 당시의 현실을 묘사한 만화 / 상관할 바 없었던 미국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여유롭게 구경하고 있다.
    일본을 이용해 러시아를 치는 당시의 현실을 묘사한 만화 / 그 가운데 애꿎은 조선이 죽어나고 있다. 망치를 든 사람은 물론 영국이다.

     

    미국 행정부가 중국과 러시아를 막으려고 기획한 IP4(인도·태평양 지역 파트너로 선정한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4국) 정상 간 특별회담을 한국이 계속 거부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방어 계획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트럼프는 과연 어떻게 할까?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한국을 제외시키고 일본의 비중을 확대할 것이 뻔하다. 당장 한국에 주려고 했던 미군함에 대한 수리 계획도 일본이 대신 접수하려는 중이다. 결국은 일본의 국방력만 살찌우고, 미국의 분노를 산 한국은 고관세를 면치 못하게 될 듯싶다. 

     

    이렇게 되면, 이재명이 셰셰하던 중국이나 러시아에 변화가 있어, 혹은 김정은의 머리가 훽돌아 한국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그때 과연 미국이 도와주려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구한말 가치 제로의 대한제국을 버린 미국에 대해 원망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원망을 퍼부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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