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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좌식자, 만주 팔기군, 조기전역하는 한국군인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1. 30. 15:44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은 서진(西晉)의 진수(陳壽, 233~297)가 편찬한 역사책으로 위·촉·오 3나라에 관한 기록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삼국지연의>의 모본(母本)격인 책이기도 하니 원말(元末)의 나관중(1330?~1440)은 진수의 <삼국지>를 근거로써 여러 가지 살을 붙여 <삼국지연의>를 썼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삼국지>는 역사책이고 <삼국지연의>는 소설책으로서 아예 종류가 다르지만, 양자 모두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끼친 책임에는 분명하다. 
     
     <삼국지>는 위지가 30권, 촉지가 15권, 오지가 20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위지는 기(紀) 4권, 전(傳, 열전) 26권의 총 30권이며, 송대(宋代) 이전에는 위서(魏書)·촉서(蜀書)·오서(吳書)로 나뉘어 간행되었기 때문에 '위서 동이전'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위지 동이전'보다는 '위서 동이전'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동이전은 위서의 제일 마지막 권인 30에 오환(烏丸) · 선비(鮮卑) · 부여(夫餘) · 고구려(高句麗) · 동옥저(東沃沮) · 읍루(挹婁) · 예(濊) · 한(韓) · 왜인(倭人)의 차례로 구성돼 있다. 
     
    진수는 '동이전'에 그들 나라의 생활상과 풍속을 포함한 여러 가지 것들을 비교적 상세히 적어 놓아 고대 사료가 부족한 우리나라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 진수가 동이족의 이야기를 따로 남긴 것은 그들 나라들이 위나라와 관계있는 새외민족(塞外民族)이던 까닭이니, 고구려의 경우는 위나라 문제(文帝, 조조의 아들 조비) 때 고구려를 침공한 위장(魏將) 관구검과의 전쟁이 대표적이다. 이때 수도 국내성이 함락되고 동천왕이 쫓겨 동옥저로 도망갔다.
     
     

    드라마 <삼국지> 속의 관구검
    위나라 황제 조예(조비의 아들)에게 칼을 겨누는 관구검 / 동북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사마사(사마위의 아들)에게 작살난다.
    관구검기공비 / 245년 관구검이 고구려 정벌을 기념해 세운 비석의 부분이다.(요녕성 박물관)
    관구검기공비의 탁본 / 1906년 집안현 판석령 도로공사 중 관구검기공비의 조각이 우연히 발견됐다. 길이 25.8㎝, 너비 26.4㎝, 글자 간격 2.7㎝로 생각보다 작은 크기이다.(이 때문에 일본인의 위조품이라는 말도 있다)

     
    이 '위서 동이전' 고구려 편에 '좌식자(座食者)'라는 말이 나온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앉아서 먹는 사람들'로서, 농사를 짓지 않고 하호(下戶, 노비)들이 바치는 곡식과 소금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그 당시 고구려의 인구인 3만호 가운데 1만여 명이 '좌식자'였다. 언뜻 부정적 이미지가 함께 귀족의 연상되는 이 '좌식자'들은 누구일까? 연상되는 그대로 귀족 집단일까? 
     
    처음에는 그렇게 여겨졌던 '좌식자'는 지금은 직업 군인으로 해석된다. 그들은 평소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하호들이 갖다바치는 식량과 고기 및 소금을 먹으며 지내다 주변 북방민족 혹은 중국 왕조와의 전쟁이 일어나면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가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그 수가 무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다. 그런데 이들은 평소에는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기만 하는 소비적 존재였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전쟁이 없을 때는 훈련을 하며 전쟁에 대비했다. 그들 좌식자들이 고구려 900년을 이끈 한 축이었다. 

     

     

    삼실총의 고구려 개마무사 / 좌식자는 전쟁이 나면 이렇게 돌변한다.
    안악3호분 대형렬도 속의 고구려군 / 높이 2m, 길이 10.5m 달하는 그림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벽화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좌식자들이 1천년 후 다시 만주에 나타났다. 건주여진의 영웅 누르하치에 의해서였다. 누르하치는 24세인 1583년 거병(擧兵)해 불과 3년 만에 부족을 통일하고 10년 만에 만주의 부족을 평정했다. 그 과정에서 누르하치는 여진족의 사냥 집단인 니루(牛彔)를 기본으로 군사 조직을 만들었던 바, 5개 니루를 모은 잘란(甲喇), 10개 잘란을 모은 구사(岡山)를 편성했는데, 이 구사가 1기(旗)로 현대 군사 편성으로는 사단과 같다.  

     

    누르하치는 자신이 정복한 부족들을 8개의 각기 다른 색깔의 깃발, 즉 정황(正黃), 정백(正白), 정홍(正紅), 정람(正藍), 양황(鑲黃), 양백(鑲白), 양홍(鑲紅), 양람(鑲藍)의 8개 깃발 아래 두고 갑옷의 색깔도 달리했다. 그리고 그들을 훈련시켜 최고 정예부대를 만들었으니 이른바 팔기군(八旗軍)이었다. 누르하치는 1616년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워 본격적으로 명나라와 자웅을 겨루었던 바,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5만 명의 팔기군을 이끌고 43만의 명나라·조선 연합군을 격파했다.

     

     

    팔기군의 복색
    사르후 전투에서 명나라군(오른쪽)과 싸우는 팔기군 기병대
    사르후 전투에서 '관형향배'(觀形向背; 형세를 살펴 행동하라)의 광해군 명에 따라 누르하치에 항복하는 조선군 도원수 강홍립과 조선군 / <양수투항도> 그림

     

    이후 팔기군은 조선 침력에 앞장 서 남한산성의 인조를 굴복시키고,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한 후에는 청나라의 중앙군으로서 청조(淸朝)를 지탱했으며, 몽골·신장·위구르에 원정해 강역을 크게 확장시켰다. 하지만 청조의 말엽에는 초기에 지녔던 북방민족 특유의 기강을 상실하고 점점 쇠퇴하였던 바, 밀려드는 유럽 열강과의 싸움에서 연패하며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편전쟁 때 함락된 천진 대고 포대 모습 / 영국군은 북경의 관문인 천진시까지 올라와 대고 포대를 박살냈다.
    대고 포대의 널브러진 청군의 시신들

     

    지금 우리나라도 그간 굳건히 유지되던 군사강국의 이미지가 와해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데 국민들이 느낀 첫 신호탄은 2026년 1월 4일 벽두의 뉴스였다. "국가에 돈이 없어 일선 군부대와 방산업체에게 지급해야 할 1조 8천억 원에 달하는 국방비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으며, 군부대와 방산업체는 당장의 어려움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군부대에 지급할 돈에는 장병 급식비와 피복비 604억 및 군수비용 2,235억이 포함돼 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었다.

     

     

    사탸의 심각성을 풍자한 인스타그램 사진 / "정부: 미지급, 그래서 어쩌라구요?"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초유의 사태에 있어 정부의 어느 부처도 원인과 대책에 대해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3월쯤이면 해결될 수 있다는 무책임한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각 군이 사용하는 전력운영비, 방산 업체 등에 지급돼야 할 방위력개선비 지급에는 일부 차질이 발생했지만 장병 월급 지급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 다르니, 장병들에게 물어보니 월급은 차질이 없지만 훈련 등에 붙어 나오는 수당은 여전히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가운데 2025년 상반기 기준, 정년을 채우지 않고 조기 전역(희망 전역)을 신청한 군 간부는 총 2,869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2021년 상반기(1,351명)와 비교해 2.1배 급증한 규모이다. 내부에서는 이미 임오군란 때와 같은 위기감을 감지한 듯한데, 이 중 부사관을 포함한 하급·중견 간부(부사관 및 위관급 장교) 비중은 전체의 약 86%인 2,460명에 달한다. 업무 대비 낮은 보상과 어쩌면 그 박봉마저 못받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 등이 빚은 결과로 보인다.

     

    국방비 미지급은 IMF 때도 없었던 일이다. 오히려 그때는 장래가 보장되는 부사관이 되기 위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당시 해군부사관 시험에서 떨어진 조카에게 얼마간 용돈을 대준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 상황이어서 거의 모든 군관계자들이 군의 중추인 허리가 끊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내비치며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재명·안규백 체제에서는 통하지 않는 듯하다. 전에도 말해거니와 나는 그저 전쟁이 터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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