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색당파 & 원내대표 홍영표와 김병기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2. 1. 22:52
조선 선조 7년(1574년) 발동이 걸린 조선의 사색당파는 이후 망국에 이를 때까지 상대를 물어뜯으며 치열하게 싸웠던 바, 그 양상이 요즘의 정치판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당쟁(黨爭)이란 말 대신 정쟁(政爭)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다르다 할까.... 그리고 그것이 크게 부정적인 것도 아니니 동인, 서인, 남인, 북인으로 나뉘어 견제하며 권력의 독점을 막는 양상이 요즘 정당정치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
역사적으로 봐도 오히려 당쟁을 할 때 백성들의 삶은 편안했고, 안동김씨의 권력 독점이 일어난 헌종·철종 이후로는 백성들의 삶이 급격히 황폐해졌다. 이에 권력자들의 횡포를 참을 수 없었던 백성들이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섰으니, 헌종조의 어느 때를 특별히 '민란의 시기'라고도 부른다.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안동김문은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사도세자의 후손인 곁가지 왕족 한 명을 데려다 허수아비 왕으로 앉힌 후 국정을 농단하였던 바, 안동김문 60년 세도의 절정을 이루었다.

철종이 강화 시절 살던 초가 터에 지어진 용흥궁 잠저
그래서 얼마 전 타계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살아생전 '20년 집권론', 나아가 '50년 집권론'을 부르짖었을 때 끔찍했다. 일당 독재의 폐해는 세계 역사가 이미 증명을 마친 바이고,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함(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이 철칙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액톤 경(Lord Acton)이 남긴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이 유명한 말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적(政敵)을 죽여 정권을 이어가려는 것이 권력을 생리이기도 하니, 그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사람이 역사적으로 부지기수이다. 조선시대만을 국한해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국초(國初)의 안평대군이다. 그는 음풍농월을 즐기던 왕족 문사(文士)로서 그로 인해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것이 빌미가 되어 제 형 수양대군의 권력욕에 희생되었으니 아무런 죄도 없이 내란 수괴로써 붙잡혀 강화도로 귀양 갔고 그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안평대군과 친했던 김종서, 황보인, 조극관 등도 목숨을 잃었다.

안평대군의 작문과 글씨라고 전해지는 유묵 / "城峻隨天壁 連連睥聣侵...."(성은 높이 하늘을 따라 둘러 있고 연이어진 성가퀴는 날카롭다....) 
종로구 수성동 계곡의 안평대군 집 비해당 터 
의정부시 낙양동 산124의 조극관 묘 / 안평대군의 묘는 전하지 않는다.
후대 사람 중에서는 단연 윤휴(尹鑴,1617~1680)다. 그는 평소에 바른말하기를 좋아하고 득의의 학문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던 바, 절친이던 송시열과 공부할 무렵인 1652년 <중용>의 해석을 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중용>은 춘추시대 공자의 제자였던 자사(子思)가 지은 책이나 송나라 주희(주자)가 장(章)과 절(節)을 분리해 따로 자신의 주석을 붙여 놓은 이후 주희의 주석서는 유학(儒學)의 금과옥조가 되었다. 그런데 윤휴가 그것을 비판한 것이다.
"경전의 오묘한 뜻을 주자만이 알고 어찌 우리들은 모른단 말인가.(經傳奧義 豈朱子獨知 而吾輩不知耶) 무릇 천하의 이치란 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자의 해석으로서는 내 말이 틀리겠지만, 자사가 살아 돌아오다면 틀림없이 나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옳다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윤휴는 주자(朱子)제일주의자였던 송시열과 원수가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정치적 노선도 달랐던 바,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 때 남인(南人) 윤휴는 반역 혐의로 처형됐다. 사문난적(斯文亂賊, 유학을 어지럽히는 도적)의 죄도 추가됐다. 그를 처형시킨 자는 잠시 실각했다 되돌아온 서인(西人)의 영수 송시열이었다. 윤휴는 죽으면서 마지막 말을 글로 남기려 했으나 송시열에 의해 거부당했고, 이에 "뜻이 다르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되지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하는 말을 남기고 사약을 마셨다.

송시열과 윤휴
최근에 있어 정치적 죽임을 당한 사람 중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던 홍영표(1957~ /4선·인천 부평을)다. 대학생 시절부터 위장취업자로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던 그는 1985년 당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의 직원들을 대표해서 김우중 회장과 직접 면담을 가지고 담판을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때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이 전부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상당한 금액의 임금 인상이 이루어졌고 노동 환경 개선 등의 요구사항 등도 받아들여졌다.그는 이때 사(社)측의 입장에 대해서도 무조건 거부 대신 일부를 수용하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김우중 회장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후 다시 파업이 일어나 공장 내로 경찰이 들어와 농성자들을 잡아갈 때 김우중 회장이 홍영표를 직접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 숨겨 피신시켰다는 이야기는 잘 안 알려져 있다. 징역형을 살고 나온 이후에는 김우중 회장이 대우차에 복직을 시켜주었고, 영국지사에 고위직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그를 '나라의 동량(棟梁)이 될 큰 그릇'이라 평했다고 한다.
정치에 투신한 이후 홍영표는 의회주의를 지향하는 소신 있는 정치가로 활동했으며, 지난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목전에서는 평소의 인망을 무기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의 단일화 창구로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문재인을 야권 단일 후보로 세웠고 결국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에 관한 뒷얘기가 그의 저서 '비망록'에 전한다. 반면 21대 대통령 선거에 앞서 김문수·이준석 단일화 문제는 말만 무성했지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결국은 이재명에게 대통령직을 헌상했다. 어중이떠중이는 넘쳐났으나 홍영표와 같은 인재가 없었음이다.

홍영표의 22대 국회의원 선거 포스터 그는 이후 민주당의 원내대표가 되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문의 좌장이 되어 세(勢)를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의회주의자로서의 정도(正道)를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 이재명 당대표를 서울중앙지법 영장실질 심사에 세운 것도 그의 힘이 컸다. 이재명의 욕심과 비대해진 권력으로 인해 당이 사당화(私黨化)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며 일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유 판사는 구속 사유로 여겨졌던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이나, 백현동 및 대북송금 사건은 이 대표의 직접 관여 여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불구속 결정 내렸다. 때는 2023년 9월 27일로,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지은 날이기도 했다.

구속영장심사 후 풀려나오는 이재명 / 복수를 다짐하는 듯하다. 이후 이재명을 영장심사대에 세운 친명 그룹에 피바람이 불었다. 칼잡이는 과거 안기부와 국정원에서 25년간 근무했던 김병기(1961~ /재선·서울 동작)였다. 주류 운동권이 주축인 좌파에서 비운동권 출신의 뜨내기 정치인 이재명과 비운동권 안기부 출신의 김병기는 그런대로 공통분모가 있었다. 거기에 이른바 친문 학살이 자신들이 살길이라는 교집합이 컸던 바. 김병기가 진두지휘하는 친문 학살에 홍영표를 비롯한 많은 친문이 결단났다.
홍영표는 결국 공천을 받지 못한 채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는 탈당의 변(辨)에서 "민주당은 총선 승리보다 반대세력 제거에 몰두하고 있다"며 "민주가 사라진 '가짜 민주당'을 탈당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번 민주당 공천은 ‘정치적 학살"이자, "어떠한 비판도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가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비명횡사'를 주도한 김병기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 네 손에는 피가 안 묻을 줄 아느냐?"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홍영표 탈당의 변 그런데 이변이면 이변이랄까. 이와 같은 '친명횡재 비명횡사'의 공천을 했음에도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175석을 확보하며 기염을 토했다. 조국혁신당 등을 합친 범야권은 총 192석으로, 대통령 탄핵선과 개헌 저지선 돌파를 목전에 두었는데, 결국은 국민의힘 내 배신자들과 손을 잡고 대통령을 몰아냈고 급기야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국힘은 총선에서도 대패하고 여당의 자리도 빼앗기며 거의 식물정당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새정부가 들어서자 김병기는 민주당 원내대표가 되며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았다. 그리하여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처럼 하늘 높이 비상했으나 아뿔싸, 너무 높이 날며 날개를 붙였던 밀랍이 녹고 말았으니, 이후 예상치 못한 추락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최근 공천 헌금 수수, 가족 특혜, 갑질 의혹 등 10여 가지가 넘는 논란에 휩싸였으며, 이로 인해 2025년 12월 30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고, 이어 2026년 1월 12일에는 민주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았다. 그는 아직도 추락 중인데, 땅에 도달하는 날, 홍영표가 말한 마지막 말이 이루어질 듯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은 혼노지(本原寺)에 / 오다 오부나가 & 아케치 미츠히데 (2) 2026.02.03 광교산 전투와 서봉사지 (6) 2026.02.02 고구려 좌식자, 만주 팔기군, 조기전역하는 한국군인 (8) 2026.01.30 진시황제와 이해찬 전 총리의 사망 (37) 2026.01.26 임진왜란 용인전투의 흔적은 남았을까? (4) 2026.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