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예수가 외계인의 자식이 아닐 경우 생겨날 문제점들(III)
    성서와 UFO 2019. 3. 12. 17:40


    앞서 섹션 I, II에서 말했듯 신약의 예수는 본시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던 구약의 여호와와 달리 신성보다는 인성(人性)이 부각되는 존재였다. 이는 무엇보다 그가 사람의 아들(Son of man)로 태어났기 때문이니, 본래부터 하늘에 있었던 구약의 여호와와는 출발부터 격이 달랐다. 따라서 민초들에게는 자신들과 똑 같은 민초로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 예수라는 자를 신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예수 역시 자신을 신이라 한 적이 없었으니 매양하는 말은 자신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복음서에 이 말은 무려 80여 차례나 나온다)


    하지만 예수를 신격화하여 자신들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으려는 위정자들로서는 예수가 반드시 신이어야 했다. 그래서 우격다짐 식의 이론으로 예수를 결국 신의 반열에 올렸지만,(여호와 성부·聖父에 빈대붙어) 민중들에 있어서는 성부와 성자가 동격이라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 말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예수가 신적 존재라거나 혹은 신이라고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흔한 난생설화나 강림설화 같은 것만 있었어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겠건만 예수에게 그나마 그것도 수반되지 않았다.



    신이 된 예수

    초기 기독교회에서 예수는 하나님과 맞담배질을 할 정도의 위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신의 반열에는 올랐다.



    물론 부활과 승천이라는 초자연적인 무엇이 있긴 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난 예는 과거 선지자 엘리사 때에도 있었도(엘리사가 보여준 기적으로) 승천의 기적은 그의 스승 엘리야가 몸소 보여주기도 했던 것인 바,(열왕기하 2:11) 예수의 전매 특허라고 내세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밖에 예수를 신으로 특화시킬만한 꺼리는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예수를 신으로 만드는 일은 신학자와 성직자들에게도 사실 버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같은 신학자나 성직자마저도 예수의 신성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예수를 정치 이념화시키려는 황제와 그 추종자들은 우선 이들부터 설득하거나 제압해야 했다. 이에 쪽수로 밀어붙인 끝에 예수의 인성(人性)을 주장하는 아리우스 파*를 몰아내기는 했지만,(325년 니케아 공의회)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놈들은 여전히 열을 지어 대기 중이었다.


    * 아리우스 파의 주장은 하나님은 오직 유일신이라는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의 동질성을 부정하고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로서의 예수 크리스트의 인성(人性)을 강조했다. 기독교에서 단죄된 최초의 이단이다.



    니케아 공의회 묘사도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 파가 단죄된 종교회의의 풍경을 그렸다. 뒤에 보이는 성당이 공의회가 열렸던 터키 이즈니크 니케아 성당이며 가운데가 이 회의를 주최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그 앞에 나자빠진 사람이 아리우스 파를 대표해 싸운 니코메니아의 주교 에우세비우스다. 다구리를 당한 그는 결국 KO됐다.



    그 어용신학자들을 가장 힘들게 만든 것은 역시 예수의 인간적(?) 탄생이었으니,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인간 예수의 탄생 과정을 적절히 요리하여 엠브로자(ambrosai 神饌)로 만드는 일은 그들 어용신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준 숙제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천만다행히도 성서에는 그에 걸맞은 구절이 하나 있었다. 예수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잉태는 성령에 의해 되었다는 것이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18-21)


    옳다구나 싶었던 그들은 이것을 제대로 부풀리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껏 만든 성부와 성자라는 빵의 반죽에 이스트 개념의 성령을 집어넣어 이 셋을 하나로 만드는 최종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개념은 다분히 억지스러운 것이었으니 곧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출현했다. 흔히 마케도니우스 파로 불리는(그리스 마케토니아 교회를 중심으로 뭉쳐진)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성부와 성자의 동질성은 인정하겠으되(예수는 성자·聖子 그리스도로 이미 신의 반열에 올랐으므로) 성령은 이에 종속되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은 피조물이므로 그리스도의 권력에 종속되야 한다.


    이 말이 좀 어렵게 들릴지 모르겠다. 쉽게 이해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천사와 같은 것이라는 의미로서, 그들이 들고 나온 성서의 문장도 바로 그와 같은 내용의 것이었다.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13-14/2:6-8)


    * 부언하자면 이들 마케도니우스 파의 오랜 주장은 나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줄곧 말했듯 나는 '성령=외계인 선진 기술'로 보고 있고, 따라서 위 마태복음의 성령은 마리아의 자궁에 이식된 천사 임마누엘의 DNA다.(* '예수가 외계인임을 말해주는 성서의 족보 참조) 그런데 마케도니우스 파에서도 성령을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사로 국한시켜 보고 있는 것이다.(물론 본질적인 것은 다르지만 언뜻 신기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하여 결국 이와 같은 분쟁을 다스리기 위해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주최한 종교회의가 열렸다.(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그러나 여기서 그들 마케도니아 파는 이단으로 단죄됐다. 그들이 단죄된 것은 다른 이유가 없었으니, 그저 황제가 요구하는 통치 이데올로기에 부합되지 않은 까닭이었다.(이때 공의회에는 친 황제파인 150명의 동방교회 주교들만 참석하였던 바, 사실 토론은 벌이나마나 한 일이었다)




    이스탄불 하기야이레네 대성당

    공의회가 열렸던 이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건립되고 유스티니우스 1세 때 재건되었다. 동로마 제국 당시의 내외관이 보존된 거의 유일한 건물이다.


    성당 내부


     공의회 상상도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 이번에는 안티오크 교회를 중심으로 뭉친 네스토리우스 파가 기다리고 있었다.(앞서 말한대로 안티오크 교회는 당시의 기독교 5대 총교구의 하나였던지라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그들 역시 마리아의 임신을 문제 삼았으니, 이른바 크리스토코스(Christokos) 테오토코스(Theotokos)와의 논리 싸움이 벌어졌다. 크리스토코스는 '크리스트를 잉태한 사람'이란 뜻의 라틴어로, 네스토리우스 파는 이를 주장하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붙여진 테오토코스(신을 잉태란 사람)라는 말을 사용의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의 핵심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즉 마리아의 태(胎)에서 조성된 아기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시 안티오크 교회는 크리스트 이성설(二性說 : 예수는 신성을 지닌 사람의 아들이라는학설)’을 신봉하였던지라 마리아의 비성모설(非聖母說)은 당연한 주장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신성은 하나님의 한 본성(Ousia)으로부터 파생된 개별자(Hypostasis)이므로, 인간인 마리아가 신을 낳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 네스토리우스 파의 논리를 최대한 함축해 쉽게 풀어보려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것 같다. 아무튼 이때 이들의 논리에 밀렸던 기득권 교계는 급히 마리아를 신으로 격상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마리아는 별다른 근거도 없이 신의 반열에 올랐던 바, 지금껏 성모 마리아로 추앙되고 있다. 예수와 달리 마리아가 쉽게 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말 많던 이성론자(二性說者)들이 다 제거된 후였기 때문인데, 하지만 종교개혁 시절의 프로테스탄트들은 근거 박약한 마리아 성모론을 교리에서 삭제시켰던 바, 이후 개신교에서는 마리아 숭배가 사라지게 되었다. 


    * 네스토리우스 파가 칼케돈 종교회의(451년)의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이단으로 결정돼 추방된 일, 그리고 그들이 중국으로 가 일세를 풍미했던 일은 '예수가 외계인의 자식이 아닐 경우 생겨날 문제점들(II)''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III)'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그들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마리아 숭배 사상이 없었겠으나 이성론자들이 추방된 후 유럽 사회에서의 마리아의 위상은 예수와 거의 맞먹을 지경이었다.


    * 4편으로.....



    얼떨결에 신의 반열에 오른 예수의 모친 마리아(사진은 유명한 파티마의 성모상이다)


     루벤스의 '성모 승천'

     베르고그넌의 '성처녀의 대관식'


     파브리아노의 '성모 마리아 대관식'


    지우리노 로마노와 일 페트레가 함께 그린 '마리아의 대관식'

     


    이탈리아 오르베토 성당 파사드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


     이탈리아 산타 마리아 마기오레 성당의 천장화


    폴란드 크라쿠프 시 성모 마리아 성당의 제단
    이 성당에는 제작자의 이름을 따 '비트 스트비쉬 제단'이라 불리는 유럽에서 가장 큰 성당 제단이 있다.

    이 제단에는 스트브쉬가 12년에 걸쳐 제작한 마리아의 일대기가 펼쳐져 있는데, 그 안 200명 인물상의 꼭대기에 성모 마리아 대관식 상이 서 있다.




    안타까운 사건의 현장

    이 글을 쓰고 얼마 후 프랑스 파리에서 실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세느 강변의 저 유명한 성모 마리아(노트르담) 성당이 화마에 휩싸인 것인데, 인류문화유산의 공동 소유자의 한 사람으로서 순조로운 복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세보기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