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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예레미야와 UFO에 얽힌 잡담(I)성서와 UFO 2019. 3. 16. 12:00
흔히 구약성서의 선지자는 4명의 대 선지자와 12명의 소 선지자로 분류된다. 그와 같은 교계에서의 분류가 역할의 경중(輕重)에 따른 것인지 성서의 분량에 따른 것인지 나로서는 명확히 구별이 안 가가기도 하거니와 굳이 그와 같은 구분을 한 이유도 사실 이해가 안 간다. 구약의 선지자는 모두 신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와 같은 역할에 경중을 둔 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 선지자로 분류된 사람은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이사야로서, 그중 예레미야를 제외한 3명은 본 블로그에서 한번씩은 포스팅되었다. 그것이 실린 곳은 물론 '성서와 UFO'였으니 그들과 외계인과의 상관 관계를 썼을 터인데, 이번에는 나머지 한 사람 예레미야와 UFO의 조우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교계에서 말하는 비중있는 선지자의 역할이란 어떤 것인가를 들여다보면 성서와 UFO와의 관계가 더욱 분명히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먼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예레미아서(書)의 역사성으로, 잠시 공부 삼아 구약의 개관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하겠다. 일전에 언급한 바도 있지만 구약 39권은 1) 모세 오서(경), 2) 역사서, 3) 시가(詩歌)서, 4) 예언서로 대분된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예언서로 총 17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의 이름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이다.
이상을 보면 예언서는 모두 그들 예언자(선지자)의 이름이 붙어 있고, 따라서 그들의 활동상을 적은 책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모두 16명인 것이다.(예레미야 애가·哀歌는 예레미아의 슬픈 노래라는 의미의 부록 같은 책이다)
구약의 예언서(선지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는 그들의 활동한 시대와 그들의 역할을 일일히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듯하니 고든 코웰 신학교(미국에서는 꽤 유명한 신학교로서 성서 주해서에서는 빠짐없이 등장한다)의 명예 총장이자 구약신학 명예 교수인 월터 카이저(Walter C. Kaise, Jr)는 '성서의 모든 선지자를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The Old Testament Documents') 대신 그는 그 책에서 예레미아에 대해서만은 그 역사성을 증명하려 애썼는데, 그래서 제시한 것이 네리야의 아들 바룩(Baruch)의 인장이다.
바룩의 인장
재질은 진 갈색의 진흙이며 크기는 17x16mm로 현재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바룩은 예레미야의 비서와 같은 사람으로 예레미야는 예언의 대부분을 그에게 받아적게 했다.(36:4, 8) 그렇게 적혀진 이 예언서는 당시의 역사와 거의 부합되는 까닭에 예레미야의 활동기간(BC 626-580)의 역사성이 증명되었고, 따라서 이 예언서가 그 1장 1절에 언급된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다. 그 증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위 바룩의 인장으로 1975년 예루살렘 골동품 상에서 발견되어졌다.
봉인의 용례이 인장은 위 그림의 설명처럼 공문서를 봉하던 끈 위의 진흙 더께에 누르던 것으로서 그 문서나 편지들을 본인, 혹은 수취인 이외의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게끔한 일종의 시건장치였다. 거기에 '서기관, 네리야후(Neriyahu)의 아들 베렉야후(Berekyahu)에 속한 것'이라는 세 줄의 명문이 기원전 7세기의 공식 필기체로써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여기서 베렉야후는 바룩의 풀 네임이고 네리야후는 성서 네리야의 풀 네임이다. 그리고 점미사 야후는 야훼의 단축형인 바, 그들이 모두 성서 예레미야의 속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인장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아나돗은 예레미야서에도 기록돼 있으며 그 문장 속에는 바로 위의 인장이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들어 있어 보는 이를 흥분시켰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레미야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예레미야 32: 6-15)
그런데 아래의 논문을 읽어보면 위의 인장이 진품인지 살짝 의심이 간다. 이 논문은 인터넷에서 발췌한 것으로 바룩의 인장에 대해 객관적으로 쓴 글이다.
예레미아의 서기관, 바룩의 봉인(the Seal of Baruch, Jeremiah’s Scribe)
성경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인 유물은 사해사본이다. 사해사본에 이어 또 하나의 중요한 유물은 고대 히브리어가 기록된 봉인(bullae)을 꼽는다. 봉인(bulla)이란 파피루스에 기록된 공식문서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둥글게 말아 끈으로 묶고, 매듭을 조그만 진흙덩이로 봉한 봉인을 말한다. 발견된 대부분의 봉인은 유다왕국의 말기, 예레미야시대의 것이다. 봉인에는 일반적으로 이름과 공식 호칭을 기록하였는데, 여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의 인물들이 많이 나타난다. 예레미야의 서기관이었던 네리야의 아들 바룩의 봉인이 발견된 것은 정말 놀랍다(렘36:4).
1975년10월, 200개가 넘는 봉인들(bullae)이 아랍 농부에 의해 예루살렘, 베들레헴, 베잇사후르(Beit Sahour)의 골동품 상점들에 거래되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의 봉인들은 골동품 수집가인 요압사쏜(Yoav Sasson)과 49개의 봉인은 하이파의 르우벤 헤트(Reuben Hecht)박사에게 팔렸다. 르우벤 헤트는 나중에 자신이 구입한 모든 봉인들을 이스라엘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헤트가 구입한 봉인 중에는 바룩의 봉인도 있다. 그리고 많은 봉인 가운데 약 10 개 정도는 행방을 잃어버렸다.
학자들은 200개가 넘는 봉인들이 발견된 정확한 장소를 알기 원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나중에 골동품 상인으로부터 텔 베잇 미르심(Tell Beit Mirsim)에서 봉인이 발견되었다는 말을 들고 나흐만 아비가드(Nahman Avigad), 이스라엘 고고학 발굴 책임자인 아브라함 에이탄(Avraham Eitan), 그 지역 책임자인 아모스 클로네르(Amos Kloner)는 텔 베잇 미르심 유적지를 방문했지만, 봉인이 발견된 장소의 증거는 얻지 못했다. 아직까지 많은 봉인이 발견된 정확한 장소는 알지못한다.
게다가 이후 위 인장이 찍힌 진흙 봉인이 또 다시(가히 기적적으로) 발견되어졌는데, 거기에는 바룩의 것으로 짐작되는 지문까지 찍혀 있어 다시 많은 이들을 흥분시켰다. 그에 관한 사진과 기사는 아래와 같다.
바룩의 인장 스템프
가운데 사진 box 표시된 곳에 바룩의 지문이 찍혀 있다.
위 인장 스템프가 발견된 곳으로 알려진 예루살렘 성전 산 인근의 인장 저장소
스템프가 발견된 곳이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이 장소이라면 위 Archaeology 기사에 실린 왼쪽의 발굴 사진은 정말로 역사적 사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상을 확인하기 위해 관련 논문도 찾아봤지만* 위 스템프가 '인장 저장소'에서 발견되었다는 확실한 무엇은 없었다. 발견된 해 역시 1982년과 1996년으로 따로 놀았다. 다시 위 논문의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위 논문과 'Fingerprint of Jeremiah's Scriibe'.(Bibical Archaeology Review 22. 1996)
1996년 바룩의 동일한 인장이 찍힌 또 다른 봉인이 발견되었다. 두번째 발견된 바룩의 봉인이 흥미로운 것은, 봉인의 왼쪽 윗부분에 지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봉인에 찍힌 지문을 바룩의 지문으로 믿는다. 아비가드는 바룩의 봉인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동반자였던 바룩을, 그의 봉인을 통해 개인적으로교감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나흐만 아비가드는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Seraiah)의 봉인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는 시드기야 왕 때에 시종장이었다(렘 51:59).스라야는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잡혀가면서 예레미야의 말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가져갔다. 두루마리에는 바벨론이 결국 멸망할 것이란 예레미야의 예언이 기록되었다(렘51:63-64).* 네리야의 아들스라야는 바룩과 친형제이다. 이 두사람은 모두 선지자 예레미야의 충실한 동역자들이었다.
* 주제와는 상관 없는 말이긴 하지만,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예언도 아니다. 과거 망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었으랴? 그래서 바벨론(바빌로니아 제국)을 무너뜨린 파사(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키루스 왕)를 기름 부은 자 메시아로 여겼단 말인가?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이사야 45:1-3)
정말로 키루스가 이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헐! 원님 덕에 나발 분다더니, 참 얼척없네."
50여 개의 인장 스템프가 발견된 예루살렘 히스기에 수로 위의 석축
'인장 저장소'의 발굴 스케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말하면 보다시피 이 논문에서는 위 인장 스템프의 발견 장소 역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어디인지 모른다는 얘기다. 발견 장소가 불명확한 유물은 정말로 움직일 수 없는 무엇이 있기 전에는 사실 유물로서의 가치가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점이 바로 그것으로 나는 사실 이 두 개의 유물을 모두 가짜라고 생각하고 있다. 두번 째에 언급한 인장 스템프의 Bullae House에서의 발굴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첫번 째 발견된 도장이 가짜이니 두번 째의 것도 가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에서 본 대로 두 요철(凹凸)은 100% 합치되는 까닭이다.
* 지금 숭실대 박물관에 있는 신라 시대의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 상이라는 것이 진위를 의심받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발견자인 김양선 목사(당시 교수)가 그것을 단지 '주어 왔다'고 말하기 때문인즉,(구리 십자가와 마리아 상은 그저 경주에서, 돌 십자가는 불국사 바위 위에서/1956년) 그는 그로 인해 불교 조계종과 사학계, 심지어는 기독교로부터도 심한 공격을 받았고, 그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3년 후 별세했다. 아무튼 그후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은 폐관을 했었는데, 최근 재개관하며 다시 공격을 받고 있다. 차제에 말하거니와 그것들을 폐기하지 않는 한 아마도 박물관 측은 영원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지금껏 신라시대의 기독교 전래 증거로 활용되어지고 있는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돌 십자가(25.4x24x9cm)
발견 장소가 처음에는 불국사 바위 위였다가(김양선 목사) 다음은 대웅전 석등 밑으로 바뀌었고(최병현 관장) 다음은 우물터 옆(김양선 목사와 함께 했던 최초 발견자/신원 미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밑에서 발견했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얼척없다. 갑자기 석등 밑은 왜 파 보았을까? 전날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일까? 만일 정말로 뭔가 있었다면 문화재 절도범이 따로 없다.
* 2편으로.....*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 국내도서
- 저자 : 김기백
-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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