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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지자 예레미야와 UFO에 얽힌 잡담(II)
    성서와 UFO 2019. 3. 17. 18:46


    그렇다고 그곳 예루살렘 인장 저장소에서 발견된 50여 개 인장 스템프가 모두 진위를 의심 받는 것은 아니니 오히려 대부분이 진짜로서 인정받고 있다. 다만 그것들이 발견된 곳은 인장 저장소라기보다 공문서 저장소로 칭하는 게 타당하리라 여겨진다. 그 자리가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왕이 예루살렘을 파괴했을 때 불에 탔고 그때 파피루스나 양피지의 문서는 태워지고 진흙 도장 스템프만 남게 된 까닭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물건이 사반의 아들 그마랴의 인장 스템프이다. 1982년 다른 51 개의 인장 스템프와 함께 발견되어졌다고 하는 그것에서는 약간 파손돼 불완전하기는 해도 '사반의 아들 그마르이후(Gemaryhu son of Shephan)에게(속한 것)'이라는 분명한 글자를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예레미야서의 두 군데서 언급된 (36:10-12, 25) '사반의 아들 그마랴'를 지칭하는 게 틀림없다. 그중의 한 곳을 읽어보면 그마랴는 확실히 비중 있는 인물이다.



       사반의 아들 그마랴의 인장 스템프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명령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니라.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의 제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


    바룩이 여호와의 성전 위뜰 곧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말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니라. 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고관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고관이 거기에 앉아 있는지라.(예레미야 36:8-12)


    위의 예레미야서 36장을 보면 그마랴는 여호야김 왕 재위 5년, 즉 기원전 604년에 궁전의 서기관을 지냈던 것은 분명하고 꼴통인 왕에게 간언하는 충직한 신하임에도 분명하다. 여호야김 왕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담긴 두루마리 낭독을 엄청 듣기 싫어했으니 서너 쪽을 낭독하면 그것을 칼로 잘라 화롯불에 던졌다. 그마랴는 이를 말리는 몇 안 되는 신하이기도 했다.(예레미야 36:23-25) 이런 자의 인장이 세상에 나와 암울했던 시절의 인의(仁義)를 일깨움은 어쩌면 천우신조라고도 할 만한 일이다.


    갑자기 여담을 말하자면, 과거 개역성서와 개역개정판 성서의 과도기 시절에 나는 줄곧 개역성서만을 고집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워 개역개정판을 마련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시절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바이블은 물론이요 킹 제임스 바이블, 히브리 원어 해설본까지 가지고 있었음에도 개역개정판의 한글 성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첫 날, 있는 돈을 다 털어 개역개정판 성서를 마련했는데, 당시 책 값이 상당했음에도 겸사겸사해서 구입한 것이 지금 내가 즐겨보는 '고고학 성경(아가페 출판사)'이었다.(책을 구입한 곳은 여러 성서가 구비됐던 을지로 영풍문고였는데, 그날의 기쁨은 지금도 새록하다)


    그런데 유감이면 유감이랄까, 그 '고고학 성경'이란 책에서 얼마 전 그마랴 인장 스토리의 반전을 접하게 되었다. 그 책 1110쪽 아래쪽의 주석서 맨 구석에서 '이것들은 모두 골동품 시장에서 구입한 것'이라는 아주 작은 글씨의 글을 보게 된 것이었다.(역대상에 나오는 헤스론의 맏아들 여라므엘의 인장 날인과 함께) 허탈감이 들기는 했지만 위의 인장 스템트 역시 가짜로 판명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바룩의 인장을 비롯한 성서의 중요 인물들의 인장과 날인은 모두 가품으로 인지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인물들 자체가 허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골동품 시장에서 구입한 것이라 해서 모두 가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물건 나름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조선백자를 구입한다 했을 때 그것에 사취당하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이 그것을 용납 안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증도가자(證道歌字)*와 같은 것은 지금도 진위를 놓고 싸움 중이다. 이 증도가자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라는 고려 시대 두번 째 금속활자 인쇄물을 찍을 때 사용되었다는 109개의 금속활자를 말하는데, 당연히 국보급일 활자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출처와 유통경위가 불분명함에 기인한다.(내가 알기로 그 처음 출처는 중국골동품 상으로부터였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에 대해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 금속활자' 참조)



      문제의 증도가자 활자 편



    위의 그마랴 인장 스템프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아주 만들기 쉬운 물건이라는 데 있다. 진흙이 있고 약간의 손재주만 따른다면 누구나 만들어낼 수가 있는 것이니, 이런 물건일 수록 출처와 유통 경로가 중요시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고학 성서'에 써 있는 그마랴의 인장 스템프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최후의 날에 파괴된 그 잔해층에서 발견되어진 것이라는 해석에는 살짝 질리기까지 해야 했다.(그것이 시중에 유통되다 재발견되었다는 의미겠는데, 이는 다분히 억지스럽다. '고고학 성경'은 매우 훌륭한 주석서를 지녔음에도 이 같은 억지는 종종 눈에 띈다. 아마도 종교적 한계이리라) 게다가 우리는 그동안 가짜 진흙 스템프에 당한 민족이기도 한 바, 이런 류의 물건에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 우리나라 말로 위 인장 스템프는 봉니(封泥)가 되겠으니, 우리나라에서도 한사군 낙랑의 위치를 비정할 수 있는 유물로서 낙랑태수(樂浪太守)의 봉니가 문제가 되고 있다. 잠시 아래의 진흙 인장 스템프 3 세트를 감상해보자. 



    예루살렘 Bullae House에서 출토된 인장 스템프(이것은 물론 다 진품이다)


    중국 한대(漢代)의 봉니(이것도 당연히 진품이다/가짜를 만들 필요가 없기에)


    평안남도 일원에서 발견됐다는 봉니(?)



    * 낙랑태수와 대방태수의 것이 포함돼 있는 위 봉니는 같은 시대의 중국의 것과 달리 모두 네모 반듯하고 글자의 모양도 일정한 바, 언뜻 봐도 같은 사람이 만든 듯 여겨진다. 지금의 평안도와 황해도 일원이 옛 한사군의 영역이었다는, 따라서 한반도는 예로부터 중국의 종속 영토였는데, 일본이 해방시켜주었다는 논리를 만들기 위한 일본인들의 작품인 것이다. 지금도 일본 사학계는 한사군의 영역을 요동과 한반도 내에 두고 있는데,(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고. ☞ '동북공정, 고조선에 관한 자충수' 참조) 우리 역시 그렇다.


    * 귀를 기울여 들으면 소위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주장보다 주류 정통 사학계의 이론이 훨씬 더 타당하니 이것은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도 그렇다.(사실 나는 아직 갈등하는 입장이지만) 하지만 위 유물은 진정 아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정말로 예레미야와 UFO에 대해 논해보자. 예레미야서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627년(혹은 626년), 즉 요시아 왕 재위 13년에 예언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던 바, 기원전 593년에 UFO를 목격한 후 그 안의 외계인, 즉 여호와를 만나 직접 예언자로서의 사역을 명령받은 에스겔보다 33년 쯤 앞선 선지자가 되겠다.(☞ '성서 속의 UFO/선지자 에스겔이 만난 외계인' 참조)


    그 요시아 왕 재위 13년 무렵 여호와는 아나돗(예루살렘의 북쪽 지역)에 살고 있던 예레미야에게 나타나 선지자로서의 임무를 부여하는데, 그 시절 유대 왕국은 그야말로 생사가 달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동쪽으로 신흥강국 바벨론(신 바빌로니아 제국)이 일어나 패권을 넘보고 있었고, 북동쪽에서도 또한 강력한 메데(미디아) 왕국이 발흥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 누가 패권을 차지하든 유다 욍국에는 큰 위협이 될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집트 왕국에서도 새로운 왕조가 일어나 앗시리아의 세력을 일소하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앗시리와와 동맹을 맺고 북진을 추진 중이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가 될 무렵의 유다와 주변국 상황(BC 627년 경)



    예레미야는 이상의 절박한 위기 속에 선지지로 임명을 받은 것인데, 그는 이와 같은 상황이 벅찼던 듯 한사코 선지자의 역할을 사양한다. 자신은 아직 나이가 어려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할 힘이 없다며. 그러자 여호와는 자신감을 부여하며 네가 목격한 것을 묻는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와 북쪽에서 기울어진 듯 보이는 솥단지를 언급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예레미야 1:11-13)


    그런데 여기서 살구나무는 아무래도 좀 엉뚱하다. 히브리 원어 샤케드(chaked)가 의미하는 아몬드 나무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아몬드 나무 역시 생뚱맞긴 마찬가지다. 지금 나라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여호와가 아몬드 나무 타령이나 하고 있는 것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 아몬드 나무가 도대체 예레미야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겠는가?(설마하니 살구나 아몬드 먹고 힘내라는 비유라고 말하는 목회자는 없겠지? 하도 이것 저것 갖다붙이길 좋아하는지라 농담 한번 해봤음^^)


    그런데 샤케드를 동사인 샤카드(chakad)로 해석하면 촛점이 맞춰진다. 즉 '지켜본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인데 여기서 원문인 마켈 샤카드(makel chakad)를 모두 인용하면 문장이 완성되니 무언가를 뚫어지게 지켜보는 모습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팡이(마켈)를 지켜본다 해석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즉 여호와가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고 한 것은 잘 지켜보았느냐 물은 것이고, 이에 예레미야가 뚫어지게 잘 지켜보았다고 말하자 이에 동의하며 그러면 네가 무엇을 뚫어지게 보았냐고 물었던 것이다.   


    이때 예레미야가 북쪽 하늘에 있는 기울어진 끓는 가마솥을 말했던 바, 바로 배기가스를 뿜으며 비스듬히 하버링(Hovering)하고 있는 UFO를 지칭한 것이었다.(끓는 솥가마가 기울어지면 뜨거운 물이 쏟아지고 그러면 위험하니..... 어쩌고 하는 통상의 설교는 헛소리에 불과하지만 의당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련다) 즉 여호와는 그 괴물체의 위력을 강조함으로써 자신 없어 하는 예레미야에게 힘을 주고자 하고 있는 것이니 그 다음 문장부터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1:14-19)


    그렇다면 여호와는 과연 그런 식으로 유다 왕국을 구했을까? 그 결론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다. 구하기는커녕 이스라엘의 패망 후에도 125년을 이어온 유다 왕국 역시 멸망하고 만다.(BC 597년) 그래서 왕과 백성들은 1천 6백km나 떨어진 바빌로니아 땅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 5년 후 바빌로니아 케바르 운하 노역 현장에 나타난 UFO와 그 속의 외계인들은 또 그들을 구하기는커녕 살아 남은 유다 백성들마저 우상을 숭배했다며 죄 살육한다. 그때의 살육과 이를 목도하던 선지자 에스겔의 처절한 절규를 앞서 '성서 속의 UFO/여호와라 불린 외계인의 대규모 학살극'에 담은 바 있다.


    그런데 예레미야 앞에서 그렇게 큰 소리를 치던 여호와는 왜 그 조그만 땅덩이 하나 구하지 못했을까? 물론 여호와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다 왕 요시야는 착한 왕이었지만 예레미야를 통해 전달된 외계인의 작전을 잘못 알아들어 동맹국 앗시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북상하는 이집트 왕 느고를 막아서게 되고, 결국 므깃도에서 맞짱을 뜨다 전사하게 된다.(열왕기하 23:29-30, 역대하 35:20-27/아마도 여호와의 작전은 앗시리아·이집트 동맹군으로써 바빌로니아의 막강 화력을 막아보려 했던 것 같다)


    * 앗시리아는 결국 바빌로니아·미디아 연합군에 패해 멸망하고 이집트 역시 갈그미스 전투에서 느부갓네살에 처참하게 패했던 바,(BC 605년) 세상은 바빌로니아 제국의 것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요시야 왕의 뒤를 이은 여호야김은 오히려 폭군이었으니, 당시 열렬한 활동을 보이던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더러 여호아의 지침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잘라 불에 태우기도 했다.(이는 앞에서도 언급했다) 시드기아 왕은 친 바빌로니아 정책을 주장하는 예레미야를 아예 붙잡아 가두었다.(결국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바빌로니아로 끌려간다)


    이렇듯 유다 왕들은 외계인들의 작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게다가 앗시리아와 이집트를 연파한 바빌로니아는 더욱 세력을 키웠던 바, 이들의 파죽지세에 여호와도 결국 손을 털고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판세는 기울었다 여긴 것이다.(그 전후로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은 유다를 세 차례 침공하는데, 586년 마지막 침공에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유다 왕국은 종막을 고한다)


    -end-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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