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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곧 성전이라는 착각성서와 UFO 2019. 3. 31. 01:34
우리는 흔히 이스라엘의 수도가 내내 예루살렘이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곳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지는 겨우 1년 여에 불과하니, 그 혼돈의 역사를 '하나님이 장난친 도시 예루살렘 I'에서 다룬 바 있다. 기원전 1010년에 수도로서 정립된(다윗 왕에 의해) 오랜 역사성과, 무려 2천 년이라는 오랜 방랑의 기간 동안 유대인들의 정신적 고향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48년 건국 시 예루살렘은 수도가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건국 당시 그곳이 요르단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건국 전쟁(1차 중동전쟁) 이후 야금야금 예루살렘을 먹어들어가 그 반을 확보하더니,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때 전 전선에서의 승리를 확신한 이스라엘 군은 그 3일 후 특공대를 투입, 전격적으로 나머지 반을 점령해버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곳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선포했다. 하지만 이슬람을 믿는 모든 국가가 이에 반발하였고,* 오일 쇼크에 겁 먹은 우방 미국마저 이에 대한 철회를 압박하였던 바,** 이스라엘도 할 수 없이 꼬리를 내리고 수도를 텔 아비브로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 예루살렘은 메카, 리야드와 더불어 이슬람 3대 성지의 하나이다.(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라 하여)
** 자원 무기화란 용어가 등장한 시점으로, 석유 소비 1위 국가인 미국에 대항해 산유량을 제한한 중동국가의 조치로 인해 세계 유가가 급등했고 우리나라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예루살렘 국경선의 변천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 특공대와 통곡의 벽 밑에서의 휴식
어찌됐든 이후 예루살렘 땅은 명실공히 이스라엘 영토가 되었는데, 그곳을 병합한 이스라엘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옛 솔로몬의 신전 유적에의 발굴 시도였다. 이는 이스라엘이 왜 그토록 예루살렘에 집착했는가를 알게 해주는 일이었다. 최초의 여호와 집 예루살렘 성전을 찾는 일이야말로 그들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지상 최대의 과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서기 66~70년 로마군에 의해 성전은 완전 파괴되었을 뿐더러(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그곳에 주피터 신전을 세웠다) 그것이 있었다고 짐작되는 장소에는 무함마드의 승천을 기념해 세운 이슬람의 바위 돔 사원이 어엿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장난친 도시 예루살렘 II' 참조)예루살렘 바위 돔 사원과 헤롯의 성전 상상도(앞에 게재했던 사진을 다시올렸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의 부침(浮沈)과 함께 세워지고 파괴되기를 반복하였던 바, 솔로몬의 성전(BC 961년) → 스룹바벨의 성전(BC 516년) → 마케베오의 성전(BC 164년) → 헤롯대왕의 성전(AD 64년 경)을 거쳤다.
이스라엘의 성전 발굴에의 의지가 아무리 강력하다 하더라도 이슬람의 신전을 파손시키면서까지 발굴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 성전 산이 있는 지역은 아랍어로 알 쿠드스(AL-Quds), 문자 그대로의 '신성한 곳'이었고, 이 올드 시티 지역은 UN 결의안 181호 이래 여러 국제 회의에서 확인된 4개 종파의 공동관리 지역이었던 바, 아무리 배짱 좋은 이스라엘이라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에 이스라엘 고고학계에서는 자국 관리 지역인 유대교 지역만을 발굴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튼 그로 인해 옛 헤롯 왕 때 건립된 성전 산의 규모만큼은 확실히 파악될 수 있었다.결과를 말하자면 헤롯 왕의 신전이 있던(솔로몬의 신전 자리에 새로 건립되었다는) 성전 산의 대지 규모는 14만 평 정도이고, 그 서쪽 성벽(축대)도 당대의 것임이 확인되었다. 앞서 말한 서기 66-70년 유대인들이 일으킨 반란에의 응징으로 신전이 파괴될 때의 성벽이 지금껏 살아남은 것이었다.(이후 그 서쪽 벽은 Wailing wall, 즉 '통곡의 벽'이라 불려졌다) 그리고 최근인 2015년에는 그곳에서 솔로몬 왕궁의 유지(遺址)가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는데, 그 진위를 떠나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그 유대인들의 최종 목표는 신전 발굴이 아니라 성전 산의 회복하여 그곳에 다시 솔로몬의 신전을 세우는 것이니, 그들의 복안에는 당연히 전쟁도 포함돼 있다. 그들이 헤롯 왕이 지은 대규모의 신전을 마다하고 솔로몬 신전의 재건을 외치는 이유는 성서에 실린 신전의 규모와 구조가 상세한 때문이기도 하지만,(열왕기상 6:1-38) 헤롯 왕이 정통 유대인이 아닌 이민족 에돔 출신의 왕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음이다. 아무튼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올드 시티 지역에 솔로몬의 신전을 재건하려는 생각은 매우 확고해 보이는데, 하지만 내가 오늘 말하려는 것은 그 솔로몬의 신전이 아니라 기원전 516년에 재건된 유대총독 스룹바벨의 제 2 신전이다.
예루살렘 올드 시티의 위치와 관할 권역
내셔널 지오그라피가 주장하는 성전 산 성벽 밑의 솔로몬 왕궁 유적
6일 전쟁 이후 정비된 통곡의 벽 광장
2017년 5월 통곡의 벽을 찾은 트럼프 미 대통령. 이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지지 선언이 이어졌다. 사실상의 국제법 위반이다.
이미 여러 차례 설명한대로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캇네자르(느부갓네살)는 기원전 605년의 공격을 필두로 세 차례나 남유다 왕국을 공격해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들을 노략질하고 유대인들을 노예로 잡아 갔는데, 그러함에도 용케 버티던 남유다 왕국은 기원전 587년 결국 패망하고 성전은 완전 파괴되고 만다.(☞ '다니엘서. 느부갓네살 왕이 목격한 괴물체는?' 참조)
그런데 그 바빌로니아 제국은 50년 뒤인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고레스) 황제에게 멸망당하였고, 키루스는 그 이듬해인 538년에 바빌론에 잡혀온 유대인 노예들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대인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삼아 유대지방을 다스리게 하고 그들 신전의 재건까지 허락한다.(이에 성서는 고레스 황제를 위대한 해방자, 또는 메시아로서 입이 마르게 칭송한다. ☞ '선지자 예레미야와 UFO에 얽힌 잡담 I' 참조 )
성서에는 그 내용이 자세하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에스라 1:1-2)
* 여기서 바사 왕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를 말함인데,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내린 예언을 이루려 세상을 그에게 주었다는 성서 특유의 과장만 빼면 위의 내용은 모두 명확한 역사적 사실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키루스 황제는 유대인의 종교인 여호와 신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페르시아 전통신앙인 조로아스터교만을 신봉했던 독실한 신자였다.정복군주 키루스(재위 BC 559-529)의 조각상
바빌론에 입성하는 키루스 황제(BC 538년)
유대인 포로해방 칙령(Edict of Restoration)이 새겨진 원통형 인장.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문이라고도 일컬어진다.
트럼프 미 대통령을 키루스 황제에 비교한 야후 뉴스의 그림. 유대인을 도운 자라는 점이 닮았다는 것일까?
대 페르시아 시대의 서막을 연 키루스 2세
유대인을 해방시킨 그를 가리켜 성서 속의 여호와마저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로 칭송해 마지않는다.(이사야 45:1)
이란 동북부 파사르가다에 있는 키루스의 무덤
이와 같은 노예해방령으로 인해 바빌론에 잡혀 갔던 유대인 중 약 2만 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고,(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환을 거부하고 그대로 메소포타미아 땅에 눌러 산다) 그들은 곧 폐허가 된 솔로몬 신전의 재건에 돌입한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쉽지 만은 않았으니 우선은 신전을 재건할 비용이 턱없이 부족했고,(키루스 황제가 일부 지원을 해주었음에도) 또 그곳에 살던 옛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신전의 건축을 방해했다.
옛 북이스라엘 왕국은 남북 분단기간 동안 남유다와는 내내 적대관계였을 뿐더러(우리나라 남북한처럼) 앗시리아에 병합된 약 150년의 기간 동안 앗시리아인과의 혼혈이 이루어져 이제는 같은 민족이라 부르기도 어색할 지경이었다.(그들의 명칭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으로 불렸는데, 이는 분단시대의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였던 까닭이다. 게다가 앗시리아 제국은 인종혼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바, 지금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티벳, 위구르 민족들에의 소멸정책과 그 양상이 비슷했다)
*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 옛 이스라엘 민족들을 왜 그렇게 방치했는가에 대해서는 성서에 아무런 언급도 없으며 이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