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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가 곧 성전이라는 착각
    성서와 UFO 2019. 3. 31. 01:34


    우리는 흔히 이스라엘의 수도가 내내 예루살렘이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곳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지는 겨우 1년 여에 불과하니, 그 혼돈의 역사를 '하나님이 장난친 도시 예루살렘 I'에서 다룬 바 있다. 기원전 1010년에 수도로서 정립된(다윗 왕에 의해) 오랜 역사성과, 무려 2천 년이라는 오랜 방랑의 기간 동안 유대인들의 정신적 고향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48년 건국 시 예루살렘은 수도가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건국 당시 그곳이 요르단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건국 전쟁(1차 중동전쟁) 이후 야금야금 예루살렘을 먹어들어가 그 반을 확보하더니,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때 전 전선에서의 승리를 확신한 이스라엘 군은 그 3일 후 특공대를 투입, 전격적으로 나머지 반을 점령해버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곳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선포했다. 하지만 이슬람을 믿는 모든 국가가 이에 반발하였고,* 오일 쇼크에 겁 먹은 우방 미국마저 이에 대한 철회를 압박하였던 바,** 이스라엘도 할 수 없이 꼬리를 내리고 수도를 텔 아비브로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 예루살렘은 메카, 리야드와 더불어 이슬람 3대 성지의 하나이다.(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라 하여)


    ** 자원 무기화란 용어가 등장한 시점으로, 석유 소비 1위 국가인 미국에 대항해 산유량을 제한한 중동국가의 조치로 인해 세계 유가가 급등했고 우리나라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예루살렘 국경선의 변천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 특공대와 통곡의 벽 밑에서의 휴식



    어찌됐든 이후 예루살렘 땅은 명실공히 이스라엘 영토가 되었는데, 그곳을 병합한 이스라엘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옛 솔로몬의 신전 유적에의 발굴 시도였다. 이는 이스라엘이 왜 그토록 예루살렘에 집착했는가를 알게 해주는 일이었다. 최초의 여호와 집 예루살렘 성전을 찾는 일이야말로 그들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지상 최대의 과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서기 66~70년 로마군에 의해 성전은 완전 파괴되었을 뿐더러(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그곳에 주피터 신전을 세웠다) 그것이 있었다고 짐작되는 장소에는 무함마드의 승천을 기념해 세운 이슬람의 바위 돔 사원이 어엿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장난친 도시 예루살렘 II' 참조)



    예루살렘 바위 돔 사원과 헤롯의 성전 상상도(앞에 게재했던 사진을 다시올렸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의 부침(浮沈)과 함께 세워지고 파괴되기를 반복하였던 바, 솔로몬의 성전(BC 961년) → 스룹바벨의 성전(BC 516년) → 마케베오의 성전(BC 164년) → 헤롯대왕의 성전(AD 64년 경)을 거쳤다.



    이스라엘의 성전 발굴에의 의지가 아무리 강력하다 하더라도 이슬람의 신전을 파손시키면서까지 발굴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 성전 산이 있는 지역은 아랍어로 알 쿠드스(AL-Quds), 문자 그대로의 '신성한 곳'이었고, 이 올드 시티 지역은 UN 결의안 181호 이래 여러 국제 회의에서 확인된 4개 종파의 공동관리 지역이었던 바, 아무리 배짱 좋은 이스라엘이라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에 이스라엘 고고학계에서는 자국 관리 지역인 유대교 지역만을 발굴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튼 그로 인해 옛 헤롯 왕 때 건립된 성전 산의 규모만큼은 확실히 파악될 수 있었다.


    결과를 말하자면 헤롯 왕의 신전이 있던(솔로몬의 신전 자리에 새로 건립되었다는) 성전 산의 대지 규모는 14만 평 정도이고, 그 서쪽 성벽(축대)도 당대의 것임이 확인되었다. 앞서 말한 서기 66-70년 유대인들이 일으킨 반란에의 응징으로 신전이 파괴될 때의 성벽이 지금껏 살아남은 것이었다.(이후 그 서쪽 벽은 Wailing wall, 즉 '통곡의 벽'이라 불려졌다) 그리고 최근인 2015년에는 그곳에서 솔로몬 왕궁의 유지(遺址)가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는데, 그 진위를 떠나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그 유대인들의 최종 목표는 신전 발굴이 아니라 성전 산의 회복하여 그곳에 다시 솔로몬의 신전을 세우는 것이니, 그들의 복안에는 당연히 전쟁도 포함돼 있다. 그들이 헤롯 왕이 지은 대규모의 신전을 마다하고 솔로몬 신전의 재건을 외치는 이유는 성서에 실린 신전의 규모와 구조가 상세한 때문이기도 하지만,(열왕기상 6:1-38) 헤롯 왕이 정통 유대인이 아닌 이민족 에돔 출신의 왕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음이다. 아무튼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올드 시티 지역에 솔로몬의 신전을 재건하려는 생각은 매우 확고해 보이는데, 하지만 내가 오늘 말하려는 것은 그 솔로몬의 신전이 아니라 기원전 516년에 재건된 유대총독 스룹바벨의 제 2 신전이다.




    예루살렘 올드 시티의 위치와 관할 권역


    내셔널 지오그라피가 주장하는 성전 산 성벽 밑의 솔로몬 왕궁 유적


    6일 전쟁 이후 정비된 통곡의 벽 광장


    2017년 5월 통곡의 벽을 찾은 트럼프 미 대통령. 이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지지 선언이 이어졌다. 사실상의 국제법 위반이다.



    이미 여러 차례 설명한대로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캇네자르(느부갓네살)는 기원전 605년의 공격을 필두로 세 차례나 남유다 왕국을 공격해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들을 노략질하고 유대인들을 노예로 잡아 갔는데, 그러함에도 용케 버티던 남유다 왕국은 기원전 587년 결국 패망하고 성전은 완전 파괴되고 만다.(☞ '다니엘서. 느부갓네살 왕이 목격한 괴물체는?' 참조)


    그런데 그 바빌로니아 제국은 50년 뒤인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고레스) 황제에게 멸망당하였고, 키루스는 그 이듬해인 538년에 바빌론에 잡혀온 유대인 노예들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대인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삼아 유대지방을 다스리게 하고 그들 신전의 재건까지 허락한다.(이에 성서는 고레스 황제를 위대한 해방자, 또는 메시아로서 입이 마르게 칭송한다. ☞ '선지자 예레미야와 UFO에 얽힌 잡담 I' 참조 )


    성서에는 그 내용이 자세하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에스라 1:1-2)


    * 여기서 바사 왕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를 말함인데,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내린 예언을 이루려 세상을 그에게 주었다는 성서 특유의 과장만 빼면 위의 내용은 모두 명확한 역사적 사실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키루스 황제는 유대인의 종교인 여호와 신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페르시아 전통신앙인 조로아스터교만을 신봉했던 독실한 신자였다.



    정복군주 키루스(재위 BC 559-529)의 조각상


    바빌론에 입성하는 키루스 황제(BC 538년)


    유대인 포로해방 칙령(Edict of Restoration)이 새겨진 원통형 인장.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문이라고도 일컬어진다.


    트럼프 미 대통령을 키루스 황제에 비교한 야후 뉴스의 그림. 유대인을 도운 자라는 점이 닮았다는 것일까?


    대 페르시아 시대의 서막을 연 키루스 2세

    유대인을 해방시킨 그를 가리켜 성서 속의 여호와마저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로 칭송해 마지않는다.(이사야 45:1)


    이란 동북부 파사르가다에 있는 키루스의 무덤



    이와 같은 노예해방령으로 인해 바빌론에 잡혀 갔던 유대인 중 약 2만 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고,(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환을 거부하고 그대로 메소포타미아 땅에 눌러 산다) 그들은 곧 폐허가 된 솔로몬 신전의 재건에 돌입한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쉽지 만은 않았으니 우선은 신전을 재건할 비용이 턱없이 부족했고,(키루스 황제가 일부 지원을 해주었음에도) 또 그곳에 살던 옛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신전의 건축을 방해했다.


    옛 북이스라엘 왕국은 남북 분단기간 동안 남유다와는 내내 적대관계였을 뿐더러(우리나라 남북한처럼) 앗시리아에 병합된 약 150년의 기간 동안 앗시리아인과의 혼혈이 이루어져 이제는 같은 민족이라 부르기도 어색할 지경이었다.(그들의 명칭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으로 불렸는데, 이는 분단시대의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였던 까닭이다. 게다가 앗시리아 제국은 인종혼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바, 지금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티벳, 위구르 민족들에의 소멸정책과 그 양상이 비슷했다)


    *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 옛 이스라엘 민족들을 왜 그렇게 방치했는가에 대해서는 성서에 아무런 언급도 없으며 이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별로 없다.(그 150년 동안 그들의 여호와 숭배 신앙은 이민족의 종교와 혼합돼 본래의 색깔마저 상실했다) 그리고 그들은 훗날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 시절, 다시 그리스인과의 2차 혼혈이 이루어져 정통 유대인과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이에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과는 아예 다른 민족이 돼버리고 마는데,(게다가 BC 128년 하스몬 왕조 시절에는 두 민족끼리 한바탕 전쟁도 치른다) 다만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일화는 그들과 유대인과의 희미한 핏줄의 유대를 말해준다. 한때 100만에 이르렀다는 사마리아인은 지금은 800여 명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 정서적으로나 외형적으로 유대인보다는 아랍인이나 팔레스타인인에 가깝다고 한다.



    그림신 산 전통축제에 참가한 사마리아 사람들


    그리심 산 정상의 교회 유적

    현재 보이는 건물 유적은 5세기 말 비잔틴 시대의 테오토코스 교회 유적이나, 1988년 이곳의 일부가 사마리아 성전의 흔적으로 밝혀졌다.



    신전의 건축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비단 사마리아인만이 아니었으니 옛 남유다 땅에 살고 있던 에돔, 모압, 아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유대인의 지독함을 잘 알고 있었던 바, 유대인들의 민족정신의 구심점이 되는 신전의 건립을 결코 달가워할 리 없었다. 이에 신전의 건립은 16년 동안이나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게 되는데, 바로 이 무렵에 등장하는 사람이 선지자 학개였다. 구약성서 학개서에 따르면 그는 다리오(다리우스 1세) 재위 2년 6개월 째 되는 날 초하루에 유대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와의 앞에 나타나(BC 520년 8월 29일) 자신이 여호와의 계시를 받은 자라 칭하며 다음과 같은 달변으로써 신전의 건립을 독려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학개 1:3-8)


    그런데 이와 같은 설교는 어디서 많이 들었음직하니 바로 교인들이 교회에서 매양 듣는 소리이다. 여러분들이 일을 많이 해도 소득이 적은 것,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것 같고 마셔도 흡족하지 않은 것 같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은 것 같으며, 월급을 받아도 구멍 뚫린 전대에 돈을 넣은 것 마냥 남음이 없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에게 헌금을 적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니 여러분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잘못이 있음을 깨우치고 열심히 일해 헌금을 많이 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실 것이요, 여러분들도 영광을 얻을 것이리라.....


    그래도 여기까지는 점잖은 편이니, 다음 대목에 이르러서는 정신이 바로 박힌 사람이면 바로 까무라칠 내용이 이어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6-9)


    해석하고 말 것도 없지만, 굳이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여호와께서 곧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역사를 이루실 것인즉 그때가 되면 온 보배가 너희에게 이를 것이요, 이 성전에는 영광이 충만할 것이다.(그러므로 너희들은 아까워 말고 헌금을 많이 해라) 만군의 왕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은도 금도 모두, 즉 세상의 모든 돈이 자신의 것이라 하셨다.(그러므로 너희들은 헌금을 아낌없이 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너희들이 받을 영광은 처음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클 터인즉 너희들은 드디어 평강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니라.


    학개는 끝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임으로써 세인들의 호주머니 털기를 가속화시킨다.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학개 2:18-22)


    이와 같은 학개의 호주머니 털기 연설에 힘입어 이후 4년 6개월의 공사 끝에 스룹바벨이 만든 여호와의 신전은 완공을 본다.(기원전 516년) 하지만 워낙에 재정이 빈약했던 탓에 신전은 솔로몬의 그것에 비해 형편없이 초라했던 듯, 그 기초가 놓여질 때 옛 성전의 위용을 기억하고 있던 노인들은 대성통곡하였고,(에스라 3:12) 학개 역시 거의 빈 주머니를 털었던 듯, 신전은 완공에 임해서도 앞서 솔로몬 왕 때와 같은 화려한 낙성식에의 기록은 아니 보인다.(☞ '솔로몬의 성전과 UFO' 참조)



    스룹바벨의 성전 상상도



    이상의 연설이 실린 학개서는 오바댜와 더불어 성서에서 가장 짧은 챕터로서, 단 2장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사용된 단어도 총 600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배우던 아래의 학개서는 약 150쪽에 이르는 적지 않은 분량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관성적으로 배워 잘 몰랐지만) 지금 읽어보니 내용이 참으로 맹랑했다. 그 내용에 대해 자세히 거론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을 배우는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헌금 사취에의 정당성이 주입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학개의 주해서


    비록 관성적으로 배우기는 했으나 그때에도 학개서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었는지, 어느날 수업 시간에 교회의 과도한 헌금 요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개진한 적이 있었다.(그때가 학개 석의 시간은 아니었고 아마도 바울의 '옥중서신' 강해 시간이었던 듯싶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응이 가히 경천동지할 만했다. 앞에 앉은 학생이 갑자기 얼굴을 돌리며 내게 따져 물은 것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교회에 자기 전 재산을 바치는 사람도 있는데..... 도대체 학개 시간에 뭘 배웠어요?"


    불의의 일격을 받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아니, 사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도 황당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나마 내가 나이가 많아 다행이지 잘못하면 맞을 뻔했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진정으로 경천동지할 만한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학생이 아닌 교수로부터였다. 그 교수의 목소리는 순간적으로 꽤 rpm이 올라간 상태였는데, 게다가 그  rpm으로 인해 떨리는 중고차처럼 불안감이 느껴지는 격한 목소리였다.


      "맞아요.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저 학생 말맞다나 교회에 자기 전 재산을 바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교회가 갖는 겁니까, 다 하나님께 드리는 거지. 재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는 예수님 말씀도 못들었어요?"


    앞서의 학생은 목사의 아들인지라 그와 같은 반응은 딴은 이해가 갈 일이었다. 하지만 이에 편승한 교수의 반응은 정말로 뜻밖이었다.


    "(교회에 전 재산을 바친) 그 사람 정신 나간 사람 아녜요?"


    내가 당시 생각나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달리 마땅한 말을 찾고 싶었지만 그밖의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뱉을 수는 없었다. 좀 더 완곡한 표현이 떠오르면 참으로 좋으련만,(그렇다면 그 말은 틀림없이 뱉았으련만) 억울하고 답답하게도 그 말은 종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의 두려움에 나는 교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으니 그저 그때까지도 흥분으로 목덜미가 벌개져 있는 앞 학생의 뒷모습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나는 이후로도 교회에 자기 전 재산을 바쳤다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불가했거니와 그걸 당연시 여기던 교수의 행동에 대한 이해 또한 얻을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아주 오랜 후에 스스로 찾은 답은 이러한 것이었다.


      '그 교수는 정식 교수가 아니라 외부 강사니 그럴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따로 목회를 하고 있거나 적어도 대형교회의 새끼 목사쯤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당연히 수입이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터.....'


    하지만 지금까지 답을 얻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성전과 교회를 동일시여기는 목회자들을 착각이다. 우리가 아는 그대로 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마련돼 있고 지성소 안에는 성스러운 십계명 석판이 든 성궤가 모셔져 있다.(출애급 시절에는 간혹 놀랄 만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으나 이후 느부갓네살이 성전을 파괴하고 성전을 보물들을 훔쳐갈 때는 정작 아무런 역할을 못했던 무용지물의 궤짝이긴 하지만..... 이하 성전의 구조는 생략하겠다) 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자들이 예배나 미사 등의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모임의 장소로서, 그 원어는 희랍어의 에클레시아(ϵκκλησια)가 될 것이다.


    그런데 70인역성서(☞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과 70인역 성서')에서 에클레시아로 번역되거나 그에 해당하는 말은 카할(קהל)과 에다(עדה)암(עם) 세 개 뿐이다. 그 가운데 성전을 뜻하는 벳 하미크다쉬(בית המקדש)는 물론 없다. 이것을 목회자들이 모를 리 없으련만 그들은 여전히 성전과 교회를 동일시여기는 착각을 저지르고 있으니 그와 같은 착각은 혹 교회라도 건립하거나 증축할작시면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리고 그때 따로 마련되는 헌금 봉투에 쓰인 굵은 궁세체의 글씨 역시 '성전 건축 헌금'이다.(그와 같은 헌금 봉투가 상시 구비돼 있는 교회가 더 많기는 하지만.)


    그들의 '성전'은 신도시가 개발되는 곳에 가장 먼저, 허름하게 등장한다. 그것이 낮은 데로 임하는 모습이면 무척 존경스럽겠건만 대부분이 재물을 땅에 쌓으려는, 즉 부동산 이익을 노린 일종의 위장전입자들이다. 나는 이들의 고급 정보력이 그저 부럽고 놀라울 따름인데, 이런 철새 목회자들은 교인을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되면 재빨리 교회를 팔고 다른 데로 날아가거나 혹은 '성전'의 증축을 시도한다. 말은 증축이지만 사실상 신축인 셈인데, 이럴 경우 일요일 아침에는 반드시 낯선 얼굴의 한 사람이 성도처럼 들어와 '성전'의 가장 뒷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매주 교회에는 빠짐없이 나오지만 성도들과는 잘 어울리려 하지 않는 그 수상한 자의 정체는 바로 그 성도들의 대가리 수를 세러 온 은행직원이다.


    목사님이 요청한 대출금은 당연히 그 대가리 수에 맞춰 결정된다. 그리고 그즈음에서의 목사님 설교는 어김없이 학개서나 말라기서에서 인용된다.(사실 종말론이 강조된 말라기서는 학개서보다 훨씬 위협적으로서,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데 있어서도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큰 돈을 뜯어내는 데는 역시 학개서가 최고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겠다는 그 목사님의 의지는 앞서 언급한 유대인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 의지에 결코 뒤지지 않을 터, 다만 다른 것은 유대인들은 그것을 철저히 공물(公物)로 생각하는 반면 우리 목사님께서는 그것이 철저히 제 재산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대물림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구태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이제는 사실 좀 지쳤다. 그래서 이번 글은 앞서 게재했던 뉴질랜드 교회 앞의 사진 두장을 옮겨 실으며 끝내려 한다.



    "요셉의 가난, 이는 하나님이 따라해야 할 힘든 행동이다"


    위와 같은 헌금에 눈이 먼 현대 교회를 비꼰 로고의 대형 광고판이 뉴질랜드의 어느 대형 교회 앞에 설치됐다.

    요셉 역시 예수의 아버지임을 배경으로 깔아 작성된 로고이다.


    그 며칠 후 광고판은 이렇듯 페인트 칠이 돼버렸지만, 뉴질랜드의 국민성이 의외로 적극적인 데 나름 놀랐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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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