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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부갓네살 왕과의 수싸움에서 밀린 여호와
    성서와 UFO 2019. 4. 1. 17:43


    성서에 바벨론으로 표현된 바빌로니아 제국은 때로는 신(新) 바빌로니아로 표현된다. 같은 바빌로니아인이 천 년 전에 세운 고(古) 바빌로니아와 구별하기 위함이다. 그 두 바빌로니아 제국은 성서에서 가끔은 갈데아(칼데아: 그들이 발흥했던 지역명)로 표기되기도 하는 까닭에 신구(新舊) 제국이 헛갈리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그 두 나라를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역사서에서의 기록은 고 바빌로니아는 함무라비 왕에, 신 바빌로니아는 느부갓네살 왕에 집중돼 있는 까닭이니 그 두 사람만 알고 있으면 신구 제국의 식별은 금방 가능하다.



    무라비 왕(BC 1728-1686)의 비

    루브르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인 2.25m의 비석에는 총 282조의 법률이 쐐기문자로 기록돼 있다.


    법문(法文)은 무려 4000년 전의 것으로 지금껏 그 형태가 완벽하다.


    흔히 오른쪽 인물을 함무라비 왕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왼쪽에 공손히 서 있는 사람이 함무라비다. 오른쪽에 앉은 태양신 샤마슈에게 법문을 내려받고 있음이다.



    확실히 세보지는 않았지만 성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방의 왕은 아마도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II, 재위 BC605-562) 왕일 것이다. 인명 표기는 각 자료마다 달라 성서에는 느부갓네살로, 신(新) 사서에는 네부카드네자르나 네부캇네자르로, 구 사서에는 네부카드넷자르로 표기되는데, 본 블로그에서는 성서의 표기를 좇아 느부갓네살로 통일하려 한다. 그의 이름이 성서에 가장 많이 등장함은 유대인에게 가장 많은 괴로움을 준 이방의 왕이기 때문일 터, 따라서 성서에서의 신 바빌로니아 제국에의 기록은 타 제국에 비해 월등히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 정점은 당연히 유다 왕국의 멸망이 될 터인데, 이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사람이 바로 느부갓네살 왕이며, 이 당시의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다.



    바빌로니아 연대기가 새겨진 점토판

    1887년 바빌론에서 출토되어 1956년에 해독된 이 점토판에는 기원전 605년 느부갓네살이 이집트 군대를 격파한 갈그미스 전투와 예루살렘의 함락에 관한 기록이 소상히 실려 있다. 점토판의 기록에 따르자면 예루살렘이 함락된 날은 기원전 597년 3월 6일이다.(영국 박물관 소장)




    라기스, 아세가의 위치와 라기스 오스트라카

    라기스는 느부갓네살이 화공(火攻)으로 함락시킨 유다 왕국의 요새 도시로, 1935년 이 요새 폐허에서 편지지 대용으로 쓰이던 총 21 개의 토기조각(오스트라카)이 발견됐다. 위의 오스트라카는 야전장교인 호샤이야가 라기스 사령관 야오스에게 보낸 것으로, 다른 요새인 아세가로부터 봉화가 도달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요새 도시 라기스

    ↖이 서한의 내용은 예레미야 34장 7절에 기록된 '바벨론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을 쳤으니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 남은 것은 라기스와 아세가 뿐'이라는 내용과 연관돼 더욱 주목을 받았는데, 위의 급보가 라기스 사령관 야오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세가가 함락된 후로 보인다. 추정하거니와 라기스 성은 이 편지를 도착한 뒤 얼마 안 돼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보다시피 위 오스트라카는 열에 의해 글씨가 많이 지워져 있다.(이스라엘 박물관 소장)



    예레미야가 흔히 눈물의 선지자로 불려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터, 그는 유다 왕국의 멸망을 막기 위해 여호와의 명을 좇아 분투했지만 결국 예루살렘의 함락과 350년 왕업의 끝을 지켜봐야만 했다. 앞서 '선지자 예레미야와 UFO에 얽힌 잡담 II'에서도 밝혔거니와, 그는 선지자가 되기를 원치 않았지만 외계인 여호와가 UFO의 비행을 실제 목격시켜 가며 억지로 선지자의 역할을 맏김에 어쩔 수 없이 신의 대리인이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때 여호와는 그에게 안위를 약속했고, 또 주변 제국들에의 멸망을 예언하였던 바, 그 내용은 성서에 분명하다.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예레미야 1:8-10)


    위 호언이 포함된 예레미야서 1장을 보면 외계인들은 분명 유다 왕국의 멸망을 막기 위해 날아온 듯하다. 주변에 초강대국들이 발호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자신들 후손의 마지막 국가인(또 다른 국가 이스라엘은 이미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했으므로) 유다 왕국의 위기를 좌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에 선지자가 된 예레미야는 그들 외계인의 명을 따라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그 30년후 유다 왕국은 결국 망하고 말았다.


    나는 앞서도 그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었다. 성서적으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왜 그 조그만 땅덩이 하나 구하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호와에 대한 충분한 변론도 겻들였다. 유다 왕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이집트 왕 느고와 맞짱을 뜬 것은 예레미야를 통해 전달된 작전 코드를 잘못 해석한 때문이요, 여호와가 예레미야를 통해 전달한 작전 지시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자르고 불태운 여호야김 왕의 꼴통짓으로 결국은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불러왔노라고. 그리고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역시 마찬가지였노라고.




    므깃도 요새의 위치와 전경

    구약성서가 헬라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유명한 아마겟돈이 된 므깃도 요새다. 가나안 시절부터 존재했던 이 천혜의 요새는 여호수아도 포기했을 만큼의 난공불락의 성채로서(아마도 다윗 왕 때 점령된 것으로 보인다) 유다 왕 요시야는 이집트 군을 이끌고 북상하는 느고 왕을 맞아 이곳에서 일전을 벌이지만 패해 목숨을 잃는다.(BC 609년/역대하 35:21-24)↘


    므깃도 요새의 미니어처
    ↖이집트 왕 느고는 앗시리아가 바빌로니아에 붕괴되면 이집트 역시 위험해질 것이라는 순망치한의 생각으로 앗시리아 왕 앗수르발리트 2세와 공동전선을 펴기 위해 북상한 것인데, 이 계획에 요시아가 쓸데없이 끼어든 셈이었다. 이로 인해 유다는 이집트로부터 내정간섭을 받게 되었고, 앗시리아·이집트 동맹군으로써 바빌로니아의 막강화력을 막아보려는 여호와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므깃도 유적 보호 펜스

    그에 앞서, 유다왕 아하지야가 예언자 예후가 이끄는 북왕국의 혁명에 연루됐다 화살을 맞고 숨진 곳도 이곳이다.(열왕기하 9:27) 나아가 므깃도는 요한계시록(16:16)에 예수와 사탄의 최후의 전쟁이 예견돼 있는 곳이지만 전체면적 10만㎡(3만 평)에도 미치지 못하는 협소한 장소이다. 



    갈그미스(카르케미시)의 위치와 전황도.

    이곳 갈그미스까지 친출한 이집트 왕 느고는 앗시리아를 도와 일시적으로 바빌로니아의 진격을 저지한다. 느고는 근접한 립나 성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역전까지 노려보지만느부갓네살의 대규모 반격에 직면하게 된다.↘


    갈그미스 요새의 전경

    ↖느부갓네살은 이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는데,(BC 605년/예레미아 46:2-12) 이후 바빌론으로 돌아가 아버지 나보폴라사르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앞에 보이는 강이 유프라테스로 성서에는 이 강물에 많은 이집트 군이 빠져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공격당하는 예루살렘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에도 유다 왕 여호야김은 이집트가 도와줄 것을 믿고 바빌로니아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열이 받은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공격, 성전의 보물들을 노략질하고 수많은 귀족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다. 이것이 바빌론 1차 포수로, 다니엘이 끌려간 것도 바로 이때다.(BC 605년/열왕기하 24:2, 다니엘 1:1-4)


    20세기 복원된 예루살렘 성

    ↖ 여호야김은 전란 중 부하에게 피살당하고, 이어 여호야긴이 왕에 오르지만, 그 역시 느부갓네살의 2차 공격을 받아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천 여 명의 귀족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간다. 이것이 바빌론 2차 포수로, 에스겔이 끌려간 것도 바로 이때다.(BC 601년/열왕기하 24:10-16)   위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프란시스코 헤이예즈가 1867년에 완성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라는 작품이다.


    보복하는 느부갓네살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잡아가며 요시야의 셋째 아들인 시드기야를 꼭두각시 왕으로 앉히나 그 역시 예레미야의 권고를 무시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느부갓네살은 세번 째로 예루살렘을 공격하는데 이번에는 그 보복으로 예루살렘을 철저히 불태우고 성전도 파괴시킨다.↘


    20세기 복원된 예루살렘 성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모두 죽임을 당했으며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힌 채 사슬에 묶여 나머지 백성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간다. 이것이 3차 바빌론 포수인데, 이로써 유다 왕국은 종막을 고하게 된다.(BC 587년/열왕기하 25:1-12, 예레미야 39:1-10) 위 그림은 1787년 이탈리아 화가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시드기야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바빌론 포수 도해

    유대인들이 끌려간 거리가 장장 160km이다. 그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텔 아비브라고 하는 곳에 집단거주하며 강제노역에 시달리게 된다. 훗날 이스라엘 공화국이 건국되며(1948년) 그 수도의 명칭을 텔 아비브로 명명한 것도 그 때문이니 이때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아무튼 이렇게 유다 왕국은 멸망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임명된 후 멸망까지 이르는 그 30년 동안, 전지전능하다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여준 행동인즉 시종 무력하기 짝이없다는 것이다. 더욱 의아한 것은(아니 놀라운 것은) 여호아가 예레미야를 시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항복을 권유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성서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궁금하고 의아히 여기는 대목이 아닐 수 없을 터, 그 내용을 다시 주목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당하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하건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기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예레미야가 이르되,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넘기지 아니하리이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아뢴 바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전하시리이다. 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예레미야 37:17-21)


    나아가 해괴하기까지 한 위의 내용은 절대 전지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다. 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이처럼 무책임하고 비굴한 행태의 신을 신으로서 보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유다의 왕들이 여호와의 작전 지시를 오판했다 하더라도(그래서 멸망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여호와의 한계는 예레미야서 전반을 통해 극명히 드러난다. 게다가 그는 비겁하기까지 하니 멸망의 원인을 시종일관 유다의 왕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느부갓네살과의 수싸움에서 패한 셈이지만,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비겁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때의 여호와는 분명 무능한 자라는 것이다.(여호와가 어느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식민지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외계인의 일반적 호칭이라는 것을 이미 수차례에 걸쳐 언급한바 있다) 나의 생각에는 그 여호와는 필시 좌천의 형태로 전보발령됐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그를 증명하는 것이 그 15년 뒤 UFO를 타고 바빌로니아 제국 니푸르 시에 나타난 새로운 외계인이다.(☞ '성서 속의 UFO/선지자 에스겔이 만난 외계인'


    그의 이름은 알 샤다이,(이 역시 직책명일 가능성이 높다) 과거 시나이 산에 나타나 모세를 영도자로 임명한 후 출애급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바로 그 자였다. 앞서 포스팅한 '교회가 곧 성전이라는 착각'에서도 언급한 바 있거니와 이번에 새로 나타난 여호와는 확실히 바빌론으로부터의 엑소더스를 이룬다.(그것이 페르시아 키루스 황제의 힘이든 어쨌든) 그 알 사다이의 정체가 궁금하신 분은 '새로운 여호와 알 샤다이의 출현'을 참고해 주시길.....  -end-


     


    느부갓네살 왕이 새겨진 돌



    노르웨이 국립도서관 소장의 이 현무암 돌판의 오른쪽에는 느부갓네살로 추정되는 사람이 서 있고, 에텐 멘 앙키 지구라트(흔히 말하는 바벨탑)의 평면도와 입면도가 그려져 있다.


    탑 위의 글씨는 '에테 멘 앙키 지구라트 카 딩키 라키', 즉 '카 딩키 라키에 세워진 이 땅의 중심이 되는 지구라트'라는 의미로서, 카 딩키 라키는 수메르어로 바빌론을 뜻한다. 에테 멘 앙키는 느부갓네살 왕이 아버지 나포폴라사르의 유지를 이어 건립한 대규모 건축물로서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느부갓네살의 이름이 선명한 벽돌

    영국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벽돌은 필시 에테 멘 앙키 지구라트 건설에 사용됐던 8천5백만 개 벽돌 중의 하나일 게다.



    에테 멘 앙키의 건축 의도를 밝힌 느부갓네살 왕의 실린더

    아버지 나포폴라사르 왕이 세운 에테 멘 앙키가 벼락과 지진으로 무너져 자신이 마르둑 신의 이름으로 재건했다고 밝히고 있다.



    구글 맵으로 본 에테 멘 앙키 유지(遺址)


    에테 멘 앙키 상상도

    높이 약 100m에 이르렀던 이 거대 지구라트에 대해서는 사실 설명이 필요없다.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바벨탑과 언어혼란의 진실' 참조



    바빌론 공중정원의 유지(遺址)
    느부갓네살은 왕위에 오른 후 미디아 왕국의 아미티스를 아내로 맞는다. 그런데 바빌론은 기후가 척박해 꽃과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 관계로 아미티스는 늘 고향의 푸른 숲과 꽃들을 그리워 했다. 정복 왕 느부갓네살은 또한 애처가이기도 했던 듯 그녀를 위해 테라스 형태의 고층 정원을 건립해 꽃과 나무를 기르게 만드니 이것이 고대 필론이 말했던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바빌론 공중정원이다. 이 자리는 공중정원이 있었던 자리로 유력시 되는 바빌론 성의 동북쪽 지점으로 에테 멘 앙키의 유지를 찾은 로베르트 콜데바이가 비정한 곳이다.



    공중정원 상상도

    기계식 펌프를 이용해 유프라테스 강물을 정원 꼭대기의 물탱크까지 끌어올려 사용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가로 세로 400m, 높이 15m의 기단 위에 건립되었으며 높이는 105m로(추정) 오늘날 30층 빌딩의 규모다.



    아미티스 이미지

    대강 이 정도의 미인이 아닐까 싶어 외국 트위터가 올린 아미티스의 이미지를 리트윗했다. 공중정원을 보고 놀라는 모습이면 어울릴 듯하다.



    이슈타르 문

    바빌론 성의 정문이던 것을 제국주의 독일이 통째로 뜯어와 베를린 박물관으로 옮겼다. 코발트 법랑을 입힌 벽돌로 건축됐다.



    느부갓네살의 원통형 비문

    느부갓네살 왕은 기원전 605년부터 562년까지 바빌로니아 제국을 통치했던 메소포타미아 역사상의 위대한 군주 중의 한 명으로 그의 긴 통치 기간 역시 손에 꼽힌다. 그는 43년이라는 통치 기간 오리엔트 전 지역을 통일시켰으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제국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으니 그 33년 뒤인 나보니도스 왕 때 페르시아 키루스에 의해 멸망당한다. 그저 제국의 영화가 덧없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바빌론에 입성하는 키루스 황제

    앞의 그림을 다시 올렸다. 키루스는 느부갓네살이 잡아온 유대인들을 해방시켰던 바, 여호와는 그를 메시아로 칭송해 마지않는다. 어찌됐든 새로 온 여호와는 제 할 일을 한 셈이다.



    윌리엄 브레이크가 그린 느부갓네살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브레이크는 1795년 느부갓네살 왕의 모습을 이렇게 흉하게 표현했다. 기독교 지상주의의 유럽사회에서 그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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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