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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에 살던 서양인 호모 사피엔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0. 4. 18. 06:16

     

    앞서 '한반도의 구석기 시대'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전곡리에서 발견된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만든 그 영특한 주인공이 누구인가는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나는 여태껏 그에 대해 속시원한 대답을 주는 책이나 논문을 만나지 못했다. 그것이 발견된 지 40년이 넘었음에도 말이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유물만 대거 출토됐을 뿐 인골 화석은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던 바, 유물의 주인공을 말하는 것은 아무리 기막힌 설명을 갖다대도 추정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러던 중 1983년 청주시 문의면 두루봉 동굴에서 놀라운 인골 화석이 발견됐다. 5세 정도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한 인골이었다. 학자들은 이 인골이 4만 년 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이라 판단내리고 발견자의 이름을 따 '흥수 아이'라 명명했다.(☞ '악마의 문' 인골은 한민족의 조상인가?') 이 '흥수 아이'는 남북한 학자에게는 물론이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4만 년 전이라는 연대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인골의 주변에서 발견된 (국화) 꽃가루였다.

     

    4만 년 전이면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시절이었다. 이에 학자들은 '흥수 아이'가 네안데르탈인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는데, 우연찮게도 인골의 주변에서 발견된 꽃가루는 과거 유럽 지역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장례 풍습과 비슷했다. 주변에 꽃가루가 뿌려진 채 고이 장사지내진 4만 년 전 구석기 시대 아이의 주검..... 그 애잔함은 교과서에도 실렸고, 그러면서 그것이 은근슬쩍 한반도의 네안데르탈인으로 둔갑하려는 찰나, 반전이 있었다.

     

     

    두루봉 동굴에서 발견된 어린 아이 인골

     

    인골 주변에서 발견된 국화 꽃가루

    이 꽃가루로 인해 '흥수 아이'는 국화꽃이 만발한 어느 가을날 쓸쓸히 저 세상으로 갔다는 슬픈 스토리까지 얹어졌다.

     

    복원된 '흥수 아이

    '4만 년 전의 얼굴하기엔 너무 모던하다 싶었는데.....

     

     

    이상의 내용이 고착화될 즈음 '흥수 아이'가 4만 년 전 구석기 시대의 인골이 아닌 17~19세기 무렵의 인골이라는(나아가 현대인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처음으로 포문을 연 사람은 미국 UC 리버사이드 대학의 이상희 교수로, 그가 이 인골이 4만 년의 것일 수 없다는 여러가지 증거를 제시했는데, 그중 가장 힘 주어 강조한 사실은 '흥수 아이'가 화석화된 인골이 아니라는 점이었다.(그 주장은 충분히 공감받을 수 있는 내용이다)

     

     

    충북대 박물관의 '흥수 아이'를 살피는 이상희 교수

     

    이제는 모호한 입장이 된 '흥수 아이'

    처음의 폭발적 관심과 달리 이 인골은 국제 인류학회에서 아무런 위치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간 행해진 세 차례의 유전자 검사에서도 아무런 결론을 얻지 못했다.

     

    진화에 대해 말하는 이상희 교수

    이상희 교수는 자신을 소개할 때 늘 '고고학을 공부하는 사람'(가르치는 사람이라 하지 않고)이라고 해 신뢰가 증폭된다.(개인적 생각임)

     


    반면 북한에서는 운 좋게도 고인류의 인골이 꾸준히 발견되었다. 즉 1972~3년 덕천 승리산 동굴 발굴 과정에서 수습된 구석기 시대인의 치아 2개와 오른쪽 빗장뼈를 필두로, 평양 역포구역 대현동 동굴, 평양 승호구역 만달리 동굴, 평양 상원군 중리 금천 동굴, 평양 상원군 용곡리 동굴, 함경북도 화대군 석성리 동굴에서 고대인의 인골이 발견됐다.

     

    북한은 승리산 동굴에서 추가로 발견된 하악골을 근거로 '승리산인'을 복원했고,(35세 정도의 남자로 추정됨) 역포 대현동 동굴에서 발견된 7~8세 어린이의 두개골 화석으로 '역포인'을, 만달리 동굴에서 발견된 25~30세 정도의 인골 화석으로 '만달인'을 복원했다. 특히 만달리 동굴의 인골은 거의 완전한 형태로서 발굴돼 관심을 모았는데, 북한 학자들은 자기 식대로의 분류인 '원인 → 고인 → 신인'의 다음 단계인 '조선 옛유형 사람'으로 분류했다.(우리나라의 신석기인 쯤에 해당됨) 

     

     

    4만5천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추정되는 승리산인

     

    10만 년 전 중기구석기인으로 추정되는 역포인 

     

    2만 년 전 사람으로 추정되는 만달인(사진출처: 경기문화재단)

     

     

    우리가 이 땅의 신석기인들을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보듯, 북한 학자들도 '조선 옛유형 사람'을 우리 민족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만달인'을 우리 민족의 조상으로 여기기는 어려우니 무엇보다 두개골이 장두형(長頭型)이라는 것이 걸린다. 모두가 알고 있는대로 우리 한국인은 거의 대부분이 앞뒤 머리가 짧고 앞 머리가 넓은 단두형(短頭型)이다.

     

    반면 머리가 앞뒤로 긴 장두형은 22명에 1명 꼴에 불과한데, 이 같은 장두형은 서양인들이 대종을 이룬다.(머리가 길다보니 아무래도 얼굴형이 입체적이다) 따라서 동양인은 모두 단두형이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세계에서 단두형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아시아에서는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 아시아 일대와 중앙 아시아, 그리고 유럽의 알프스 일부 지방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앙 아시아인의 단두는 한국인의 단두와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한국인의 경우는 앞뒤 머리길이가 절대적으로 짧지만, 중앙 아시아인은 머리길이가 짧지 않고 너비가 아주 넓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게 보이는 것이다.(<과학으로 증명된 한국인의 뿌리> 이종호 저)

     

    즉 단두형을 한국인의 특질로 봐도 무방한 것인데, 위에서 말한 '만달인'은 전형적인 장두형의 머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만달인'은 한국인의 조상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까지 흘러온 유럽형 인간(Caucasoid)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한반도에도 서양인이 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장두형 특징은 주구점에서 발견된 산정동인(山頂洞人, Upper cave man)에게서도 나타나 장두형 인간을 반드시 서양인으로 국한시키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산정동인에게서는 한국인의 유전자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까닭이다.

     

     

    주구점 박물관에 전시된 산정동인의 석기와 두개골 모형

    산정동인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 속하며 뇌 용량은 1300-1500ml로 현대인 뇌 용량과 거의 맞먹는다. 

     

    1930년 발견된 두개골로 복원한 산정동인의 얼굴.

    인류학자 바이덴라이히(Weidenreich)는 장두형 두개골로 인해  유럽 인종의 화석으로 분류했으나 후대의 연구 결과, 외형은 오히려 원시 몽골인종을 닮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장두형의 호모 사피엔스 크로마뇽인 화석

      

    장두형의 코카서스인 두개골 화석

     

     

     

     

    장두형 연예인들

    장두형 인간은 작은 얼굴을 덤으로 얻는다. 두상의 폭이 좁아 자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우리가 놀라는 대다수 서양인들의 머리통이 다 그렇다. 

     

     

    * '한반도에 살던 푸른 눈의 원시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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