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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문화 가정이 희망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0. 4. 27. 06:23

     

    《사기(史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의 '기자동래설'을 믿는다면 우리나라 다문화 가정의 역사는 무려 3천 년이 넘고, '위만귀화설'을 믿는다면 다문화가정의 역사는 2천 년이 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존중해 가야 김수로 왕의 아내 허황옥을 남방 여인으로 여기면 다문화 가정의 역사는 1,988년 전에 시작되었고, 이 모두를 부정해도 한민족의 다문화 가정은 최소 1,600년 전에 출발하였다. 신라 내물왕이 붕어한 해의 역산(逆算)이다.  

     

    신라 경주김씨의 선조가 중국 땅에서 온 흉노족이며 내물왕 때부터 김씨 왕조의 세습이 시작되었음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인 바, 내물왕이 죽은 402년을 다문화 가정의 기원으로 삼아도 무방할 것이라는 얘기다.  살펴보자면 우리 다문화 가정의 역사는 이렇듯 유구하니 서역인들이 개경에 쌍화점(雙花店)이라는 만두가게를 열 정도로 귀화 외국인이 많던 고려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폐쇄적인 조선시대에도 이지란, 김충선, 박연 등의 외국인이 본의든 아니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경주 계림 뒷편에 자리한 내물왕릉

     

    김해 수로왕비릉과 그녀가 배에 싣고 왔다는 파사석. 배의 균형을 잡는 평형석일 가능성이 높다,

     

    경주 원성왕릉 좌우의 서역인 상

    헌강왕 때의 처용도 서역인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이지란은 이성계를 따라 종군하여 공을 세운 여진족 장수 퉁투란(佟豆蘭)으로서, 엄밀히 말하자면 고려 말의 귀화인이나, 김충선은 잘 알려진 대로 임진왜란 때의 항왜(降倭, 항복한 왜인) 사야가(沙也可)로서 전란에 많은 공을 세우고 임금으로부터 성과 이름을 하사받아 김해 김씨로 살며 후손을 이었다. 박연은 그보다 시기적으로 조금 뒤에 조선에 난파되어 온 네덜란드 선원 얀 얀스 벨테브레이(J. J. Weltevree)로, 훈련도감에서 총포를 만들고 병자호란에도 큰 공을 세워 성과 이름을 하사받았고, 조선 여인과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다.

     

    그런데 이지란과 김충선의 후손은 알려져 있으나 박연의 후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어느 순간 멸절되었다는 것이니 외모적으로 피섞임이 선명했을 그들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증언해준다. 아마도 그들이 고구려, 신라, 고려시대와 같은 개방적인 분위기의 환경에서 살았다면 분명 그 후손이 이어졌을 터, 하지만 외국이라고는 오로지 중국밖에 모르는 꽉 막힌 조선사회에서의 운신이 절대 녹록치 않았을 것이리라.(지금도 그러한데 당시는 오죽했으랴)

     

     

    고향인 네덜란드 드 라이프에 세워진 박연의 동상

     

     

    우리가 단일민족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악마의 문 인골은 한민족의 조상인가?'에서 정리를 끝냈으므로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겠고, 우리의 순혈주의에 대해서도 '한반도에 살던 푸른 눈의 원시'에서 비판적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우리가 지금 내연(內燃)하는 다문화 가정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까놓고 얘기하자면 자급자족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외국 처녀들을 데려오게 된 것인데, 그런 마당에 그들을 차별하는 것은 도의적으로도 옳지 못하거니와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이 자료를 다시 게재한다.

     

     

    "야! 다문화"

    담임쌤은 내 친구를 이렇게 불러요.(2018. 7. 29일 서울신문 기사)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의 출산 기피현상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 저하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2년 연속 출산율* 0명 대(0.98→0.92)를 기록했는데 이대로가면 2400년에는 인구 부족으로 부산시가 사라지고 그후 100년 뒤에는 서울에서 한 명의 아기도 태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리하여 900년 후에는 인구가 없어 대한민국은 아예 없어질 것이라 하는데, 투발루와 몰디브에 이어 UN이 예상하는 세계에서 먼저 사라질 나라이다.(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유례 없는 과소 출산율을 보이고 있지만 세계의 인구는 오히려 증가 추세이다)

     

    * 여성 한 명이 평생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아기의 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아름다운 낙원 투발루는 2060년 사라진다. 투발루 공화국은 2006년에 이미 국토 포기선언을 했다.

     

     

    지금과 같은 해수면 상승이면 몰디브는 2100년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이 아름다운 도시 부산은 인구 감소로 인해 2400년 사라진다.

     

     

    ~ 미래학자들은 대한민국에서 부산이 가장 먼저 없어질 도시라고 예측했다. 구체적으로 부산은 2400년 도시 기능이 상실되어 아직 도시 기능이 살아 있는 경기권으로 인구 탈출 행렬이 일어날 것이며, 2413년 부산에서 마지막 출생자가 탄생할 것이라 예측했다. 우리나라 전체로는 2075년이면 대한민국 인구 40%가 사라지고, 이후 인구 감소는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어 그 후 20년이 지난 2095년이면 한반도 인구는 현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불과 75년 후이다. 당장에 시급한 것은 이 나라의 경제를 이끌 생산가능인구인데 그것을 충당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해외 노동력의 유입밖에 없다.

     

    내가 계속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품지 못하면 우리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곧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이니 그들을 키우지 못한다면 우리의 경쟁력은 당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다행히도 대상국가 사람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미국 시민이 되기를 원하면서, 까닭에 꼴사나운 원정 출산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저들이 대한민국의 시민이 되는 것은 꺼려하는 심보는 또 뭔가? 차마 외국인 처자 학대 사건을 필설로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몇 해 전 베트남 총리가 '대한민국은 사돈의 나라'라고 인사했을 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던 심정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 늙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을 젊게 만드 수 있는 방법, 나아가 대한민국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외국의 젊은이들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만드는 방법 뿐이다. 단일민족의 자긍심에 젖어온 우리로서는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길은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가는 길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그 길목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한 마당에 우리의 미래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핍박하는 것은 코 앞의 미래도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와 좁은 속내를 가진 못난이들이나 하는 짓일 텐데, 나라의 동량을 키워야 할 교육자들이 그짓을 한다니 그저 한심하고 기가 막힐 뿐이다. 

     

    ~ 삼성경제연구소는 대한민국의 인구가 2100년 2,468만 명으로 반 토막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2060년에는 국민연금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고 추정했다.(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집계)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장기재정전망>에서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합재정수지가 2021년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향후 18년 후인 2033년에는 국가 파산 위기까지 간다고 예견했다. 암울한 이야기다. 그러나 어쩌랴. 모든 미래 예측 가운데 인구 추계가 가장 잘 맞는다고 하니 이것은 가설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2015년 7월 6일 <정경뉴스> 기사 발췌)

     

     

    2030년부터 줄 것이라고 예상되던 인구감소가 12년 앞당겨졌다.이에 생산가능인구 역시 한해 수십만 씩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2017년 10월 8일 YT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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