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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일랜드의 비극과 영화 속의 아일랜드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0. 4. 17. 06:50

    2) 아일랜드 게일어(語)의 비극과 IRA

     

    아일랜드인들이 겪은 또 하나의 비극은 천년 동안 사용해온 자신들의 언어(게일어)를 잃어버린 일이었다. 그들은 식민지 시절, 지주들의 압제 속에서도 자신들의 언어를 지켜왔다. 밖에서는 영어를 사용할지언정 집에 돌아와 자신들의 언어를 쓸 때 그들은 행복했고 가족애는 돈독해졌다. 하지만 그 가족들은 차츰 해체됐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언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바,(하다못해 구걸을 하더라도 영어를 써야 했다) '고르타 모르'(An Gorta Mor, 대기근)로부터 40년이 지난 1891년에 이르러서는 아일랜드어를 쓰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3.5%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고르타 모르'의 원인이 된 감자곰팡이는 20세기 들어 저항력이 강한 신품종의 감자가 도입되며 사라졌다. 하지만 아일랜드인들의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는 결코 사라질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16년의 부활절 선언을 시작으로 무력 봉기가 일어났고, 1919년부터 시작된 2년 반의 전쟁 끝에 비로소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그들의 독립은 식민지 국가의 독립이 태동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점도 있었지만, 무력 독립을 이끌었던 IRA(Irish Republican Army)의 필사적 투쟁과 아일랜드 국민들의 아낌없는 지원이 그 원동력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언어도 회복되어 영어와 게일어가 공용어로 채택된다) 

     

    1921년 12월 6일 아일랜드는 나라를 세우고 에이레(Eire)라는 게일어 국호를 되찾았다.(1950년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환원됨)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회복이라고는 보기 힘들었으니 영국은 아일랜드 북쪽 지역인 북아일랜드 6개 주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주민의 대다수가 가톨릭이 아닌 영국 국교회를 믿는다는 이유로) 자국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쉽게 얘기하자면,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경상도 지역은 일본이 다스리는 상태..... 지금도 가끔 이 지역이 시끄러운 것은 IRA의 후예들이 국토의 완전 수복을 외치는 까닭이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영토와 북아일랜드 지역

     

    현재는 잠시 수면 아래로 숨은 상태지만 북아일랜드 지역은 유럽의 대표적 분쟁 지역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쟁에 준하는 사건들이 이어졌고 사상자도 10만 명이 넘으나 우리 대한민국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있어 먼 나라 일에 관심을 쓰기 힘들었을뿐더러 켈트족과 앵글로 색슨족의 싸움, 가톨릭과 영국 국교회의 싸움이라는 저변의 카테고리가 우선 낯선 까닭이었다. 반면 미국이나 영연방 국가(캐나다, 호주를 비롯한 54국)에서는 큰 관심사였던 바, 이들 나라를 시장(市場)으로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만 해도 수십 편에 이른다.

     

    ~ 대표적인 영화로는 '패트리어트 게임'(1992), '크라잉 게임'(1993),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  '데블스 오운'(1997), '블러디 선데이'(2002),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71, 벨파스트의 눈물'(2014) 등이 있으며 모두 수작(秀作)으로 흥행에도 성공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부 재미를 보지 못했던 바,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서로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니 '크라잉 게임'은 동성애 영화로 오인됐고, '데블스 오운'은 화려한 액션 신과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크라잉 게임' 포스터
    '데블스 오운' 포스터
    블러디 선데이' 포스터. 1972년 1월 30일 발생한' 피의 일요일' (Bloody Sunday)' 사건을 다룬 영화다. '피의 일요일'은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에서 시민권을 요구하는 아일랜드의 비무장 시위자들에게 영국군이 발포, 27명을 사상시킨 사건으로 IRA의 무력 투쟁이 가속화되는 계기가 됐다. 

     

    아일랜드인과 영국인(잉글랜드인)의 민족감정은 한·일 민족감정과 비견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역사를 더듬어 보자면 아일랜드와 한국은 피해국임에 분명하다. 이 두 나라는 침략을 당했던 것이지 다른 나라를 침략해 수탈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민족감정에서 비롯된 근거 없는 피해의식도 있다. 이를테면 앞에서 말한 '고르타 모르'(아일랜드 대기근)의 음모론 같은 것이다. 즉, 19세기 급격히 불어난 아일랜드 인구 증가에 겁을 먹은 영국이 아일랜드의 인구를 감소시키기 위해 벨기에 엔트워프 항에 반입된 남미산 불량감자를 들여와 보급시켰다는 썰 등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때 너무도 많은 아일랜드이 죽거나 이민을 가서 8백만 명에 이르렀던 아일랜드의 인구는 지금껏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현재 약 495만) 북아일랜드 신·구교도의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아일랜드가 잉글랜드의 식민지가 된 16세기 이후 영국은 아일랜드로 신교도들을 대거 이주시켜 종교를 이용한 식민지 경영을 획책했고, 그로부터 비롯된 뿌리 깊은 종교분쟁은 영토 문제와 맞물려 일층 복잡하게 전개됐다. IRA가 북아일랜드 회복을 위한 무장투쟁을 전개했을 때 그들과 맞서 싸운 것은 영국 정규군이 아니라 북아일랜드 신교도들이 주축이 된 얼스터(Ulster) 민병대였다.(북아일랜드는 명목상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자치정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71: 벨파스트의 눈물' 포 스터.  영국 영화 '71'은 '71: 벨파스트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됐다.  벨파스트는 북 아일랜드의 수도로 북아일랜드 사태의 화약고와 같은 곳이다. 이 영화는  북아일랜드 분쟁을 막기 위해 벨파스트에 파견된 영국인 병사의 혼돈을 그렸는데, 보다시피 상을 잔뜩 받았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난해하다.
    벨파스트 피스 라인.(Peace lines)  신구교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장벽으로 벨파스트, 런던데리를 비롯한 북아일랜드 전역 곳곳에 이 같은  피스 라인이 설치됐다.

     

    20세기 내내 계속된 북아일랜드 분쟁은 1998년 굿프라이데이라 불리는 평화 조약이 체결되며 소강상태가 됐다. 그리하여 영국 잔류를 원하는 신교계 주민과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원하는 구교계의 싸움은 일단 수면 아래로 잠기게 되었는데, 즈음하여 출범한 EU(유럽 연합)도 한몫을 했다. 이제 유럽은 같은 화폐를 공유하고 관세가 철폐된 국경 없는 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려진 대로 영국이 올해 초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선언했던 바, 북아일랜드 문제는 또 어떻게 흘러갈지.....   

     

    이와 같은 식민지 역사와 더불어 아일랜드인의 격정적이고 노래를 즐기는 민족성은 곧잘 우리 한국인과 비교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는 '데니 보이' 외에 'Only When I sleep' 정도.....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그룹 더 코어스(The Corrs)가 부른 이 노래는 오래 전 영화 '주홍 글씨'에서 주연 배우 이은주가 직접 불러 우리에게 친숙해졌다.(그녀는 이 영화에서 재즈 가수로 나온다)  그 아름다웠던 배우 이은주는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떠나갔고, 그녀의 노래 솜씨에 감탄해 달려왔던 나의 동생도 곁에 없다. 지금 TV에서는 어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대한 설왕설래가 한참인데, 그 열기가 무색하게 문득 쓸쓸해진다.


     

     

    영화 '주홍글씨' 속의 이은주와 그녀가 부른 'Only When I sleep'

     

    물론 U2도 빠질 수 없다.  

     

    U2 내한공연 실황  

     

    U2 보노에 대해

     

     

    아일랜드란 나라와는 상관 없지만 내가 꼽은 걸작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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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