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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백제를 찾아서 II - 서울 삼성동토성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1. 2. 1. 02:19

     

     

    말하기 새삼스러우나 백제 678년 역사 중 웅진(공주)과 사비(부여)를 수도를 삼은 기간은 185년에 불과하다.(웅진 시기: 476-538, 사비 시기: 538-660) 나머지 493년은 위례성(서울, 혹은 서울 부근)을 수도로 삼았다. 우리는 백제가 위례성을 수도로 삼았던 그 시기를 흔히 한성백제(漢城百濟)라 부른다. 그 한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도 갑론을박 중이지만 아무튼 무려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백제의 중심은 한강 부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백제를 만나기 위해서는 공주나 부여로 가야 한다. 서울이나 그 인근에서는 백제의 흔적이 사라졌거나, 혹은 있더라도 잊혔기 때문이다. 혹자는 매일 출퇴근 길에서, 혹은 상시 풍납토성을 마주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백제의 도성(都城)임을 인식하는 분은 드물다. 몰라서가 아니라 존재감이 없어서이다. 존재감이 없는 존재는 잊히기 마련이다. 

     

     

    서울에 남은 백제 / 올림픽대교와 천호대교 사이 풍납동 일대에 백제 도성 2.7km가 남아 있다.
    광진구 아차산성에서 바라본 백제의 흔적
    백제 개로왕이 죽은 아차산성 / 476년 고구려의 공격에 한성이 함락되고 백제 개로왕이 이곳 아차산성으로 끌려와 참수되며 온조부터 개로왕까지 21명의 왕이 다스린 한성백제 493년간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풍납토성 남쪽 성벽 구간
    풍납토성 동쪽 성벽 구간
    풍납토성 북쪽 성벽과 사적비
    풍납토성 출토 유물

     

    그래도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은 이제는 한성백제 시절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던 성임이 알려져 보호되고 있다. 서울 개발의 와중에서 잘리고 사라졌지만 그렇게라도 백제가 서울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어떨 때는 대견스럽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완전히 잊힌 백제의 흔적이 있다. 다름 아닌 삼성동 토성으로, 백제가 건국 초기 한강 유역을 수도로 삼을 때 건설한 Big 3 성 중의 하나가 이제는 완전히 사라지고 잊힌 것이다. 

     

    삼성동 토성은 이름이 뜻하는 그대로 서울 삼성동에 있는 초기 백제의 토성이다. 1917년 발행된 일제의 <조선고적조사보고>에는 이 성이 '광주군 언주면(지금의 강남구 삼성동)에 있으며 북으로는 한강에 접하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뚝섬 방향을 내려다보는 토축 산성'으로 기록돼 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삼성동토성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토성이 지금도 있을까? 행정구역상 삼성동토성의 위치는 삼성동 74번지(봉은사로 531)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2000년 전 백제인이 건설한 성이 남아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의심하고 자신 없어 하는 것은 당연할는지 모른다. 그 주소가 다른 곳도 아닌 강남구 삼성동의 금싸라기 땅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동에서 쉽게 떠올려지는 이미지는 우선 높은 빌딩 숲으로, 무역센터와 코엑스 빌딩이 그곳에 있다. 앞으로는 대한민국 최고층의 현대자동차 사옥이 서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번이 있는 이상 무언가 있기는 있을 터, 그 성을 찾아 한겨울에 집을 나섰다. 바람이 센 날을 만난 것은 운이 없는 케이스지만 옛 성채의 흔적을 찾자면 나무가 가장 헐벗은 한겨울이 제격이긴 하다. 

     

    생뚱맞게도 탐색의 시작은 봉은사역 1번 출구를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는 도심 속의 고찰 봉은사 일주문 앞이다. 봉은사는 794년(원성왕 10)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의 창건 연기(緣起)가 전해지는 바, 백제 초기 건설됐다 폐기된 삼성동토성과는 연(緣)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그곳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그 절 일주문의 '수도산 봉은사(修道山 奉恩寺)'라는 현판 때문이다. 산이 있는 것은 그 산을 의지해 지은 절이나 성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절은 진작에 존재했으니 이제는 성만 찾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수도산은 또 어디인가? 이 도심에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그런 산이 존재했단 말인가?   

     

     

    되찾은 봉은사의 얼굴 / 2020년 5월 29일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일주문이다. 봉은사 일주문은 1986년 강남 개발 과정에서 해체되어 양평 사나사, 오봉산 석굴암의 문이 되었다가 다행히도 작년에 제자리를 찾았다. 1880년 초창된 이 문은 조선후기 일주문 가운데 현전하는 유일한 문일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기대된다.
    오봉산 석굴암 때의 모습 / 오봉산 석굴암은 서울 우이동과 양주시 장흥면 사이 고개길인 양주 우이령에 위치한다. 지금은 목제된 문이 서 있다.
    1950년대의 봉은사 일주문 / 안개에 싸인 고즈넉한 풍경이 일품이나 안개로 인해 기대했던 수도산은 보이지 않는다.
    봉은사 판전 / 판전은 불교경판을 보관한 곳으로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다. 문화재라도 제멋대로 원형을 바꿀 수 있는지 사진에서 보이는 예전의 소박한 계단이 사라지고 지금은 궁궐에서나 봄직한 잔뜩 멋을 부린 돌계단이 들어섰다.(사진은 7년 전 서울시가 홍보용으로 찍은 것이다) 올 때마다 하나씩 변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짙은 화장으로써 예뻐 보일까 고민하는 여인 같다.

     

    판전 앞 새로 만들어진 계단
    판전 현판 / 서울 강남에서 만날 수 있는 추사의 글씨이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이유를 현판 왼쪽에 써 있는 '(유배에서 돌아온) 71살 과천 늙은이가 병중에 쓴 작품'이란 첨구로 알 수 있다.(그 이상의 의미 부여는 over하는 것이다) 추사는 이 현판을 쓴 3일 후 세상을 떠났다.

     

    판전과 영상전을 지나쳐 영각(影閣) 뒤로 난 길을 오른다. 높은 지대라곤 이것 뿐이니 아마도 이 언덕이 수도산일거라 짐작되나 그래도 산이라고 부르기는 민망하다. 하지만 숲길에서 만난 어르신 중 한 분의 이야기는 다르다. 예전에는 산다웠던 곳이나 6.25전쟁 중 꼭대기가 밀려져 미군의 헬기장이 되었고, 70년대 강남 개발의 일환으로 강북의 명문고들이 강제 이전돼 올 때, 같이 옮겨온 경기고등학교가 학교 부지를 닦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밀려 산세(山勢)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봉은사 영산전 / 석가모니 부처님과 16나한을 모신 곳이다. 언뜻 추사향이 느껴지는 현판 글씨는 구한말 학자 지운영의 작품이다.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의 형으로 추사의 제자인 강위에게 사사했다.
    영각(影閣) 뒤 삼성리토성으로 오르는 길 / 영각은 봉은사와 인연 있던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그 뒤쪽이 수도산으로 왼쪽에 수도산 꼭대기를 깎아 지었다는 경기고등학교 교사(校舍)가 살짝 보인다.
    수도 산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수도 산 동쪽 능선부 성벽 잔존 구간
    수도 산 서쪽 능선부 성벽 잔존 구간

     

    이렇듯 해박하신 서울 토박이의 그 분도 이 산의 이름 수도산이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그렇지만 삼성리토성을 아느냐는 물음에는 뜻밖에도 반색한다. 바로 뒤 경기고등학교와 절의 경계가 실은 토성이고, 저 앞쪽으로 보이는 청담배수지, 봉은초등학교와 봉은중학교, 그 앞의 올림픽대로까지 모두 토성 자리인데, 1980년 초까지도 성의 흔적이 오롯했다는 것이다.

     

    '1980년이라면 불과 40년 전이 아니가? 그때까지 성이 남아 있었다고?' 이런 의문 속에 조금 더 올라가니 정말로 토성의 경사면 흔적이 보였다. (바로 위의 사진) 하지만 펜스로 막혀져 더 이상의 진입은 불가능했다. 이에 절을 나와 한참을 돌아 경기고등학교 정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간에서 아래와 같은 예상 밖의 득템을 했다.  '삼성리 토성'이라는 표석과 함께 성벽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숨어 있거나 하지 않았으니 무지무지하게 통행량이 많은 영동대교 경기고등학교 쪽 인도 위에 있었다. 말하자면 경기고등학교 정문 옆의 비탈이 모두 백제토성이었던 것인데, 이것은 일제시대 발간한 경성부지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삼성리토성 푯돌 / 이곳이 삼성동토성임을 확실히 알려주는 표지석으로, 앞에 보이는 길은 영동대로이고 표지석 맞은편이 삼성동토성이다. (표지석 표면에 맞은편 토성 위의 나무들이 비친다)
    표지석 있는 길에 남아 있는 토성 벽 / 아래 경성부지도 속의 성벽이다.
    일제시대 경성부지도 속의 삼성동 토성 / 왼쪽 아래 봉은사 옆으로 온전한 성벽 표시가 보인다.

     

    *** 초기 백제를 찾아서 3 - 깜놀! 그간 몰랐던 한성백제 유적' 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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