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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지어준 국호 이스라엘성서와 UFO 2017. 12. 1. 22:22
1896년 겨울,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략이 극에 달한 시기에 이집트의 고도(古都) 테베에서 오래된 석비 하나가 발견되었다. 영국 정부(당시 이집트를 점령하고 있던)가 파견한 고고학자 플랜더스 페트리(W. F. Petrie)에 의해 발굴된 높이 3.2m, 너비 1.6m의 검은 화강암 비석으로, 고대 이집트 19왕조의 왕인 메르넵타(Merenptah)의 공적비였다. 이 석비는 '왕가(王家)의 계곡' 근방의 제사장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완전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발견 당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당대는 영국 정부의 식민지 정책과 더불어 무분별한 대규모 발굴 또한 극에 이른 시기였다. 따라서 고대의 이집트 유적과 유물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듯 발굴되고 발견되던 시절이었던 바, 투탕카맨 왕릉 쯤이 아니고는 세간의 곁눈질도 기대하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파라오의 업적을 새긴 비석은 자주 출토되는 물건이어서 애초부터 큰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이 석비가 그나마 눈길을 끈 것은 그 주인공인 메르넵타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저 유명한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아들인 덕이었다.
브리시티 박물관에 있는 람세스 2세의 대형 흉상과 영화 '십계'에서 람세스로 분장한 배우 율 브리너
기원전 1234년 쯤에 죽은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의 유명한 정복군주로서, 우리에게는 영화 '십계'에서 악역을 담당한 파라오로 잘 알려져 있다.(영화에서는 배우 율 부린너가 그 역할을 했는데, 실제로 출애급의 여부와 당시의 왕이 람세스 2세였다는 것은 고증된 바가 없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의 장수왕으로, 90년을 살며 67년 가량이나 재위에 있었다. 그러면서 힛타이트와의 전쟁, 에디오피아 정벌 같은 굵직한 사건들의 기록을 남겼던 바, 지금 미국 UN 건물 로비의 기념물인 평화협정서는 람세스 2세와 당대의 힛타이트 왕 무와탈리 2세 간의 휴전 및 사후조치를 기록한 것이다.(협정서에 사인을 한 사람은 카데시 전투의 지휘관이었던 무와탈리 2세의 동생 하투실리 3세임)
UN 건물의 평화협정서 기념물. 이집트의 북진정책과 힛타이트의 남진정책이 충돌한 시리아 남부 카데시 전투에의 휴전 협정문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가간 평화협정기록물이다. 전쟁의 중단과 상호 불가침, 상호 원조, 상호 약탈 금지, 포로의 교환과 처우에 관한 조항 등, 현대의 협정문과 유사한 내용들이 기록돼 있다.
터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 중인 평화협정서. 원본은 은판으로 기록되었다 하나 전해지지 않고, 복사본인 점토판이 이스탄불 박물관에 1개, 베를린 박물관에 2개가 보관돼 있다.
메르넵타는 그 람세스 2세의 13번째 아들로서, 아버지가 장수를 한 덕분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다.(위의 형들이 먼저 죽었으므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복군주를 자처하였던 바, 서쪽의 리비아, 남쪽의 누비아를 정벌하고 북쪽으로는 팔레스타인을 정복하였다. 위의 공적비에는 그와 같은 내용들이 기록돼 있는데, 이 석비가 훗날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은 여기 기록된 다음과 같은 문장 때문이었다.
"이제 아홉 오랑캐 중 고개를 드는 자는 아무도 없다. 리비아는 폐허가 되었고 힛타이트는 평정되었으며 가나안은 약탈당했다. 아쉬켈론은 정복되었고 게제르는 사로잡혔으며 야노암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 후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읺는다. 후루(팔레스타인) 여인은 이집트로 인해 모두 과부가 되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관심을 끈 단어는 단연 '이스라엘'이었다. 석비에는 이스라엘이라는 국호가 무려 3천년 전으로 거슬러올라 언급돼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이집트의 기록에서 이스라엘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 테베의 아몬 신전에서는 메르넵타가 이스라엘 민족 등과 싸우는 부조 등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부조의 내용은 다만 추정일 뿐 명문(銘文)으로 발견된 것은 메르넵타의 석비가 최초였다.
메르넵타 석비와 이스라엘 표기
메르넵타 왕의 석관과 미라
그런데 이 단어는 왜 세상의 관심을 끌게 되었을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세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와 관련돼 주목해야 될 사건은 당시 떠돌이 유대인들(로마제국에 의해 축출당한 후 2천년 간을 나라 없이 떠돌던)의 건국 운동, 즉 시오니즘의 발흥이다. 석비가 발견된 이듬해인 1897년 8월 유대인들은 스위스 바젤에 모여 제 1차 시오니스트 회의를 가졌고, 이때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건국 운동이 향후 50년간 이어진 끝에 1948년 드디어 옛 가나안 땅에 자신들의 나라 이스라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말하자면 석비의 발견은 전세계 유대인들의 새로운 자각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나는 유대인의 건국에의 기초가 바로 이 메르넵타 석비이며 그 기둥은 벨푸어 선언(1917년,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민족의 국가가 건설되는 것을 지지한 영국 외상 제임스 벨푸어의 선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튼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수립되면서부터 중동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그 땅에 살았던 블레셋인, 즉 팔레스타인인은 졸지에 그 터전을 잃게 되고 만 것이었다. 그 팔레스타인인들은 2013년, 우여곡절 끝에 요르단 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를 인도 받아 팔레스타인국을 세웠으나 그 지역 안에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묘(막벨라 굴)가 있는 헤브론이 포함돼 있었던 바, '아브라함이 만난 UFO와 가나안 이주의 진실 (III)'의 말미에 길게 게재한 헤브론 전쟁은 팔레스타인 사태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및 헤브론의 위치
(오른쪽 지도 빨간 밑줄 친 도시가 헤브론으로, 엄연한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지구, 즉 웨스트 뱅크 내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이 석비의 발견에 왜 그리 광분하였으며, 결국은 나라의 건국까지 이끌어내게 되었을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성서 창세기의 내용을 끄집어 내야 되는데, 앞선 챕터인 '성서 속의 UFO/야곱이 목격한 거대한 비행선'을 참고하면 우선 도움이 될 듯하다.
거기서 설명한대로,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제 형 에서(에사오)의 분노를 피해 동방 땅인 밧단아람으로 이주하게 되고 그 도중 벧엘이라는 곳에서 한밤중에 자신의 앞에 착륙한 거대한 외계 비행선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비행선에서 내려진 트랩(이른바 '야곱의 사다리')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사들과 거대 비행선의 동체 문 앞에선 여호와 하나님, 즉 외계인을 만나게 되며 또 음성을 듣게 되는데, 성서의 그 광경을 다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것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게로 삼고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게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창세기 28:10-19)
앞서의 설명대로 이때 야곱이 본 여호와와 천사, 그리고 그들이 서 있거나 오르락내리락하던 사다리는 그가 꿈속에서 본 것이 결코 아니었다. 재차 강조하거니와 야곱이 목격한, 땅에 세워진 사다리는 비행선의 긴 트랩이요, 그 트랩이 내려진 곳은 평평한 비행선의 하부 출입구였는데, 그것이 꿈이라는 생각과 사다리가 하늘에 닿았다는 생각은 모두 그가 비몽사몽간에, 그리고 밤에 보았음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즉 야곱은 돌을 베고 누운 채로 비행선의 하부 출입구에서 새어나온 빛에 의거, 모든 사물과 사람을 본 것이었으므로 비행선으로부터 내려진 트랩이 하늘에 닿은 사다리로, 비행선의 하부가 하늘로 보였던 것뿐이었다. 그 후 야곱은 다시 잠이 들었으나 아침에 일어난 그는 지난밤에 보았던 놀랍고도 두려운 광경, 즉 그곳에 머물렀던 하늘의 궁전 같던 비행체와 그 비행체의 동체로부터 열려진 문을 상기해내고 그곳에서 나름대로의 의식(儀式)을 가졌던 것이었다.
야곱이 올려다 본 하늘 광경
(위 사진은 2016년 말레지아에서 촬영된 UFO로서 야곱도 필시 밤하늘에서 이와 같은 거대 비행선의 바닥을 보았을 것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의식은 곧 그가 겪은 것이 꿈이 아니라는 확실한 방증이기도 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야곱이 같은 비행체를 밤에 보았다는 것이니, 단언하거니와 만약에 그가 낮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다면 아마도 에스겔의 그것과도 같은 보다 상세한 비행선에의 기록이 남았을 것이다.(* '성서 속의 UFO/선지자 에스겔이 만난 외계인' 참조)
그리고 말한 바와 같이 순혈의 후손을 바라는 마음은 여호와 역시 동일하였던 바, 야곱에게 더 할 나위 없는 축복을 내리며 후손들의 영토를 약속한다. 과연 그 장담이 이루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그때 야곱이 누웠던 땅에는 그의 자손들이 살고 있고, 아울러 그 자손들은 세계의 만방에 먼지처럼 퍼져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른바 유대인이라는 불리는 민족이다.
야곱은 이후 ‘동방사람의 땅’으로 가서 사악한 외삼촌 라반의 밑에서 온갖 고생을 한 뒤 그의 딸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삼아 그때 얻은 부(富)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 무려 20년만의 귀향이었다. 그런데 그 돌아오는 길에 야곱은 뜻밖에도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게 된다. 아마도 형 에서와의 충돌을 염려해 내려온 무리인 듯한데, 실제로 야곱은 사자들의 도움을 얻는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의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창세기 32:1-2)
이후 야곱은 홀로 얍복 강 너머에 남게 되었고, 이때 여호와도 무리를 떠나 홀로 강에 이르니, 아마도 야곱을 따로 만나볼 요량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가지로 신경이 곤두서있는 마당에 불연듯 출현한 낯선 상대는 야곱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예전 비행선 앞에서 만나본 면식 있는 사이이기는 했으나 워낙에 오래된 일이었고, 공교롭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밤이었다. 이에 야곱은 다짜고짜 상대에게 덤벼들었고, 여호와는 그 바람에 야곱과 밤새도록 격투를 벌이게 된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더라.(창세기 32:24-30)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유한성을 인식하게 되며, 더불어 외계인과 우리 인간과의 동류성(同流性) 또한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이라 불리는 외계인이었지만 육체적인 힘은 인간은 그것과 별반 다름없더라는 얘기다. 아니 오히려 힘이 부침을 인지한 여호와는 상대의 허벅지 관절을 꺾는 필살기를 가하는데, 이에 야곱은 고관절을 상하게 된다.
그러함에도 야곱은 상대를 날이 샐 때까지 놓아주려 하지 않았고 여호와는 결국 날이 밝아 옴을 구실삼아 싸움 그치기를 청한다. 그러나 야곱은 상대에게 실질적인 항복의 의사를 표할 것을 요구하며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보내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한마디로, 한번 싸우면 끝장을 보는 성격의 소유자였던 듯싶다. 이에 상대는 뒤늦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밝히고 야곱의 승리를 인정하는데, 이 승리의 보답으로 얻은 것이 곧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었다.
야곱은 처음에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으나 종국에는 상대가 하나님임을 알게 되었고 그와 싸웠음에도 다행히도 생명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하지만 정황을 살펴보면 정말로 끝장을 볼 때까지 싸웠다면 정작 생명을 보존할 수 없었던 쪽은 상대방이 아니었나 싶다. 그가 야곱의 관절을 꺾는 필살기를 보인 것이나 이제 날이 새려하니 그만 자신을 보내달라고 사정하는 장면을 보면 말이다.
얼마 후 여호와는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 재차 약속을 하는 바,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이후 하늘로 올라간 여호와는(당연히 위와 같은 비행선에 탑승하여) 더 이상 나타나지 않다가 기원전 13세기 말에 이르러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따져 보자면 이후 700년만의 일이었다. 그때 여호와가 모습을 나타낸 이유는 단 하나, 이집트 땅에서 핍박받던 자신의 후손들을 해방시켜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이끌기 위함이었다. 그 대임을 맡을 자로 선택된 사람은 다름 아닌 모세로, 그가 여호와의 첫 대면에서 겪었던 트릭은 이미 설명하였던 바, 여기서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호렙 산의 UFO/모세를 속인 여호와의 절묘한 트릭' 참조)
그리고 이에 힘입은 모세는 강한 자신감과 여호와의 강력한 지원 하에 히브리인을 이끌어 출애급에 성공하고, 그 후손들은 기원전 11세기 말에 이르러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하는 바, 이 또한 야곱에게 했던 여호와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아직까지 학계와 교계는 기원전 1010년 경 사울 왕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했다는 것을 정설로 여긴다. 따라서 본인도 어쩔 수 없이 정설을 따르긴 했으되 이제는 그 또한 바뀌어야 되지 않는가 생각한다. 위 메르넵타 석비는 분명 그보다도 천 년 앞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존재했었음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성서 '사무엘기' 등의 내용의 오류를 인정해야 되는 바, 이를 이끌어내기 위한 싸움은 이스라엘 핀켈스타인 교수가 주장하는 '다윗 왕국의 비 실존설(다윗 왕은 물론 다윗의 왕국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는 학설)'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도 훨씬 더 어렵고 긴 싸움이 될 것이기에.....
아무튼 기존의 학설을 존중하자면, 이스라엘 왕국은 사울과 다윗을 거치며 나라가 완성되나, 3대 솔로몬 왕의 사후,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로 쪼개진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예로보암부터 호세아까지 19 명의 왕을 배출하였으나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되고, 남유다는 레호보암부터 제데키아까지 20 명의 왕을 배출하였으나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마찬가지로 멸망되고 만다. 물론 이때에도, 그리고 차후로도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간섭과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그들의 멸망을 막지 못한 것을 보면 급변하는 지구 정세에 대한 대응이 역부족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이후 그 유민들은 줄곧 유대인이라 불렸다. 이는 남유다가 북이스라엘보다 백여 년을 더 존속한 때문이었겠는데, 그들 유대인의 끈질긴 생명력은 다시 제 땅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로마제국과의 독립전쟁에서 패하였고, 이로 인해 제 땅에서 축출당한 그들은 그 뒤로 무려 2천 년이라는 세월을 정처 없이 떠돌게 되었다. 그 유랑이 얼마나 길고 험난했는지는 역사가 증언해주고 있는 바, 그중에서 20세기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의 참극은 역사 이래의 최대 비극으로서 아로새겨져 있다. 아울러 그 유랑에의 형태와 장소가 얼마나 각양(各樣)이었는지는 그들의 동질감 없는 얼굴과 피부색이 증언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같은 유대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더불어 선민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으로서 살아왔다.
그렇게 2천 년이 흐른 어느 날, 유대인들은 놀랍게도 그들의 나라가 있던 가나안 땅에 또다시 나라를 세웠다. 앞서 설명한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 공화국이 바로 그 나라이니, 어쩌면 여호와가 야곱에게 했던 약속의 진정한 실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역시 앞서 설명한대로 그로 인해 오랫동안 그 땅에서 살아 온 팔레스타인인은 갈 곳이 없게 되었던 바, 이제껏 성서에서 보여 준 신의 이기심과 한계를 새삼 보여 준 사례라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이스라엘 공화국의 건국에 신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는 바, 본인은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고, 아울러 건국에 있어서 배경의 힘으로서 작용하였을 예수라는 이름의 유대인 청년이 이룬 종교적 업적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으나, 그 건국에는 유대인의 피 속에 남아 흐르는 조상 때의 우수한 유전자가 큰 힘으로써 작용하였으리라는 것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힘이라는 것이 최근 유대인에 관한 어떤 책의 광고에 등장하였던 바, 실질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본 블로그의 내용과 판이하겠으되 그 광고의 문구만큼은 출판사의 허락 하에 옮겨 적는다. 유대인에 대한 모든 것을 함축함에 이보다 더 적합한 내용이 없을 듯했기 때문이다.
홍익희 저/행성 비 출판사
이 책이 알려주는 유대인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
1. 전 세계 인구 0.3%에 불과한 민족이 어떻게 노벨상 수상자의 32%를 차지하는가?
2. 자본주의 정점에 있는 나라가 어떻게 최상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3.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왜 이스라엘은 승승장구하고 있는가?
4. 어떤 교육을 받기에 미 대학교수의 30%, 미국 부자의 23%를 차지하는가?
5. 그들이 계약과 배움과 동족과 돈지갑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6. 중세에서 현대까지 왜 그들이 머무는 나라는 흥하고 그들이 떠나면 쇠락하는가?
7. 그들은 어떻게 주식회사와 증권회사, 금융산업을 발명했는가?
8. 2천년 동안 흩어져 살던 민족이 어떻게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9. 그들이 국제정치, 금융, 언론, IT기업을 장악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10. 세계 경제사와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 같은 유대인의 조상이 누구인지는 재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나, 만일 부가설명이 필요하신 분이시라면 '창조주 여호와를 거역하는 뱀 족속-그 거대한 반란의 서막'이나 '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V)' 등을 참고해 주시길.
얍복 강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싸우는 야곱
야곱의 이 싸움에서 이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엘(El), 곧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는 뜻이었다.
얍복 강(Jabbok R.)의 위치와 전경'이스라엘은 황폐화되었으며 후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르넵타 석비 27행의 문장
-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 국내도서
- 저자 : 김기백
-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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