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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공망 여상이 이르기를.....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1. 8. 28. 20:03
태공망(太公望) 여상이란 인물이 귀에 설을지는 모르나 강태공은 누구나 알고 있다. 태공망 여상이 곧 강태공이다. 강은 성이요 태공은 별명으로 보아도 무방한데, 그가 젊은 시절, 낚시를 하며 때를 기다렸다는 고사에서 낚시꾼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된 것이다. 여상의 사상이나 낚시 등에 얽힌 일화에 대해서는 앞서 아래의 글들에서 익히 설명한 바 있다.
'위키백과'에서 태공망 여상을 검색하면 바로 강상이란 인물이 나오는데, 이 역시 같은 사람이다. 옛 중국의 이름 체계는 현대와는 상이해 성씨(姓氏)에 있어서 성(姓)과 씨(氏)를 달리했다. 말하자면 여상은 이름이 아니라 여(呂)라고 하는 씨족 부락에 사는 상(尙)이라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그는 본래 강(姜)족 부락 출신의 상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이후 여씨 부족으로 옮겨 오며 여 자(字)가 덧붙여졌다. 하지만 그 후손들은 강족 부락 출신이었으므로 훗날에는 강이 그의 성이 된 것이다.
태공망이란 명칭도 앞서 설명한 바 있으니, 문왕이 서백(西伯, 서쪽 지방의 우두머리)이던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낚시질을 하고 있던 여상을 만나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태공(太公, 문왕의 아버지)이 대망(待望, 기다리고 바람)하던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하였던 바, 이후로도 그렇게 칭함으로써 얻어진 이름이다.*
* 은나라 말기의 귀족 태공과 그의 아들 서백 창(昌, 문왕)은 주왕(紂王)과 같은 왕들의 실정을 겪으며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은나라를 전복시킬 생각으로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줄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유비가 제갈량과 같은 인재를 찾았듯) 서백이 우연히 낚시질하던 강호의 인물 여상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이에 여상은 서백과 함께 돌아온 후 그의 군사(軍師)가 되어 은나라를 멸망시킬 준비를 하게 되는데, 도중에 문왕이 병으로 죽는다. 이에 그의 유업을 아들 희발(무왕)이 대신 잇게 되었다. 말하자면 희발은 아버지 희창의 죽음으로 엉겁결에 반란군의 영수가 된 셈인 바, 여러모로 걱정도 많고 한편으로는 의욕도 넘치는 마당이었다. 그래서 태공망 여상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며 이것저것을 묻는데, 특히 병법에 관해 묻고 대답한 내용을 책으로 꾸민 것이 저 유명한 병법서 '육도삼략(六韜三略)'이다.
여기서 <육도삼략(六韜三略)>에 나오는 '승리하는 장수가 되는 길'의 한토막을 재론해보고자 한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를 반대로 하면 '패배하는 장수가 되는 길'이다. 희발의 그 물음에 관한 여상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희발 : "나는 병사들을 이끌고 공격할 때 그들이 앞다투어 성벽을 오르고, 들판에서 싸울 때 앞다투어 달려가고, 물러나라는 징소리를 들으면 화를 내고, 나아가라는 북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상 : "장수는 추운 겨울철에도 따뜻한 털가죽 옷을 입지 않아야 되고, 무더운 여름철에도 부채를 잡으면 안 되며, 비가 내려도 혼자만 우산을 써서는 아니 됩니다. 이러한 장수를 예의 있는 장수라고 합니다. 장수가 예를 갖추지 않으면 부하들이 따르지 않으며, 또한 병사들이 얼마나 춥고 더운지를 알 수 없습니다.....
장수가 병사들과 함께 추위와 더위, 수고로움과 괴로움, 굶주림과 배부름을 함께 한다면 병사들은 진격의 북소리에 기뻐 날뛰고, 후퇴하라는 소리를 들으면 벌컥 화를 냅니다. 이리 하면 높은 성벽과 깊은 해자로 둘러싸인 험준한 성을 공격할 때 적들의 화살과 돌멩이가 빗발쳐도 병사들은 성벽을 오르는데 서로 먼저 오르겠다 다투게 되며, 들판에서 적과 마주쳐 수많은 칼날이 교차하더라도 병사들은 주저함이 없이 뛰어들어 적에게 달려들게 됩니다.
병사들이 이렇듯 전투에 몸을 기꺼이 바치는 이유는 그들이 죽기를 좋아하고 다치기를 원해서가 아닙니다. 이는 오직 장수가 자신들의 허기와 배고픔, 추위와 무더위, 괴로움과 수고로움을 모두 알아주며 차근차근 모든 것을 살펴주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반군 탈레반의 수도 카불 점령 소식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정부군이 왜 그렇듯 쉽게 무너졌는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으되, 다만 그 와중에 우리 군이 '미라클 작전'(현지에서 한국에 협조한 아프간인 구조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적인 성공 사례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바, 두 번 세 번 칭송할 만했다.
문제는 구조된 아프간 사람들이 한국에 도착한 후 생겨났다. 그들은 27일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숙소가 마련되었고, 이에 법무부 강성국 차관이 그곳에서 입국한 아프간인 조력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지원 방안 등을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법무부 직원이 빗물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이 전파를 탄 것이었다.
평등사회에서의 인간 상·하를 보여준 이 충격적 사진에 비난이 쏟아진 건 당연지사였다. 게다가 다른 부처도 아닌 사회정의를 대표하는 법무부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개탄스럽다는 반응이었는데, 나는 그보다도 이에 관련돼 올라온 아래의 사진이 더 충격적이고 무서웠다. 인간말종이라는 그 독재자도 우산만큼은 본인이 직접 들 줄 알았다.(다만 다행스럽게도 혼자 우산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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