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불로장생의 비결(I)ㅡ영조가 장수한 진짜 이유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2. 8. 3. 08:53

     

    *  블로그 1000개 포스팅 기념 특집  '불로장생의 비결'  4회 연재 예정 *^^*  

     

    영조 임금이 오랜 산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46.1세인데 반해 영조는 83살까지 살았으니 거의 두 배를 산 셈이다. 왕들의 평균 수명이 46세라니 너무 짧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평민의 평균수명은 24세에 불과하니 왕들 또한 배에 가까운 수명을 향유했다. 하지만 왕과 평민의 차이가 나는 것은 특별한 것은 없고 영·유아 사망률이 가른 듯하다.

     

    당시의 ·유아 사망률은 50~70%로 매우 높아서, 우선 인큐베이터 시설 같은 것이 없었으니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는 거의가 사망했고 기타 홍역 등의 유행병을 극복 못하면 떼로 죽었다. 사망 원인 중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식량이니, 보릿고개와 면역력 결핍이 겹쳐 죽는 아이가 태반이었을 듯하다. 하지만 궁중에서는 적어도 기아(飢餓)는 없었던 것이다.

     

    어찌 됐든 영조의 수명은 독보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했는데, 거의가 비슷한 결과를 도출했다. 그중에서도 공통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 소식(少食)이다. 적게 먹으면 좋은 이유 중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이 활성산소이다. 적게 먹으면 소화에 소비되는 활성산소가 적게 나와 유리하다는 것으로, 이 활성산소 이론은 노화의 원인 중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기도 하다.

     

     

    영조 임금의 어진
    연잉군 시절

     

    영조의 어진을 보면 여하튼 날씬해서 세자 시절인 연잉군 때와 비교해도 거의 변함이 없다. 노화 연구 학자들이 같은 체중을 평생 유지하는 것을 장수의 으뜸 조건으로 치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는 이래저래 조건을 갖춘 셈인데, 그 바탕은 모두 소식에 기인한다.  최근에는 소식을 하면 베타-하이드록시뷰티레이트(β-Hydroxybutyrate)라는 물질이 분비돼 혈관을 젊게 유지시키고 노화를 늦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근자에 읽은 구한말의 외교관 W. F. 샌즈가 지은 <조선 비망록>이란 책의 내용을 빌어 여담을 하나 하자면, 그는 조선은 건강에 좋은 기후를 지닌 나라임에도 조선인은 왜 질병이 많은가,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초기 선교사들이 심어 놓은 서양인에 대한 인식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음도 토로한다. 선교사들은 대부분 의사였으므로 그 역시 의사라고 착각한 조선인들이 '외국인을 부끄러워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다가와 자신의 질병과 고통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답을 찾지 못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조선을 거쳐간 많은 서양인들이 그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이를 테면,

     

    "조선인들은 밥도 무섭도록 많이 먹지만, 뭐든 있으면 닥치는 대로 먹는다. 서너 명이 앉아 복숭아 참외 20~25개쯤 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사벨 비숍)

     

    "조선인의 밥그릇을 보면 우선 질린다. 그들의 식사량은 일본인의  2배가 넘는다." (존 그리피스)

     

    "중국인과 일본인은 식사할 때만 먹지만 조선인은 아무 때고 많이 먹는다. 아무튼 대식가라는 점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조선인과 비교할 대상이 없다." (헤세 바르텍)

     

    그중 프랑스 신부 마리 다블뤼의 말은 압권이다. 

     

    "65세가 된 어떤 노인은 식욕이 없다면서도 밥 5사발을 비웠다. 또  어떤 사람은 내기에서 7인분까지 먹어치웠는데, 단 여기서 그가 마신 막걸리 잔 수는 계산되지 않았다." 

     

     

    당시의 조선인 밥상 / 엄청난 사이즈의 밥그릇과 국그릇이다. 서양인들이 놀랄만하지만 이 왜소한 체격의 선비는 뭐가 이상한가? 묻는 얼굴이다.
    이 신부님은 아예 난감한 표정이다.
    문제는 대식이 아니라 폭식일 것이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굶어야 하므로 있을 때 많이 먹어두자는 생각에....

     

    영조가 소식을 한 이유에 대해서 가끔 애민 정신을 드는 사람이 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수라상이지만 배고픈 백성들을 생각해 절식(絶食)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백성들이 현미, 잡곡 등의 거친 음식을 먹는 까닭에 수라상에도 백성들이 먹는 것처럼 현미나 잡곡 섞은 밥을 올리게 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이라 해도 믿기가 좀 어렵다. 눈앞의 흰쌀밥과 산해진미 앞에서 과연 이것이 가능했겠나 하는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하지만 애민정신까지는 몰라도 절식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는 시금치와 김치 위주의 서너 가지 반찬으로 정시(定時) 세 끼의 식사를 마쳤다 하며, 현미에 채소가 오르는 수라상을 선호했다고 하는데, 재위 26년째가 되는 57세에 스스로의 건강 비결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이후로도 26년을 더 재위하다 83살에 붕어했다) 

     

    "내가 일생토록 얇은 옷과 거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자전께서는 늘 염려를 하셨고, 영빈(寧嬪, 숙종의 후궁인 영빈 김씨)도 매양 경계하기를, ‘자봉(自奉, 자신을 받드는 일)이 너무 박하니 늙으면 반드시 병이 생길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지금 병이 없으니 옷과 먹는 것이 후하지 않았던 보람이다. 모든 사람의 근력은 순전히 잘 입고 잘 먹는 데서 소모되는 것이다. 듣자니, 사대부 집에서는 초피(貂皮)의 이불과 이름도 모를 반찬이 많다고 한다. 사치가 어찌 이토록 심하게 되었는가?" (<영조실록 71권>, 영조 26년 2월 10일)

     

    그 밖의 그의 건강 비결도 모두 놀라운데, 대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ㅡ 많이 걷기 

    영조는 백성들의 삶을 직접 살피러 자주 궁을 나와 암행했는데 그것이 500회가 넘었다. 요즘 의사들이 강조하는 걷기 운동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실천했던 셈이다.

     

    ㅡ 꾸준한 성생활
    영조는 본처인 정성왕후 서씨와는 사이가 안 좋았다. (그 이유는 이 글의 말미에 소개하겠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서는 후사가 없었고 대신 후궁 정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효장세자를 비롯한 1남 1녀를, 영빈 이씨 사이에서 사도세자를 비롯한 1남 3녀를 얻는다. 이후 영조는  64세 때 정비인 정성왕후가 죽고 3년상을 마치자 14세 소녀를 왕비로 맞는데, 이 여인이 훗날 정조와 끊임없이 대립한 정순왕후 김씨다. 영조가 성에 탐닉한 기록은 없지만 늙어서까지 성생활은 꾸준히 한 듯하다. 

     

     

    드라마 '이산' 속의 정순왕후와 영조

     

     인삼 복용 
    영조가 59세부터 73세까지 먹은 인삼의 양이 100근을 넘었다고 한다. 100근이면 60kg이니 사실 그리 많이 먹은 편은 아니다. 다만 체질에 맞는 영약을 꾸준히 복용한 것이 주효한 듯하다. 영조는 정말이지 좋은 것은 다했다.

     

     ㅡ 절주
    영조는 의도적으로 술을 자제한 강한 의지의 군주이다. 술을 마시게 되는 제삿날에는 종묘에 올릴 술을 감주로 대신했을 정도인데, 평소에도 술 대신 생강차를 마셨다 하니 그 의지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ㅡ 정기적인 건강검진

    조선의 왕들은 모두 어의(御醫)로부터 정기적으로 진찰을 받았지만 귀찮아 게을리하는 왕들도 많았다. 정기 진찰이 한 달에 6회나 됐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런데 영조는 그 두 배에 이르는 월평균 11.7회의 진찰을 받았다. 오히려 어의들이 귀찮았을 법하다.

     

    이상 나열한 정조의 건강비결은 현대인에게도 정확히 통용되는 것으로, 특히 의사들은 정기적 건강검진을 강조한다. 병을 사전에 발견하여 조기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지만, 나의 경우는 평생 국가건강검진도 안 받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한 번 받았다. (건강을 자신해서가 아니라 병치레로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는 통에.... 한때는 조선시대의 왕의  검진 횟수만큼 검사를 받았고 C·T를 한 달에 한 번씩 찍기도 했다. 방사능의 단위는 s/v로, 최소 치사량을 6~7ms/v로 잡는다. 그런데 C·T 1회 촬영 시 방사능 피폭량이 25ms/v라 하니 병보다도 방사능 오염으로 먼저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흥미로운 것은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분석한  영조의 건강 비결로, 거기에는 영조의 또 다른 장수 비결로서 '편안한 거처'가 등장한다. <어제집경당편집>이란 책을 보면 영조가 노년에 머물던 전각인 경복궁 집경당(絹敬堂)에 관한 자작시가 나오는데, 이것으로 영조가 자신의 거청(居廳)인 그곳을 매우 편안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집에서 내가 얻은 것은

    낮에 이미 편하고 밤에 또한 편안하다는 것이다.

     

    此堂今此堂  於矛得於矛得 

    已便晝已便  夜亦安夜亦安

    (편안할 '편'자와 편안할 '안'자가 두 번씩이나 쓰였다)  

     

    즉 영조는 그 집경당을 공적 업무와 사적 공간을 모두 통합한 곳으로 만들어 사용했으므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정말로 스트레스 적은 편안한 거처와 편안한 잠자리는 인간의 건강과 장수에 있어 더없이 중요한 조건으로서, 정말로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한 문장에 '정말로'가 두 번씩이나?)   

     
    경복궁 집경당과 함안당 / 영조는 죽음도 이곳에서 맞았다.

     

    이제 끝으로 내 생각을 숟가락 얹기 하자면, 물론 이상의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건강이다. 잘 알려진대로 영조는 정비나 후궁의 소생이 아니라 숙종과 무수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무수리는 궁에서 가장 천한 계급으로 나인들의 허드렛일을 도맡던 궁비(宮婢)와 같은 존재이니 그 현격한 신분차이로서 왕과는 엮일 일이 없었다. 노비와 왕과의 동침이라니 있을 수 없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무수리 최씨는 승은을 입었다. 

     

    그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야사에 따르면, 숙종은 어느 야심한 밤, 궁중을 거닐다 불이 켜져 있는 곳을 발견하고 궁금증에 가본다. 낮은 궁인(宮人)들이 사는 처소였는데, 그곳에서 한 무수리가 촛불을 켜놓고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왕이 연유를 물으니 사색이 되어 하는 말이 자신은 숙종의 정비인 인현왕후를 모시던 몸종이었는데, 오늘이 마침 그 분의 생신이라 만수무강을 비는 치성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숙종은 이에 감동했다. 자신도 잊고 있던 인현왕후의 생일을 한낱 무수리가 챙겨준 것인데, 게다가 왕은 이제는 희빈 장씨(장희빈)가 지겨워지고 희빈 장씨에 의해 쫓겨난 본처 인현왕후를 다시 그리워 하던 참이었다. 그러니 이 무수리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영조는 그렇게 태어났고, 형인 효장세자가 일찍 죽는 통에 운좋게 왕이 되었다. 그는 연잉군 시절인 15살 때 2살 연하의 서씨와 결혼했다. 그 첫날 밤, 연잉군이 색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손이 참 곱구려."

     

    서씨가 수줍어 하며 답했다.

    "고생을 안 해 그렇습니다."

     

    그 말에 영조는 기분이 확 상했다. 서씨가 무수리 출신인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했다고 여긴 것이었다. 서씨가 그럴 리는 전혀 없었겠건만 천한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난 사실이 평생의 콤플렉스였던 영조였기에 그렇게 들릴 법도 했다. 이후 영조는 서씨와는 합방은 물론 상종조차 안 했는데, 이는 야사가 아니라 <승정원일기>가 말해주는 정사 쪽의 이야기다.

     

    아무튼 영조는 평생 고생 안 한 약골의 규수가 아니라 평생 몸을 단련시킨 건강한 모친으로부터 태어난 까닭에 어릴 때도 잔병치레 없이 튼튼하게 자랐고, 늙어서도 육체만큼은 건강했다. 학자들은 의외로 유전인자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대략 유전자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15∼30% 정도로 보고 있다.

     

    반면 부모의 유전자가 건강수명을 지배하는 것은 확실하니, (이른바 '가족력' 등) 영조가 제 어머니 숙빈 최씨의 건강한 육신을 이어받아 장수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위에서 열거한 스스로의 철저한 몸관리도 건강 장수요인으로서 빼놓을 수는 없다.

     

     

    건강미인 한효주 / 숙빈 최씨가 건강은 했을 것이로되 이 정도 미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칠궁 내의 숙빈 최씨 사당 / 효장세자의 어머니 정빈 이씨와 합사돼 있다.
    '칠궁 내 혼유정(魂遊亭)과 냉천 / 냉천 부근에 이곳의 풍경을 읊은 영조의 오언시가 새겨져 전한다.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