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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산지석과 만인혈석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3. 6. 6. 21:08

     

    만인혈석과 타산지석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단어이다. 타산지석은 우리가 잘 아는 말로서, 「남의 산에 있는 돌이라도 나의 옥을 다듬는 데에 소용이 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 또는 허물과 실패까지도 자신을 수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으로 이용된다. 그래서 「이번 실수를, 혹은 아무개의 잘못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용례로 쓰이는데, 정말로 타산지석의 용례가 필요한 듯 보이는 정치권에서는 그저 옳다구나 싶어 비난용으로 활용하기 바쁘다. 늘 똥 묻은 개가 겨 뭍은 개 나무라는 식이다. 

     

    타산지석의 출전은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에 나오는 '학울음'(鶴鳴)이라는 시이다. 지은이는 이 시에서 같은 구절을 두 번이나 반복하며 타산지석을 강조한다.  

     

     

    학이 깊은 연못가에서 우니

    그 소리가 들판에서 들린다. 
    물고기는 연못 깊숙이 숨어 있다

    가끔 물가에 모습을 드러낸다.

    저 동산 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이여,

    때로는 심어놓은 박달나무를 보기도 하고

    그 아래 낙엽을 감상하기도 한다.

    뭇산의 짱똘이라도

    때로는 옥을 갈 수가 있다.

     

    학이 깊은 못가에서 우니

    그 소리가 하늘까지 들린다. 

    물고기는 물가에서 노닐다가 

    가끔 연못 깊숙이 숨는다. 

    저 동산 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이여,

    때로는 심어놓은 박달나무를 보기도 하고

    그 아래 닥나무를 감상하기도 한다.

    뭇산의 짱똘이라도

    가히 옥을 갈 수가 있다.  

      

    鶴嗚於九皐
    聲聞於野
    魚潛在淵
    或在於渚
    樂彼之園
    爰有樹檀
    其下維蘀
    他山之石
    可以爲錯


    鶴嗚於九皐
    聲聞於天
    魚在於渚 

    或潛在淵
    樂彼之園
    爰有樹檀
    其下維穀
    他山之石
    可以攻玉

     

     

    반면 '만인혈석'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생소하다. 한자로는 '萬人血石'이라고 쓰는데, 글자를 들여다봐도 무슨 뜻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간다. 이 말의 출처는 <세종실록>으로 북방 야인들이 바친 귀한 돌로서 출현한다. 만병통치가 가능한 일종의 '마법의 돌'이다. 실록의 내용에 따르면 그 돌의 위력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 혹은  <해리 포터와 마법사 돌(Harry Potter and Philosopher's Stone)> 속에 나오는 '마법의 돌'에 못지않다. 이 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는 아래의 <세종실록>의 내용이 잘 말해주고 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속의 마법의 돌
    영화 해리 포터 속의 마법의 돌

     

     <세종실록 >79권,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에게 '만인혈석'에 대해 조사하게 하다.

     

    (세종께서) 함길도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전일에 장사신(張使臣)의 말을 들으니, "북방 야인 지방에 사람 천만 명을 잡아먹은 뱀이 있는데, 사람의 피가 뱀의 창자 속에서 단단히 엉키어 돌이 됩니다. '관'(鸛)이라고 부르는 큰 새가 있어서, 그 뱀을 잡아먹고 그 돌을 보금자리에다 남겨두는데, 북방 사람들은 '관'의 보금자리를 뒤져서 그 돌을 얻으며, 이것을 갈아서 마시면 온갖 병과 골절상이 치료됩니다. 이것을 혹 조정에 바치는 것도 있어서 천자께서 매우 귀중하게 여깁니다" 하였다. 그 후에 판서 신상(申商)이 중국 북경에서 돌아와 그곳에서 들은 말을 하는데 장사신의 말과 꼭 같았다.

     

    지금 거아첩합(巨兒帖哈)을 그의 처자와 함께 강화에다 안치하였는데, 압송했던 통사(通事)가 서울로 돌아올 때에  거아첩합의 아내가 부탁하기를, "제게 조부 때부터 전해 오는 '만인혈석(萬人血石)'이 있었는데, 전일에 조카 고아도합(古兒都哈)이 병을 얻어 그것을 빌려주기를 청하므로 보내주었으나, 바쁜 일이 있어서 미처 되찾지 못하였습니다. 행여 저를 위해서 고아도합에게 말하여 되돌려주도록 하여 주세요" 하였다. 통사가 와서 이 말을 아뢴 다음에야 비로소 '만인혈석'이라는 것이 전일에 듣던 것과 합치되는 것임을 알았다.

     

    그런 까닭으로 그 돌을 가져다가 보니, 검푸른 빛깔이 자석(磁石)과 같았으며 크기는 큰 밤톨[粟]만하였는데, 물에 섞어서 갈아 보았더니 약간 검붉은 빛깔로 되었다. 내가 널리 더 캐어물어 보자고 하여, 김척(金陟)을 시켜 마파라(馬波羅)에게 몰래 물었더니 마파라는 제법 자세히 말하였다.

     

    그 말은 "북방 달단(韃靼, 타타르) 지방의 수목(樹木)이 없는 곳에 큰 새가 땅을 파서 보금자리를 만들고 항상 알 두 개씩을 낳습니다. 그중에는 성질이 사납고 새끼 치는 데 능한 것은 알을 세 개씩도 낳는데, 이 새는 성질이 거칠고 사나우므로 '만인사'(萬人蛇, 사람 천만 명을 잡아먹은 뱀)도 잡아먹으며, 알을 낳을 때에는 뱀 창자에 들어 있던 돌도 아울러 낳는데, 그 돌은 보금자리 속의 밑으로 두세 자쯤 들어가게 됩니다. 이 방면에 지식이 있는 자는 알 세 개가 있는 보금자리를 찾아서 땅을 파고 찾아냅니다. 이 돌이 지극히 귀해서 쉽게 구하지는 못합니다" 하였다.

     

    김척이 그 돌을 내어 보이니 마파라가 보고 무릎을 치고 깜짝 놀라면서, "이것은 진짜 '만인혈석'입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이것을 얻었습니까. 이 돌은 검푸른 빛깔이 일등이고, 붉은 빛깔이 있으면서도 약간 누른 것이 그다음입니다. 북쪽 사람은 3, 40집에 한 집은 반드시 이 돌을 갈무리하고 있으며, 마자화(馬自和)도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검푸른 빛깔은 매우 드뭅니다" 하고, 곧 갈게 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마시지 않으면 당신이 어찌 나의 말을 곧이듣겠으며, 또 나는 병이 있어서 꼭 마셔야 하겠습니다" 하고, 곧 반 사발을 마셨다고 한다.

     

    김척은 마파라의 말을 나에게 아뢰었다. 나는 또 마변자를 불러서 물었더니, 마변자는 "비록 그 자세한 것은 모르나 일찍이 그 대개는 들었습니다. 이 '만인혈석'을 북쪽 토속 말로는 '모수월하(毛水月下)'라고 하며, 신의 숙부 마자화도 가지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이 와서 청하면 갈아서 마시게 합니다. 우리 집에도 그 돌이 있었는데 본래는 컸으나 항상 갈았으므로 점점 작아졌고 요즈음에 와서는 잃어버렸습니다" 하였다. 이 일이 비록 허황한 듯하나 전후 여러 사람의 말이 서로 합치하니, 혹 그런 이치가 있어서 이야기로 전해 오는 것이리라. 다만 그 자세한 것을 모르니 의심스럽다.

     

    그들의 말에 '북방에 수목이 없는 땅이 있고, 새가 땅을 파고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것이 첫째로 의심스럽고, 그 말에 '큰 새는 곧 황새[鸛鳥]라' 하나 그런가 아닌가를 또한 믿을 수 없다. 또 새매는 한 종류뿐이 아니니, 고니[天鵝]·매·독수리 종류 같은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이것이 둘째로 의심스럽고, 또 본국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물뱀[水蛇]이라 한다. 물뱀이 사람을 잡아먹게 되면 양쪽 눈동자와 창자를 먹는다' 한다. 지금 북쪽 뱀은 물뱀인지 육지 뱀인지 알 수 없으며, 또 사람을 먹는 형상을 알 수도 없으니 셋째로 의심스럽고, 또 돌 하나로 과연 천백 가지 병을 능히 치료한다는 것인가.

     

    어떤 병에 더욱 적당한가. 복용하는 방법은 다만 갈아서 마시는 것뿐인가. 모두가 알 수 없으니 넷째로 의심스럽다. 경은 왕래하는 야인에게 자세하게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또 예전에 ‘용각(龍角)’과 ‘용골(龍骨)’에 대한 일을 듣고 의심하였는데, 이번에 ‘만인혈석’의 일로 인해서 다시 생각이 난다. 예전에 중국 사신이 말하기를, "야인이 용각을 구해서 천자께 바쳤는데 참으로 천하 보물이었습니다" 하였고, 또 내가 일찍이 전해 들은 말에 "본국 사람 임언충(任彦忠)이 일찍이 노아간(奴兒干) 등지에 들어갔다가 용이 환골(換骨)한 곳을 보았는데, 그 몸뚱이와 손발·머리·꼬리·이·뿔이 살아 있는 용이 움직이는 형상과 꼭 같았다"라고 하였다. 그 후에 귀화한 대호군 주진사(朱嗔紫)가 ‘용각’이라는 것을 바쳤다.

     

    또 일본 사람이, 명칭은 모르나 사기(邪氣)를 물리치는 귀한 뼈라 하면서 와서 바친 것이 있었다. 주진자가 바친 것과 서로 같은데, 대개 노루의 뿔과 같으면서도 작았다. 다만 노루 뿔은 노루 머리에 박힌 뿌리가 얕은데, 이 뿔은 머리에 들어간 뿌리가 제법 깊어서 이것이 다른 점이다. 이 용이 환골하였다는 말이 참인가 거짓인가와, 용각·용골의 있고 없음과, 〈있다면〉 약으로 쓰이는 곳과 복용하는 방법도 아울러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그러나 이 '만인혈석'과 '용각' 등에 관한 일은 모두 경이 사사로이 묻는 것처럼 하여 국가에서 묻는다는 뜻을 나타내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도절제사 김종서가 회계하기를, "신이 산림에 가서 사냥할 때에  속칭 '여이조(汝而鳥)'라고 부르는 새가 땅을 파고 보금자리를 만든 곳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마파라와 자화가 말한 것은 이런 보금자리를 보고서 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알이 세 개 있는 보금자리를 신이 보지 못했으나, '만인혈석'과 '용각'에 대한 일은 한두 사람의 말로써는 믿을 수 없으며, 또한 여러 사람이 모른다 하여 이런 일이 없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선 자화가 준 돌을 진상하오며, 후일에 다시 천천히 캐어 물어서 아뢰겠습니다" 하였다. (<세종실록 >79권, 세종 19년 11월 22일 2번째기사)

     

    여기서 말하는 용각이나 용골은 화석화된 동물 뼈를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지금도 한약의 약재로 쓰인다. 나도 과거 한약방에서 희한한 동물 이빨 뼈가 붙은 '용골'이란 약재를 보고 신기하게 여긴 적이 있다. 하지만 '만인혈석'이란 돌에 대해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며칠 전 야산에서 이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아래 사진의 것으로 크기는 타조알보다 조금 작다.

     

     

     

    타산지석으로 삼으러 가져온 것이다. 조안.K.롤링이 쓴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원제는 <해리 포터와 현자(賢者)의 돌(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미국에서 영화화하며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로 바꾸었다. '현자'라는 말이 어렵고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찌 됐든 그 돌은 쇠를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에도 쓰이고, 만병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의 마법의 돌이다.

     

    현실에서 그와 같은 돌은 귀 얇은 자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할 뿐 실물로서 존재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자의 타산지석으로서는 가능할 터이니, 누구든 야산에, 혹은 강가에 뒹구는 적당한 크기의 돌로써 시간 날 적마다, 혹은 TV 등을 시청하는 시간에 들었다 놨다 하면 정말로 만병통치의 '만인혈석'이 될는지 모른다. 팁을 하나 더 드리자면 작은 돌로 안면을 지압하면 혈행을 촉진시켜 혈색이 좋아진다. 주름 완화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위 '만인혈석' 옆의 작은 돌은 그 용도로 주워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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