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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짜장면 위안스카이의 헛꿈과 싱 하이밍 중국대사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3. 6. 11. 06:55

    * 1편에서 이어짐
     

    위안스카이의 이 표정은 분명 당혹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불안감도 여실하다. 그는 '곧 황제에 오를 내가 집전하는 천제(天祭)이거늘 반응이 왜 이렇게 썰렁한가' 의아해하고 있고,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주위를 살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그가 주위 사람인 가족이나 측근들로부터, 혹은 매일 접하는 신문으로부터 보고 듣는 소식은 그야말로 "렬열한 환영" 일색이기 때문이었으니, 신문의 내용은 늘 "경애하는 위~대하신 대총통각하께서 하루빨리 황제에 오르기를 만백성이 우러러 기원합네다"였다. 

     
     

    천제를 올리기 위해 가는 길에서의
    위안스카이의 당혹감 어린 표정

     

    하지만 현실은 180도 반대였다. 앞서 말한 대로 국민들은 위안스카이의 독재와 시대착오적인 황제 등극에 한마디로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불만은 만수위에 오른 댐 같아서 수문을 열지 않으면 언제 댐을 무너뜨리고 대홍수와 같은 물을 쏟아낼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것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위안스카이는 민심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이유는 가족과 측근들이 일치단결해 위안스카이를 속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충분히 호의호식하고 있었지만 황족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황제가 되면 자식은 황족으로 권력까지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황제의 아들은 자동적으로 왕이 되는 것이며 측근들은 제후가 될 터였다. 그래서 그들은 위안스카이의 눈과 귀를 가렸다. 방법은 가짜 신문을 만들어 가짜 뉴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몇 가지 기사뿐만이 아니라 전체 기사가 통째로 가짜인 신문이었다. 오직 위안스카이만을 위한.
     
    * 위안스카이는 본처 1명에 첩 9명을 두고 총 32명을 자식을 낳았는데, 조선에서 맞은 3명의 소실이 낳은 아들 딸은 32명 중 15명이다.
     

     

    톄진 화이허(海河) 변의 위안스카이 저택
    .지금은 셔우푸쥐로우(首府酒樓)라는 광동요리 전문점으로 쓰인다.

     

    그렇게 은폐되었던 진실은 어느 날 우연히 만화처럼 드러났다. 하루는 위안스카이의 딸이 하녀에게 만두를 사 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딸은 하녀가 사 온 만두를 아버지와 함께 먹었는데, 무심코 만두를 싼 신문지를 읽던 위안스카이의 얼굴이 하얘졌다. 갑자기 피부가 좋아졌거나 백반증에 걸린 것이 아니라 신문의 기사 내용에 놀라 하얘진 것이었다. 거기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기사와는 180도 다른 진짜 민심이 실려 있었다. 그 신문은 가짜 신문이 아니기에. 
     
    위안스카이는 자신의 딸에게 이 신문 기사의 내용이 사실인가 물었다. 이 마당에 딸은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바 결국은 이실직고하고 말았다. 위안스카이가 다른 루트를 통해 알아본 결과 역시 같았다. 가족과 측근들 외에는 아무도 자신의 황제 등극을 원치 않고 있었다. 비로소 열린 그의 귀에는 이후 성난 민심의 목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지 못했다. 결국 칭제건원(稱帝建元,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세움)의 조서를 거두어들였기 때문이었는데, 법을 바꾸어 칭제건원를 한 지 81일만이었다. '홍헌'(洪憲)이란 연호도 사라졌으며, 즉위식 때 입으려고 거금을 들여 주문한 곤룡포와 면류관도 취소되었다.
     
    그리고 1916년 3월 스스로 대총통 자리에서 물러났고, 고립감과 좌절감에 시달리다 같은 해 6월 병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장례만큼은 황제급으로 치러졌고 무덤도 황릉급으로 꾸며졌다. 아울러 죽어서도 운이 작용하였으니, 문화대혁명기 홍위병들의 극심한 파괴행위 속에서도 마오쩌뚱의 지시로 무덤 풀 한 줌 상하지 않았다. 반면교사로서 보존하라는 지시였다. 그렇지만 역사의 평가에마저 운이 작용하지는 않았던 바, 선통제의 스승이던 레지널드 존스턴은 "1898년엔 황제를 배신했고, 1911년엔 제국을 배신했으며 1915년엔 공화국을 배신한 중국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라는 평을 하였고, 다른 이들의 평도 크게 다르지 않다. 

     
     

    허난성 안양(安陽)의 대총통 원세개지묘(大總統 袁世凱之墓)

     
    엊그제 망언을 한 망언제조기 주한 중국대사 싱 하이밍(형해명)이 거듭해서 위안스카이에 비유되고 있다. 위안스카이가 구한말 조선에서 한 행동 때문인데, 당시의 짓거리에 대해서는 이미 몇 차례 짚은 바 있다. (☞ "조선은 부서진 배" - 조선의 근대화를 가로막은 원세개 etc.)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싱 하이밍이 위안스카이에 비견될 정도의 인물이 못된다는 뜻이다.

     

    그는 그저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앵무새일 뿐이다. 이번에 읽은 원고 내용인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라거나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햡박도 결국은 중국 외교부의 속내이다. 중국은 과거 영약삼단을 주장하던 때에서 단 한 발자국도 진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과 영약삼단')

     

    과거처럼 중국은 우리 외교부 사람들을 발아래로 두고 있으며 (실제로 중국에서는 한 단 아래 자리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한국에 오는 주중대사의 직급은 주일중국대사나 주북한중국대사보다 훨씬 낮다. '대놓고 무시하기'다. 그들의 직급은 늘 부국장 내지 국장급으로, 우리의 보내는 장관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야당대표, 법무장관 등을 불러 이 따위 소리를 한다.(이번에 초대받은 한동훈 장관은 불참) 받아주니까 이 따위 소리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소익(小益)에 자위하며 굴종하는 습관을 알고 있음이다. 

     
     

    이재명 대표를 중국대사관으로 불러 만난 싱하이밍(邢海明, 1964~ )은
    중국 외교부 내의 대표적인 한반도통으로 1992년 북한 사리원농업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에서 세 차례 근무한 적이 있고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에서도 두 차례(1988~91년, 2006~2008년) 근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정부의 항의에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어젯(9일)밤, 곧바로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을 지원 사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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