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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기독교 왕국 '요한'의 실체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2. 15. 00:28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캐세이 퍼시픽(Cathay Pacific)이라는 항공사는, 1946년 창립된 홍콩을 거점으로 하는 프리미엄급 국제 항공사이다. 중국어 표기는 국태 항공공사(國泰航空公司)로 돼 있어 혹간 중국 항공사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영국계 다국적 기업인 스와이어 그룹 계열의 항공사이다. 캐세이 패식픽은 그저 발음만 달리 하는 같은 항공사이고, 캐이 드래곤은 2006년 홍콩 제2의 항공사인 드래곤 에어를 인수해 만든 자회사이다. 이로써 캐세이 퍼시픽은 중국 전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이룩하여 중국의 국영 항공인 에어 차이나(중국국제항공공사)에 버금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에 근무하던 회사의 대표가 스와이어 그룹 출신이라 귀에 친숙한데, 그는 자신이 그곳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무척 자부심 높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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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해저 왕궁(안토니우스의 꿈)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2. 12. 08:19
제정 로마의 서막을 연 '존엄한 자' 아우구스투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로마가 벽돌로 된 도시임을 발견하고 그것을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I found Rome a city of bricks and left it a city of marble) 이것이 로마의 외관을 의미하는 말은 물론 아니겠지만, 그가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열면서 로마를 새 단장했을 것임은 그 상상이 어렵지 않다. 로마는 기원전 510년경 팔라티노 언덕에서 시작한 작은 마을이 기원으로, 전승에 따르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테베레 강을 거슬러 정착한 곳이다. 그것이 로마의 세력 확장과 더불어 대제국 로마의 심장부가 된 것으로, 그로 인해 로마는 도시의 이름이자 나라의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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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최후(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2. 9. 23:59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에서 이어짐.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처음 만난 곳은 터키 남부 도시 타르수스로, 훗날 사도 바울의 고향 '다소'로서 우리에게 더 익숙한 곳이다. 앞서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편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곳 소아시아 지방은 기원전 42년 제 2차 삼두정치의 결과로 안토니우스에게 할양된 땅이었다. 그는 그 이듬해 이곳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기 위해 면세 혜택을 베풀었는데, 이에 관한 조칙을 직접 발표하러 왔다가 내친김에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소환하였다. 그녀가 그전 로마의 내전 당시 자신의 반대파인 퀸투스 캇시우스를 지원한 데 대한 문책을 하자는 것이었다.(공화파와의 내전이 일어났을 때 안토니우스는 캇시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브루투스와 싸웠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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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과 '70인역 성서'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2. 8. 08:10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티레를 정복한 후 이집트에 무혈입성한 일은 앞서 '알렉산더 대왕과 티레 전투'에서 설명한 바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때 나일 삼각주 서쪽에 위치한 라코티스라는 작은 마을 없애고 알렉산드리아라는 신도시를 건설했는데, 이후 이곳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이집트에 정주한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에 의해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도읍이 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 장수로서 종군한 그는 기원전 330년 박트리아에서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를 죽인 벳수스 총독을 붙잡아 처형시키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정벌에 앞장 서는 등의 혁혁한 전과를 세웠으며, 대왕의 사후 이집트에 정주해 자신의 나라를 건립하였다.(BC 305년) 프톨레마이오스 1세(재위 BC 305- 285)의 두상 그는 다른 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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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는 정말로 미인이었나?(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2. 6. 23:59
지난 2008년 12월 16일 영국 유수의 신문인 데일리메일(Dailymail)은 클레오파트라의 실제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3d 제작의 아래 얼굴을 실었다. 이집트의 여러 자료를 조사해 1년 이상 걸려 완성했다는 얼굴이다. 이후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그 사진에 실소(失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미추(美醜)를 떠나 내 상식으로는 전혀 나올 수 없는 얼굴이 버젓히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힙합을 즐기는 혼혈 소녀 같은 이미지의 사진 이 사진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 얼굴이 혼혈 또는 아랍인의 형상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조사했는지 모르겠으나, 앞서 말한대로 클레오파트라에게서는 절대 이러한 얼굴이 절대 나올 수가 없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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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민족의 후예들/훈족의 왕 아틸라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1. 31. 07:48
* '기마민족의 후예들/로마제국을 유린한 흉노족'에 이어짐. 훈족의 로마 공격이 재개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통합적인 힘이 아니었던 바, 국지적인 약탈이 지속되었을 뿐 그것이 로마제국 전체를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그 전투력은 여전히 위력적이어서 그 개별적인 부족의 공격에도 로마와 게르만족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활은 여전히 강해 삼각의 쇠 화살촉은 로마군의 가죽갑옷을 가볍게 꿰똟어 박혔고, 그간 이곳의 말들과 혼혈하며 개량된 저들의 조랑말은 더욱 힘차게 달렸다. 그런데 그즈음, 로마로서는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이 발생하였다. 훗날 이 분열된 훈족을 통일시켜 거대한 제국을 이룩한 아틸라가 탄생한 것이었다. 여기서 '다행스럽다'는 표현은 그가 후세의 역사가들이 평한 극악무도한 침입자가 아니었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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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민족의 후예들(II)/로마제국을 유린한 흉노족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1. 30. 05:25
흉노족과 처음으로 맞닥뜨린 유럽인은 볼가 강과 돈 강 사이의 초원에 살던 유목민 알라니족이었다. 그들은 그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동양의 흉노족과 처음으로 조우한 최초의 유럽인으로서 기록에 남게 되었다. 374년, 발라미르를 대장으로 하는 흉노족의 일파는 볼가 강을 건너 자신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마을로 향해 밀고 들어갔다. 그런데 흉노족이 첫 상대로 맞은 이 알라니족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던 바, 그들 역시 카프카즈령 로마제국과 파르티아를 상대로 노략질을 해 먹고 살던, 나름대로 분탕질과 싸움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나운 민족이었다.(파르티아에 대해서는 '고선지 장군과 종교개혁 (I)' 참조) 볼가 강의 위치와 흉노족의 침공(←) 이에 볼가강과 다뉴브강 사이의 땅은 100년 간 흉노족의 영토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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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민족의 후예들 (I)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8. 1. 28. 07:47
부순희라는 여자 사격 선수가 있었다. 그녀는 불세출의 총잡이로 일세를 풍미하였던 바, 94년 세계선수권, 97년 밀라노 월드컵, 98년 뮌헨 월드컵, 99년 월드컵 파이널스 등에서 우승하며 10년 이상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아무튼 스포츠 권총과 공기 권총에서는 세계에서 그녀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부진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2000년 무렵 위암 판정을 받았고 2002년 4월에 수술을 했다. 가족들 중에서도 위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다고 하니 필시 가족력에서 기인한 병인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수술 후 재기에 성공하였으니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6년 만에 다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가히 인간승리로 불릴만한 드라마적인 인생 스토리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