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이방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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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와 육영공원한국을 사랑한 이방인들 2021. 12. 21. 07:31
길모어의 부인은 꼬박 일주일을 누워 있다 겨우 기력을 회복하고 일어섰다. 뉴욕에서 제물포까지 온 약 두 달 간의 여행보다 제물포에서 한양까지의 하루 여정이 훨씬 힘들었을 터였다. 아무튼 훗날의 회고처럼 헐버트에게는 한국에서의 첫날이 힘들고도 기쁜 날임에 틀림없었겠는데, 잠시 후 말을 타고 나타난 언더우드는 그 기쁨을 배가시켰다. 목적은 달랐지만 먼 조선 땅에서 같은 미국인을 만났다는 자체가 경이로운 기쁨이었다. 게다가 그는 매우 젠틀한 사람이었다. ~ 북미 장로교회에서 파견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Horace Grant Underwood, 한국명 원두우, 1859-1916)는 선교 목적으로써 헐버트보다 약 10개월 앞선 1885년 4월 5일 조선 땅을 밟았다.(☞ '한국의 하나님에 빌붙은 이스라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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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I)ㅡ조선과의 운명 같은 조우한국을 사랑한 이방인들 2021. 12. 20. 05:55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의 일생을 몇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한국과 관련된 그의 일생은 그만큼 파란만장했으며 다사다난했다. 그리고 너무도 희생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푸른 눈의 애국지사',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서양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말로 그러해서 그에 관한 여러 자료를 읽고 나니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 있는가 하는 감동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 가는 잘 알려져 있는 편이나, 최근 내가 알게 된 몇 개를 덧붙이고자 한다. (물론 기존의 자료와 중복될 수는 있다) 헐버트는 1863년 1월 26일 미국 버몬트주 뉴헤이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칼빈 헐버트는 버몬트주 미들베리 대학교 총장이었고,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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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온 벽안(碧眼)의 여의사 로제타 홀한국을 사랑한 이방인들 2021. 11. 30. 03:35
구한말의 푸른 눈의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한국인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그의 일생을 약술(略述)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후(1889년) 뉴욕에서 빈민을 위한 의료 활동을 하다 1890년 10월, 보구여관(普救女館)의 두 번째 여의사로 내한했다. 보구여관은 이화학당을 세운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이 1887년 미국 감리교 여성선교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설립한 한국 최초의 여성전문 병원으로, 이름은 명성황후가 하사했다. (※ 保救女館은 잘못된 한자표기임) 당시 서울에는 알렌(Allen)이 경영하는 왕립병원 제중원이 있었고述,(☞ '박영효와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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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고아들을 돌본 의인(義人) 소다 가이치한국을 사랑한 이방인들 2021. 11. 28. 19:24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 1867~1962)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힌 유일한 일본인이다. 그래서 그 역시 조선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일본인 선교사로 생각하기 쉽지만 선교사가 아니다. 다만 크리스천이긴 한데, 그가 크리스천이 된 이유는 오히려 한국 YMCA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1850~1927)에게 감회됐기 때문이다. 이 낯선 이름의 묘비명에는 '고아들의 자부(慈父)'라는 문구가 함께 쓰여 있다. 즉 그는 이 땅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삶을 살다 영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가이치의 젊은 날의 생을 보면 그는 고아들과는 물론 한국과도 별 인연이 없는 사람이니, 나가사키의 광부를 거쳐 26살 무렵 노르웨이 화물선박회사의 선원으로 홍콩 등지에 체류하였고, 대만 주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