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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윗 왕 반지와 무령왕릉 팔찌의 글귀
    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2. 9. 4. 21:41

    "이 또한 지나가리라." 

     
    최근 어느 연예인의 좌우명으로서 언급된 후 새삼 조명받기도 한 이 명구(名句)에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다윗 왕과 솔로몬 왕자의 이야기가 따라 붙는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 세공사를 불러 명했다. "나를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담할 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는 지시였다.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그 링 안에 새겨 넣을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몇 날을 고민하다가 지혜롭기로 소문난 왕자 솔로몬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 얻은 글씨가 위의 명구라는 것이다.

     

    이 말이 명구라는 것은 그 짧은 문장이 희로애락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 될 수 있었던 것인데, 대개는 슬픈 상황에 인용된다. 다만 이 이야기의 출처가 다윗 왕과 솔로몬인지는 불분명하니, 적어도 성경에는 실려 있지 않으며 나아가 탈무드와 같은 이야기 책에도 실려 있지 않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창작에 유명인의 이름이 얹힌 것일 텐데 "Hoc etiam transibit"(혹 에티암 트란시비트)와 "This too, shall pass away"가 혼용돼 쓰이는 것을 보면 시기를 짐작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다만  이 이야기를 에이브러함 링컨 대통령이 인용해 유명해졌다는 것은 확실하니, 그는 이 이야기를 1859년 자신의 연설에 인용하면서 "동방의 한 왕(an Eastern monarch)"이 현자들에게 주문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래서 언뜻 생각난 것이 1972년 무령왕릉의 무덤에서 나온 한 쌍의 팔찌였다. 겉에 용무늬가 고부조로 양각된 그 한 쌍의 은팔찌에는 드물게도 모두 글이 새겨져 있어서 세인들의 특별한 관심을 모았었다.

     

     

    무령왕릉의 출토 팔찌 .

     

    물론 그것이 "시의역과"(是亦過矣,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 팔찌를 언급하는 것은 그 짧은 명문(銘文) 해석에 있어 전혀 새로운 풀이가 등장한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글자는 "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卅主耳(경자년이월다리작대부인분이백삽주이)"로 읽혀졌고, "경자년(520년, 무령왕 20년)에 다리(多利)라는 장인이 만든 대부인의 팔찌로 이를 만드는데 은(銀) 230주(主, 혹은 主耳)가 쓰였다"라고 해석되는 것이 통례였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기관인 서울의대 고병리연구실의 기호철 연구원이 전혀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먼저 "위와 같은 해석은 억지로 끼워 맞춘 것으로 무엇보다 이런 문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후, 명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에 '삽(卅)'으로 본 글자는 실제로는 '세(丗=世)'이고, 단위로 본 '분(分)'이라는 글자는 어(於), 혜(兮), 영(永) 등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팔찌의 명문 속의 다리(多利)

     

    이렇게 판독할 경우, 다리(多利)는 팔찌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팔찌의 주인인 무령왕비가 '다리작 대부인(多利作大夫人)'으로 일컬어졌다는 사실과, 팔찌 소유자인 왕비가 영원토록 이 팔찌의 주인이다"라는 의미를 새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해석은 그 참신함과 함께 백제사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주장으로 주목받았는데 지금은 어느덧 정설로 자리 잡았다. 
     

    이 새로운 해석을 한 사람은 "문장 구조상 다리작이 뒷문장 '대부인'(大夫人)'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볼 때 왕비가 곧 다리작 대부인(多利作大夫人)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고, "특히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다리는 불경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대부인의 궁호(宮號)와 같은 존칭으로 쓰였을 개연성도 크다"라고 짚었다. 즉 무령왕비가 '만백성을 이롭게 만든' 사람이라는 뜻으로, '다리작 대부인'으로서 칭송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서  최근까지 발굴된 한중일 삼국의 금석문 중 소유자가 있는 기물에 장인의 이름을 먼저 새긴 경우는 한건도 없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러면서 "다리작이 장인의 이름이라는 해석은 '다리'와 그가 만들었다는 의미의 '작(作)'에서 출발하지만, 이는 한문 해석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며 "한문은 1자씩의 자획으로 보면 안 되고 문장 구성 전체로 독해해야 바른 번역이 이뤄진다"라고 말해 기존의 전문 사학자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해석은 놀랍고 또한 타당성이 충분하다. 이 팔찌 명문에 대한 기존의 해석처럼 세상에는 명백한 듯 여겨지지만 진실이 아닌 것도 숱할 터인데, 그래도 그 또한 지나간다. 그래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의 위력과 무게감이 새삼 와닿는다. 거짓 또한 진실인양 세월에 묻혀 지나가는 불행을 설명하기에는 그것밖에 달리 해석 길이 없다. 

     

     

    위 팔찌가 출토된 공주 무령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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