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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신정왕후 조씨(조대비)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2. 10. 15. 07:31
소모적 페미 논쟁이 불길처럼 일었다 사그라졌다. 마치 누가 모닥불에 기름을 부은 듯 화르르 타올랐다 꺼졌다. 일방의 옮고 그름을 떠나 떠나 소모적이고, 국론 분열적이며, 갈등만을 조장하는 하등 불필요한 논쟁이었다고 생각된다. 주관적 생각이지만 창덕궁 대조전 후원의 불타는 단풍과 그곳의 이야기가 마치 그 페미의 불꽃처럼 느껴진다. 남편 효명세자(순조의 아들)가 죽은 후 무려 33년 동안 뒷방 늙은이로 밀려 살던 신정왕후 조씨, 우리가 흔히 조대비라 일컫는 여인의 이야기다
구한말 그 자리에서 조선시대의 여권(女權)이 절정에 올랐다. 오래전 본 드라마의 반추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도 그랬을 것 같다. 1863년 12월 8일 후사가 없던 철종이 승하하자마자 이미 흥선대원군과 모종의 밀약을 맺은 바 있는 조대비는 안동김문의 사람인 철인왕후 김씨(철종의 비)에 앞서 옥새를 확보했다. 그리고 왕의 상징인 그 옥새를 빼돌려 야밤에 나인들과 함께 대조전 후원 문을 들어서려는데, 모종의 낌새를 눈치챈 안동김문의 김병학 대감이 그들을 가로막는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가 김병학이었다.
"대왕대비 마마. 어딜 그리 급히 가시옵니까?"
조대비는 찔끔했지만 당당히 답한다.
"처소로 가오."
"헌데 들고 있는 비단 보자기 안의 물건은 무엇입니까?"
" ..... "
"대답을 못하시니 궁금합니다. 소인이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조대비가 세게 나간다.
"뭐라? 무엄하다, 이놈! 네놈이 무어길래 대왕대비의 물건을 보자하느냐? 안동김문이라 이것이냐?"
"아니, 그게 아니옵고....."
이번에는 김병학이 말문이 막혀 우물거리자 더욱 조대비가 세게 내지른다. (하지만 등허리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내게 볼 일이 남았느냐? 썩 물러나지 못하겠느냐?"
조대비는 나인들에게 처소를 단단히 지키라고 일렀다. 그리고 옥새를 꼭 껴안은 채 선잠에 들다 깨다 하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조대비는 어전의 수렴 뒤에서 신료들에게 옥새가 찍힌 언문교서를 읽었다.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아들 이재황을 철종의 후사로 삼겠다는, 안동김문으로서는 가히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었다.
33년 동안 뒷방 신세를 면치 못했던 신정왕후의 회심의 한 수, 그녀가 조선 최고의 권력자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안동김씨 60년 세도가 무너지는 아침이기도 했다. 다시 철종과 같은 허수아비 왕을 세워 권력을 이어나가려던 안동김문의 꿈이 하루아침에 무참하고 허무하게 깨져버린 것이었다. 조대비는 이재황에게 익성군(翼成君)의 작호를 내리고 영의정으로 하여금 궁궐로 맞아오게 했다.
안국방 운현궁 골목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던 12살 명복(이재황의 아명)은 졸지에 가마에 태워져 궁으로 들어갔다. 같이 놀던 아이들이 어디 가느냐고 소리쳐 물었지만, 명복 역시 알 길이 없었던 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조대비와 같이 이 거사를 획책한 이름뿐인 왕손 흥선군 이하응은 대원군(임금의 아비) 자격으로 명복과 함께 입궐했다.
왕계의 뿌리가 약했던 명복은 우선 신정왕후의 양아들로 입적돼 익종(효명세자)의 아들로서 정통성을 갖추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관례를 마친 후 12월 13일 보위에 오르니 26대 임금 고종이었다. 조대비는 1866년(고종 3년)까지 4년에 걸쳐 수렴청정을 하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에게 바통터치를 한다. 이후 그녀는 83세까지 편히 살다 갔다.
흔히 조선시대에는 여성이 차별당하고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울러 실제로도 그러한 면이 없잖지만 그것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제도적으로 막힌 까닭이다. 그래서 그걸 차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차별은 동등한 조건에 있는 사람을 차등적으로 대하는 것이기에. 말하자면 적서처별 같은 것일 터다. (같은 아들인데 적자와 서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여성은 단지 사회진출이 제도적으로 봉쇄돼 있었을 뿐 집안에서는 위와 같이 최고의 서열에도 오를 수 있었다. 이는 왕가와 반가와 여염집이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10회 정도에 걸쳐 시대에 얽매이지 않았던 조선의 여인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오늘이 그 첫 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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