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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애관극장
    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10. 6. 20:11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는 듯하다. 극장이란 극(劇)이 행해지던 곳을 말함이니 고대의 원형극장이 원류이겠으나 그곳에서 반드시 극이 행해졌다는 보장이 없는 까닭에 '가장 오래된 극장'을 비정하기가 힘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고대 3대 비극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아이스킬로스(Aischylos, BC 525/524~456/455)의 활동 시기가 기원전 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면 그의 작품이 초연되었다고 전하는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극장은 무려 2500년 전의 것이 되니 인간의 공연활동은 그 뿌리가 무척이나 깊다 하겠다. 

     

     

    아테네의 암피테아테르 디오니소스 극장
    디오니소스 극장의 위치
    지금도 공연이 이루어지는 디오니소스 극장
    아이스킬로스의 흉상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의 모든 도시에 극장 암피테아테르(Amphitheater)를 건립했다. 여기서 암피(Amphi)는 '사방팔방에서'라는 뜻이고 테아테르(Theater)는 '보는 장소'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문자 대로라면 '사방팔방의 모든 사람이 와서 구경하는 곳'이라는 뜻이 되겠고, 구경한 것은 연극이 되겠다. 영화관을 뜻하는 영어 '시어터'(Theatre)는 바로 여기에서 왔다. 고대에는 당연히 영화 상영은 없었으나 연극공연은 무척이나 대중적이었으니 앞서 나사렛의 시골청년 예수가 수사학(修辭學)을 배운 곳도 나사렛 인근 세포리스의 암피테아테르였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예수는 어디서 수사학을 배웠을까? - 세포리스 설')

     

     

    공중에서 찍은 세포리스 원형극장
    1985년 발굴 당시의 세포리스 원형극장
    지금의 일부 정비된 세포리스 원형극장

     

    이후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바울이 튀르키에 에페수스에 갔을 때 바울의 동역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현지 사람들에게 붙잡혀 끌려간 곳 역시 에페수스의 암피테아테르 오데온(Odeon)으로 짐작되는데, 영어 오디오(Audio)의 어원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것을 보면 오데온의 음향효과는 특히 뛰어났던 듯하다.

     

    ▼ 극장에 대한 또 다른 썰

    극장의 영어 단어인 씨어터(theatre)는 그리스어 ‘테아트론(théātron)’에서 비롯돼 라틴어 ‘theātrum’을 거쳐 중세영어로 정착했다. 그리스어 ‘théātron’은 보다(view)라는 의미의 ‘theasthai’에서 ‘thea’를 취했고 장소나 수단을 의미하는 ‘tron’이 합쳐진 단어라는 것이다. 애초에 그리스어 테아트론은 객석을 지칭하는 말로, 공연예술이 관객과 만나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근대적 주장이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트 인 사이트'에서)

     

    튀르키에 에페소스의 오디온

     

    근세에 들어와서는 극장이 건물 내로 들어왔던 바, 영국 건축가 에드워드 발리가 1732년 런던에 건립한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 in London) 나폴레옹 3세 시절 프랑스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파리에 세운 오페라 대극장,(Grand Opera in Paris) 이탈리아 건축가 피에르마린이 1776~1778년 밀라노에 지은 라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 1869년 프란츠 1세 때 세워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 1776년 모스크바에 건립된 볼쇼이 극장 등은 매우 유명하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의 내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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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관극장(愛館劇場)은 인천 경동 싸리재에 있는 영화관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 자리에는 청일전쟁(1894~1895) 중에 부산 갑부 정치국이 세운 협률사(協律舍)라는 공연장이 있었고 이후 축항사(築港舍)로 이름을 바꿨다가 1920~1921년 애관극장으로 개명됐다. 여명기의 인천에는 애관극장 외에도 1922년 일본인이 집회장소로 세운 인천공회당을 전용한 인천시민관과 동방극장, 문화극장이 있었으나 지금 남은 것은 애관극장밖에 없다. 

     

     

    <인천부사>에 실린 1934년 인천공회당 모습 / 지금의 송학로 인성여고 다목적관 자리
    1958년 인천부 공회당(인천시민관의 전신)으로 쓰일 때 개최된 근로자 위안 공연 사진

     

    애관극장은 1927년 개축하며 본격적인 극장시대를 열었으나 한국전쟁 때 크게 부서져 존폐 위기에 놓였다. 이후 1960년 600석 좌석 규모의 상영관을 다시 지은 뒤 1980년대까지 주변의 키네마극장 현대극장 자유극장 동방극장 인영극장 미림극장 등과 함께 인천의 문화거리를 형성했다.

     

    하지만 이곳의 극장들은 멀티플렉스영화관의 등장과 함께 쇠퇴해 사라졌고, 애관극장 역시 수년간 적자 누적에 따른 경영난에 건물이 매물로 나오며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인천시민모임'(애사모)의 '애관극장 지키기 100만 명 서명운동'에 힘 입어 부활했고, 2004년에는 본관 옆에 2∼5관 건물을 신축했다.  

     

     

    1960년대 애관극장 신문광고
    1960년대의 애관극장
    1970년대의 애관극장
    지금의 애관극장
    애관극장 거리
    극장의 후미
    극장처럼 생긴 이 건물은? / 옆 블록의 삼성요양병원 건물은 신신예식장이었다. 인천의 한다 하는 사람들이 결혼했던 곳이다.
    골드 빌딩이 건립된 옛 단성사 자리 / 서울 단성사는 애관국장 이전인 1907년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었으나 2013년 폐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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