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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봉산 망월사 무위당 벽화와 위안스카이의 현판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3. 10. 29. 21:39

     

    도봉산(道峯山)은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시 장흥면에 걸친 높이 740m의  큰 산이니 주봉인 자운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만장봉과 선인봉, 서쪽으로는 오봉이라 불리는 다섯 개의 암봉이 절경을 이룬다. 망월사는 명산 도봉이 품고 있는 대가람으로 만장봉 아래 해발 500미터 지점에 위치한다.  

     
     

    망월사 선원에서 바라본 만장봉

     

    도봉산의 빼어난 풍치는 예로부터 금강산에 비견돼 왔는데, 설사 금강산에는 못 미칠지라도 경기 일원에서는 최고임이 분명하고 그 산이 낳은 망월사 역시 경기 최고의 가람으로 손꼽힌다. 그래서 일찍이 가람 이병기는 "도봉은 경산(京山)에서는 비할 데가 없는 산으로 승가사·삼막사·대성암도 전망이 빼어나나 망월사처럼 수려하지 못하고, 진관사·봉은사도 아늑하긴 하나 망월사의 그윽한 아름다움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평했다.
     
    그 망월사 중에서도 무위당(無爲堂)의 조망은 단연 으뜸으로, 무위당은 망월사를 향해 오르는 발걸음이 지칠 무렵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당우이다. 무이당은 2층 콘크리트 건물(반지하 1층, 지상 1층) 위에 위치한 전각이다. 그것이 다른 가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락 밑 돌계단을 걸어올라 만나는 형식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망월사는 지형상 일주문을 건립하기 어려운 산사이기에 일주문의 역할을 대신하는 무엇이 필요할 듯하나, 그것이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과의 대면이라니 뜨악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식 건물 위에 자리한 무위당
    망월사 무위당
    무위당 현판

     
    그러나 이런 기분은 곧 무위당에서 바라보는 전망과 주위 풍경에 상쇄된다. 어쩌면 압도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울러 주위에서 내려다보면 큰 바위 밑에 자리한 샘물도 보이는데, 샘 안 수조는 의외로 1381년 자연석을 깍아 만든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위를 바라보면 170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가 보이고, 그 위로는 다시 '하늘 속의 선원'이라는 뜻의 천중선원(天中禪院)에 오르는 계단이 조망된다. 문자 그대로 하늘에 오르는 계단이다.
     
    주변 무위당 마루에서는 흡사 방치된 듯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동종이 보인다. 그래서 오래된 듯 여겨지지 않지만 이 역시 허를 찌르니, 1786년 병오년 6월 6일에 이곳 망월사에서 삼백근의 구리를 녹여 만든 종이라고 한다. 종에 새겨진 제조일을 따라 '망월사 건륭오십삼년명 동종'이라 불리는 종의 몸통에는 발원자와 제작자의 이름 등도 기록돼 있다. 연곽 좌우편에 각각 합장한 보살입상과 칼을 든 인왕상(仁王像)을 부조하고, 발톱 세 개 달린 용이 천판을 누르고 있는 특이한 용뉴를 디자인한 장인은 편수 이영희(片手 李永喜)다. 그 이름은 아래 사진으로도 확인된다.
     
     

    무위당에서 바라본 전망
    무위당 앞 고사목
    무위당 아래의 샘
    무위당에서 바라본 보호수 느티나무
    천중선원 계단
    망월사 건륭오십삼년명 동종

     
    이어 무위당 벽에 가득 그려진 벽화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언뜻 화가 이중섭이 그린 듯 보이는 이 빼어난 그림들의 작가는 불화장 금초(錦草) 이연욱(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7호)으로, 17세에 단청장 고(故) 덕문스님(중요 무형문화재 제48호)의 제자로 입문해 전통불화를 익혔다. 그는 무위당 벽화 이외에도 낙산사 33 황금관음도를 비롯해 전국 300여 사찰에 8000여점의 불화를 남겼는데, 단청·탱화에만 얽메이지 않고 자유로운 작업을 하는 분이라고 한다. 올해 69세이다. 
     
    그리고 무위당에 걸린 '망월사' 현판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이 글을 쓴 자는 여러 번 얘기한 바 있는 못된 놈 위안스카이다. '망월사' 좌우에 쓴 '주한사자원세개(駐韓使者袁世凱) 광서 신미중추지월(光緖 辛未仲秋之月)'라는 글자는 청나라 황제 광서제 재위 당시의 신미년, 즉 1891년 가을에 위안스카이가 썼음을 말해준다. 그가 조선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때의 절정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 그가 왜 이곳에 와 현판 글씨를 남겼는지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이나 기록은 없다.  
     
     

     

     

     

     

     

     

     

     

     

     

     

     

    무위당 벽화

     

    위안스카이가 쓴 망월사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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