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겸재의 행호관어와 웅어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2. 28. 21:22
     

    겸재 정선은 1740년 12월 11일 국왕 영조의 명으로 양천현령(陽川縣令)에 임명됐다. 양천현은 지금의 서울 양천구와 강서구 일대의 땅으로 강서구 가양동 239번지에 관아가 있었다. 지금 관아 건물은 없지만 주변에서는 1981년 복원된 양천향교를 볼 수 있다.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이며 부근에는 겸재정선미술관도 있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은 양천 허씨로 이곳 양천을 본관으로 한다.
     
    영조가 정선을 양천현령으로 임명한 것은 도화서 출신의 그가 인근의 한강을 바라보며 편히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 배려였다는 말이 있는데, 필시 강 건너 덕양산의 절경에 기인해 창작된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덕양산과 행호(杏湖)의 풍경은 절경이니, 정선은 실제로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두 점의 그림을 남겼다. <낙건정도>와 <행호관어도>가 그것이다. 
     
    <낙건정도>는 덕양산 끝자락 돌방곶 바위절벽 위에 자리한 낙건정 김동필(金東弼, 1678~1737)의 별서 낙건정(樂健亭)을 그린 것이고, <행호관어도>는 행호에서의 고기잡이가 주제이다. '행호관어'(杏湖觀漁)는 '행호에서의 고기잡이를 구경한다'는 뜻이다. 행호는 창릉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덕양산 행주산성 아래서 그 폭이 넓어지며 잔잔해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마치 호수 같다 하여 이곳 행주(幸州)의 이름을 따 행호라고 불렀는데, 살구나무가 많아 행호(杏湖)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낙건정도' / 낙건정(樂健亭)은 6조 판서를 두루 지냈던 김동필이 관직에서 은퇴한 후 '즐겁고 건강한' 말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행호관어도' / 강서구와 덕양산 사이 떠 있는 고기잡이 배와 지금은 사라진 모래섬이 보인다. 좌측의 뽀족한 봉우리는 일산 고봉산이고, 고봉산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은 파주시 교하의 심학산이이다
    능곡역에서 본 풍경
    덕양산과 방화대교
    낙건정 터와 행호의 위치

     
     <행호관어도>는 1741년 봄에 그려진 그림으로서 행호에 떠 있는 14척의 배는 웅어잡이 배이다. 웅어는 회유성 어류로 바다에서 자란 후 음력 2~3월 한강을 거슬러올라와 덕양산 부근 갈대가 있는 곳에서 산란한다. 까닭에 갈대밭 부근에서 많이 잡히는데, 이에 갈대 위(葦) 자를 써 위어라고도 불린다. 길이 30~40cm 정도이며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 부분부터 더욱 날씬한데, 보기부터 맛있어 보이고 실제로도 맛이 뛰어나, '가을 전어가 상놈이면, 봄 웅어는 양반이다'는 말도 있다.
     
     

    웅어는 보리 익을 때 먹는 생선이라고 해서 '보리 누루미'라고도 불린다.


    웅어는 조선시대에는 임금님 수랏상에 오르던 귀한 생선으로 해마다 봄철이면 사옹원의 진상 독촉이 심했다. 이에 덕양과 양천에는 위어소(葦漁所)가 설치되었으며, 양천현감 정선도 웅어를 잡아 진상했으니, 그 여유분을 도성에 있는 지인들께 보냈다는 편지 기록도 전한다. 웅어는 회가 좋고, 미나리·오이·양파 등을 넣고 버무린 무침, 혹은 매운탕으로도 일미이다. 어릴 적에는 심심찮게 웅어를 잡았으나 나이 먹어 갔을 때는 맛없는 누치만 걸리고 웅어는 한 마리도 못 잡은 기억이 있다. 
     
    덕양산 아래는 서해의 조수와 한강 민물이 만나는 이른바 기수역(汽水域)이다. 그래서 이곳 갈대밭 부근은 낚시 포인트였지만, 한강종합개발사업을 거치며 물길이 변하고 갈대숲이 사라지며 웅어도 따라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 능곡역과 행주서원 부근의 횟집, 혹은 고양이나 파주 일대의 웅어 전문점에서 판매되는 웅어는 거의가 부산·군산·목포·해남 등에서 올라온 것이라 하며, 회의 경우 대자 1접시에 5만 원 정도이다.
     
    일전 행주산성에 다녀오다 덕양산 아래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을 만나 웅어가 잡히느냐 물었더니, 웅어를 아느냐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웅어는 자신도 본지 오래고 황복(黃복=황복어)은 아직 나온다고 답했다. 회유성 민물복어인 황복은 수컷 한 마리에 약 10만원, 알배기 암컷은 20~30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생선인데, 송나라 문장가요 미식가인 소동파가 하돈(河豚)이라 칭하며 맛을 칭송한 바 있어 하돈이라 불리기도 한다. 어부의 말로는 황복은 지금도 한강 잠실수중보 일대까지 올라온다고 했다.
     
    2008년 4월 경기도 광주시 부근 중부고속도로 갓길,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남성 2명이 의문사한 사건이 있다. 그 중의 한 명은 죽기 전 119에 다급한 구조 요청을 남겼지만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그 두 사람은 아무런 외상이 없었다. 오랫동안 미제사건이었던 그 사건은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이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내가 아는 바로는 두 사람은 황복 요리를 먹고 골프를 치러가다 죽었다. 테트로도톡신은 복어의 내장 등에 많이 들어 있어 반드시 전문 복요리사가 조리를 해야 한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가끔 피를 복어 살에 살짝 뿌려 먹는 사람이 있다. 복어 피에 소량 함유되어 있는 테트로도톡신이 혀를 마비시킴으로써 오는 오묘한 식감을 즐기려는 것인데, 과하면 죽기 십상이다.
     
     

    최고 몸값의 물고기 황복
    황복을 디자인한 듯 보이는 행호쉼터 조형물
    행호에서 바라본 행주대교
    행호의 고기잡이 배
    멀리 김포대교가 보인다.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