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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절 이전에 부활한 예수 시대의 사람들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4. 3. 30. 06:55

     

    작년 부활절은 4월 9일 일요일이었다. 그것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 인천에 갔다가 연안부두 8부두 부근의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을 사진에 담아와 블로그에 올렸기 때문이다. 일부러 부활절 날에 맞춰 그랬던 것은 아니니, 그 동기를 적은 당시의 글을 다시 올리자면 이렇다.

     

    우리나라 프로테스탄트의 시작은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제물포항에 내리면서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언드우드와 아펜젤러는 원래 1884년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었으니 그해 발생한 갑신정변으로 인해 일본 요코하마에서 발이 묶였다. 그러다 국내 정세가 조금 안정된 이듬해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날 아침, 제물포항에 역사적인 첫발을 디디었다. 호러스 언더우드는 26세, 헨리 아펜젤러는 27세의 청년이었다. 인천광역시 연안부두 8부두 부근의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은 그들이 제물포항에 도착한 것을 기념해 1986년에 세운 모뉴먼트인데, 조형된 인물은 아펜젤러의 부인까지 세 사람이다.

     

    언더우드에 앞서 설명한 바가 있고, 오늘은 이후 인천과 서울에 남은 아펜젤러의 발자취를 따라 찾아가보려 한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4월 9일 일요일 오늘은 우연찮게도 2023년 부활절이다. (☜ '1885년 제물포에 상륙한 아펜젤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그런데 뉴스를 보니 올해는 부활절이 3월 31일 내일이란다. 그리고 8년만에 맞는 3월의 부활절이라고 한다. 부활절 날짜가 매년 바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3월의 부활절이라니 좀 이색적이다. 예전에 보았던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그 영화의 제목처럼. 

     

    그래서 이번엔 부활절 날짜에 대해 들여다 보았는데, 역사와 과정이 좀 복잡하다. 우선 부활절의 날짜를 정하는 방식이 각 기독교 교파에 따라 차이가 있다. 베드로와 바울로부터 비롯된 초대 교회는 유대인의 명절이었던 유월절을 기준으로 부활절을 지켰으나, 지역적 분화에 따른 교회가 세워지면서 4세기부터는 기존의 기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부활절은 처음부터 음력에 기준을 두었는데, 지역적으로는 달력을 각기 사용하기도 해 부활절 날짜는 애시당초 가변적일 수밖에 없었다. 

     

    ※ 유월절이 기준이 된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부활한 때가 유대교의 유월절 무렵이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월절의 유월(逾越, Passover)은 '넘어간다'는 뜻으로, 가톨릭에서는 같은 뜻의 과월(過越)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옛날옛적 유대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여호와는 그들을 돕기 위해 이집트인을 응징하였는데,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유대인의 집은 응징을 피한 데서 유래된 기념일이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이 유월절이 지켜졌으나 칼케돈 공의회에서 폐지하고 비슷한 날짜인 부활절을 명절로 대체시켰다.  

     

    이에 통일의 필요성을 느낀 교계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춘분(3월 21일경) 다음의 보름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제정했다. 그럼에도 논란은 종식되지 않았으니, 로마가톨릭 하의 서방교회는 공의회의 결정 날짜가 그대로 지켜졌지만, 전통적인 자신들의 달력을 의지한 동방정교회는 부활절이 서방교회보다 4~5주 후에 치러졌다. 이것은 지금도 그러하다. 

     

    그리고 안티오크 교회나 콥트 교회 등도 날짜를 달리했으니 이는 달력이 다른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까닭에 부활절은 지금껏 각 교파마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를 통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 부활절 날짜를 양력 기준으로 어느 날을 정해 고정시키면 된다. 이렇게 되면 각 교파가 동일한 부활절 날짜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20세기 들어 양력 4월 두 번째 일요일로 부활절을 정하자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더 보자면, 부활절의 계산법이 복잡한 이유는 날짜를 산출하는 과정이 양력과 음력이 다르고, 거기에 춘분까지 끼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서방교회의 제정법을 따르고 있으므로 3월 31일이 부활절이 된 것인데, 계산법 대로 하자면 올해의 경우 춘분은 지난 20일이었고 보름은 25일이었던 바, 그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인 31일이 부활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큰 오류가 있다. 신약성서 요한복음을 근거로 하자면 예수는 유월절 하루 전인 13일 날(금요일) 죽었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불길한 날 '13일의 금요일'은 이를 근거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예수가 죽은 날은 유대력으로 니산 달, 즉 음력 1월이다. 따라서 유월절과 초기 교회의 부활절은 당연히 음력 1월이나 2월 초에 있었을 것이다. 그 부활절이 3~4월로 옮겨진 것은 순전히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로마력을 기준으로 삼은 까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활절 자체가 비기독교적이다. 이것은 부활절(Easter), 즉 이스터의 뜻으로도 알 수 있는 바, 이스터는 앵글로 색슨 족이 숭배하는 봄과 다산(多産)의 여신 이스터(Eostre)에서 비롯됐다. 그 이스터는 독일어 오스테르(Oster)에서 나왔는데, 이는 독일 북부에 살고 있던 앙겔른(Angeln)과 작센(Sachsen)족이 잉글랜드로 이주하여 앵글로 색슨이 된 까닭에 숭배하던 신의 이름도 변경된 케이스이다.

     

    위 이스터와 오스테르의 축일은 모두 춘분으로, 봄의 정령인 그들이 태동하는 춘분이 부활절로 탄생했다. 이는 영국 교회가 원주민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사실 이는 이스터 여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동 지방의 신, 아스타로스(Astaroth = 이쉬타르) 등의 축일과도 겹치며, 나아가 노르만의 이스트레(Eastre),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가이아(Gaia), 아프로디테, 비너스의 축일과도 합치된다.

     

     

    이스터는 누구인가? / 그녀는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우라노스의 아내)이자, 아스타로스(바빌론의 신 이쉬타르)이자 아르테미스이자, 비너스이자, 아프로디테의 역할을 지닌 앵글로 색슨 족의 최고 여신이다.
    "부활절은 원래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다산과 성(性)의 여신 이쉬타르의 축일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날이 기독교의 예수를 대표하도록 만들었지만 그 뿌리는 이스터 여신이다."
    "이쉬타르는 봄에 죽음에서 부활한 바빌로니아의 다산의 여신이다. 그녀는 앵글로색슨에서는 이스터, 노르웨이에서는 이스트레, 히브리어로는 아쉬토레스, 그리스어로는 아스타르테로 불렸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 / 1722년 부활절 날 이곳을 발견한 네덜란드 야코르 로헤벤 제독은 이 섬의 이름을 이스터라 명명했다.
    이스터 섬의 위치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예수의 부활 이전에 부활한 예수 시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수가 많았으며 심지어는 예루살렘 거리를 걸어 다녔기까지 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 사실을 매우 의아하게 여기며, 그렇게 보면  예수가 부활한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신, 만들어진 위험>에서) 

     

    "마테오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바로 그 순간 예루살렘 성전에 쳐져 있던 거대한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기고 땅이 흔들렸으며, 무덤이 열려 죽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걸어 다녔다고 말한다. 그 공식 복음서에 따르면 당시 예수가 부활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예수가 부활하기 불과 사흘 전에 많은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예루살렘 거리를 걸어 다녔으니 말이다."

     

    도킨스가 지적한 마태복음 27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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