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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양신의 날 선(SUN)데이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3. 9. 29. 16:35

     

    추석 연휴를 지내며 휴식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가족들과의 트러블이 없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혹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통과의례라 생각하고 넘어가는 중이다. 그러면서 문득 조선시대에는 법정공휴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은 명절연휴가 있고 토·일을 연휴하지만 일요일은 서양의 역법과 관습에서 기인된 휴일이니 조선시대에는 당연히 휴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알아보니 조선 시대에는 휴일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즉 사람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던 것이니, 통상적으로 관리들은 사가독서제와 같은 급가(給暇 ,임금의 특명으로 주어지는 휴가)를 제외하고도 매월 순휴(每旬休, 열흘에 하루를 쉼)했지만 노비와 같은 신분에게 따로 휴일이 주어줄 리 없었다. 혼인날이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은 휴일 없이 죽도록 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을 보면 서양의 일요일은 대단히 합리적인 제도이다. 주변에 기독교인이 많았던 나의 어릴 때는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주일이 일주일의 준말로 일요일과 같은 용어인줄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것이 한자로는 主日로 곧 '주님의 날'이라는 뜻임을 안 것은 이후 나이를 먹어서였다. 역설적이게도 '일요일은 교회 가는 날'이 아닌 그저 법정공휴일이며, 그것이 그리스도 교회와는 전혀 무관한 로마의 휴일에서 비롯되었다는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순암 안정복의 잡저(雜著) <천학고(天學考)>에서는 이 로마의 휴일에 대해 의외로 정확히 서술하고 있다. 

     

    대진국(大秦國, 로마)후한 환제(桓帝) 연가(延嘉) 초에 국왕 안돈(安敦, 안토니우스)이 사신을 보내어 일남(日南, 베트남)의 국경 밖에서 조공을 바쳤다. 그 나라는 조지(條支, 이라크) 서쪽에 있는데 중국까지 오려면 바다를 건너는 것이 4만 리이며 장안까지가 4만 리이다.... 사람들의 얼굴색은 붉고 희다. 왕성(王城)은 사방이 80리이며, 사면의 영역이 각각 수천 리이고 강력한 군대가 백만이다.... 그 법이 돼지·개·나귀·말 등의 고기를 먹지 않으며, 임금이나 부모 등 높은 자에게 절하지 않고, 귀신을 믿지 않아 하늘에만 제사지낼 뿐이다. 그들의 풍속은 7일마다 하루씩 쉬는데, 그날은 물건을 사고팔지 않고 출납하지도 않으며, 오직 하루 종일 술이나 마시고 떠들며 노닥거린다.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여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와는 무관하게 321년 3월 7일, 일요일 휴업령을 내렸다. 흔히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하여 마치 그가 기독교에 유화적이었거나 나아가 숭배한 것처럼 착각하지만 그의 기독교 공인은 그저 정치적 술수였을 뿐,* 콘스탄티누스 그 자신은 태양신 솔리 인빅투스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그래서 그는 솔리 인빅투스의 성일(聖日)인 일요일(sunday)을 강제 휴일로 정하고 하루를 쉬면서 경배할 수 있게끔 만든 것이었다. 

     

    * 313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또 다른 황제인 리키니우스를 물리치고 리키니우스의 치소(治所)였던 밀라노에 입성해 저 유명한 밀라노 칙령을 반포한다.(앞서도 설명했지만 당시는 로마의 4명의 황제가 패권을 다투던 내전 시기였다) 이로써 변방 팔레스타인에서 비롯된 소수 종파 기독교는 일약 로마의 대세로 떠올랐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당시 콘스탄티누스는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태양신 숭배신앙 미트라(Mithras)교의 독실한 신도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었을까?

     

    (기독교인들이 알면 실망스럽겠지만) 그 이유는 대단히 심플했다. 정적인 리키니우스가 아직 건재한 까닭이었으니 그에 대한 공격에의 구실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누스는 그 이듬해 기독교 신앙의 보호 명목으로 재차 리키니우스의 영토를 침공하는데,(리키니우스의 영토였던 소아시아와 이집트 지방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이때 리키니우스는 324년 마르디아 평원에서 벌어진 두 번째 전투에서도 패해 데살로니카로 추방되었고 거기서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 '삼위일체의 진실 I - 밀라노 칙령의 진실')

     

     

    밀라노 로마황제의 처소 유적
    황제의 처소 복원도 / 이곳에서 밀라노 칙령이 발표되었다. 원래는 리키니우스의 궁전이었다.
    리키니우스 궁전의 모자이크화
    억울한 리키니우스 1세(재위 308-324) / 당시 리키니우스는 자국 내의 기독교인들에게 관대했으며 까닭에 기독교를 정식으로 공인하는 식의 정치 쇼 따위를 하지 않았다.(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태양신을 숭배했던 콘스탄티누스 1세 (재위 306~337) / 그는 리키니우스의 기독교 유화정책에 가볍게 숟가락을 얹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로마의 태양신 솔리 인빅투스
    모자이크 벽화 속의 솔리 인빅투스
    어느 날 자유의 여신이 된 솔리 인빅투스

     

    지금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림은 아마도 그 영향일 것이다. 원래의 유대교인들에게는 안식일(安息日,  Sabbath)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껏 성스럽게 지켜지고 있다. 그리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성스럽게 지키라'는 것은 십계명에도 포함되어 있는 경구인 바, 유대교를 너머 가톨릭과 개신교 등 크리스트파 교파에서도 일을 하지 않고 쉬면서 예배 드리는 날로 삼고 있다.

     

    그들의 안식일은 성경 창세기에서 저들의 신 여호와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한 후 7일 째에 안식을 취한 것에서 기원한다. 그런데 로마력에 따르면 그들의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다. 날짜이니 만큼 이것은 불변의 원칙이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부터 가톨릭과 개신교 등의 크리스트파 교파에서는 안식일이 아닌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에 쉬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십계명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을 위장 주일로 만들어 예배를 올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에는 일요일만이 휴일이었으므로 교회에 모이기 위해서는 일요일이 안식일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다만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를 비롯한 몇몇 크리스트파  교파는 토요일을 휴식과 예배의 날로 지켜왔으나 그들은 오히려 지금 이단 취급을 받고 있다. 바른 길을 걷는 이가 소수이면 이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 현대의 크리스트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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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