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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성각과 나반존자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4. 2. 19. 20:15
     
     

    모든 사찰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절집에서 삼성각은 그리 드물지 않다. 내가 이제껏 본 삼성각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당우는 안동 봉정사의 삼성각이나, 그것에 특별한 무엇이 있지는 않다. 그것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 무렵 복원된 국내 최고(最古) 목조건축물인 극락전을 어렵게 찾아와 마침내 보았다는 만족감에 동반된 인스프레이션으로, 거기에 삼성각이 위치한 절 뒤편의 호젓한 분위기가 상승작용을 일으켰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삼성각 자체는 오래된 건물이 아니다)

     

    그 밖에도 서울 화계사의 부서진 삼성각, (아마도 공사 중이었던 듯) 양주 회암사에 올라 내리는 눈비 속에서 바라본 삼성각, 눈밭 속에 외로이 서 있던 하남 선법사의 삼성각도 기억에 남는다. 

     

     

    봉정사 극락 전 뒤에 위치한 삼성각
    봉정사 삼성각 / 경북나드리 사진
    복원된 가장오래된 법당 극락전 (제대로 된 복원인지 지금도 의심스럽다)
    봉정사의 밤
    회암사 삼성각
    선법사 삼성각

     

    산신(山神) 칠성(七聖) 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한 당우인 삼성각은 불교를 믿는 나라 가운데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다. 더불어 산신각과 칠성각도 우리나라에만 있다. 산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속 신으로 허연 수염의 할아버지로 묘사된다. 칠성신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속 신으로 인간의 수명(장수)과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써 역할이 분명하나 모습은 정형화 돼 있지 않다. 

     

    조금은 생소한 독성각은 독성존자(獨聖尊者)를 모신 곳이다. 독성은 홀로 득도한 소승불교의 성자들에 대한 통칭이나 언제부터인가 ‘홀로 깨친' 나반존자(那畔尊者)를 칭하는 말이 됐다. 그래서 언뜻 나반존자가 석가모니의 제자 중에서 조금 별종이었던 사람 쯤으로 여겨지지만 불경 속 석가모니의 제자 중 나반존자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오백나한의 이름 속에도 없다. 아울러 중국 불교에서도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18나한 중의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를 등치시키기도 한다) 

     

    혹자는 독성존자가 부처의 가르침 없이 남인도 천태산에서 스스로 부처의 12연기법을 깨친 성인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며, 사찰을 찾는 수행자를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과거 육당 최남선은 국조(國祖) 단군을  나반존자의 모델로 여기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찰에 모셔지는 나반존자의 모습은 긴 머리카락에 허연 눈썹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 단군 상과 비슷하다. 아무튼 산신과 칠성과 독성은 우리나라 고유의 신앙에서 비롯된 경배의 대상임이 분명하니 산신각· 칠성각·독성각을 삼성각으로 퉁쳐도 무방하다. 물론 따로 존재해도 상관없다. 

     

    그래서 현통사처럼 산신각·칠성각·독성각이 세트로 존재하는 절도 있지만 대부분 곁다리로 두는 편인데, 희안하게 어느 절이나 그 셋 중의 하나는 있다. 그래서 과거 어떤 대덕께서는 불교 교리에 맞지 않는 그것들의 철폐를 외친 적이 있음에도 지금도 건재하다. 내 생각에는 한국적 톨레랑스 같은 것일 수도 있고, 과거 불교가 정치적 이유로써 민중들에게 괴리되었을 때, 그 대안으로 삼아온 토속신들에 대한 포용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어제 들렀던 옥수동 미타사의 독성각을 들여다보며 든 생각이다. 

     

     

    속세 속의 독성각
    미타사 독성각의 나반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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