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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고구려의 국경선이기도 했던 안성 도기동초기 백제를 찾아서 2024. 10. 16. 00:23
경기도 안성시 미양로 866에 위치한 도기동 목책지(木柵址) 유적이 한때 백제와 마한의 국경선이었다는 사실을 앞서 밝힌 바 있다. <삼국사기/백제본기 온조왕조>의 기록에 따르면 온조왕은 BC 5년(온조왕 14) 정월 하남 위례성에 정도한 이래 야금야금 영토를 넓혀갔던 바, AD 19년 가을에는 웅천(熊川)을 넘어 목책을 설치했다가 마한 왕의 따끔한 질책을 받는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다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온조왕 24년 가을 7월 왕이 웅천책을 만들자 마한왕이 사신을 보내 꾸짖어 말하기를 "왕이 처음 강을 건넌 후 발을 디딜 곳이 없었을 때, 우리가 동북 1백리의 땅을 갈라 주어 편안하게 하였으니 왕을 대함에 후하지 않았다 하지 못할 것이오. 그렇다면 마땅히 갚음이 있어야 옳겠거늘, 지금 나라가 완성되고 백성이 모여들자 나와 대적함이 없다 말하면도 크게 성과 해자를 만들고 우리의 경계를 침범하니 이에 무슨 짓인가?" 했다. 왕이 부끄러워하여 마침내 그 책을 허물었다.
하지만 일단 물러섰던 백제는 근초고왕(재위 346~375) 무렵 다시 안성천을 넘었고 나아가 마한이 점령하고 있던 대부분의 지역을 손에 넣으니 백제는 북쪽의 고구려와 견줄 수 있는 강국이 되었다. 그리고 개로왕(재위 455~475) 때에 이르러서는 북위를 사주하여 남북으로 고구려를 협공하려고도 하였으나 북위가 뜨뜨미지근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개로왕의 계획은 성사되지 못한다.
반면 이 사실을 알게 된 고구려 장수왕은 화가 뻗칠 대로 뻗쳐 백제 침공을 계획하는데, 공격에 앞서 바둑 고수인 도림이라는 자를 승려로 위장해 남파시켰다.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보낸 맞춤 공작원인 도림은 계획대로 국수(國手)의 실력으로써 개로왕의 환심을 샀다. 그리고 대규모 건축·토목공사로 백제의 국력을 피폐하게 만드니, 개로왕은 도림의 말을 좇아 화려한 궁궐과 누각을 짓고 욱리하(郁里河) 큰 강을 따라 사성(蛇城)의 동쪽에서부터 숭산(崇山) 북쪽에 이르는 긴 둑을 쌓았다.
475년 음력 9월 장수왕은 마침내 남하를 개시하니, 3만 고구려군의 대대적인 공격에 하남 위례성이 함락되고 사로잡힌 부여경(扶餘慶, 개로왕)이 아차산성 아래서 참수된 사실은 앞서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이 무렵 개로왕은 아들(혹은 동생) 부여흥(扶餘興, 훗날의 문주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내가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하여 간사한 사람의 말을 믿었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도다. 백성들은 쇠잔하고 병사는 약하니, 비록 위급한 일이 있다 하여도 누가 기꺼이 나를 위하여 힘써 싸우겠는가? 나는 마땅히 사직을 위하여 죽어야겠지만 네가 여기서 함께 죽는 것은 유익할 것이 없으니, 너는 난리를 피하여 있다가 나라의 왕통을 잇도록 하라.(予愚而不明 信用姦人之言 以至於此. 民殘而兵弱 雖有危事 誰肯爲我力戰. 吾當死於社稷 汝在此俱死 無益也 盍避難以續國系焉)
혼란 속에서 백제 제22대 왕으로 즉위한 문주왕은 선왕의 유지를 좇아 웅진으로 천도, 웅진백제시대(475~538년)를 연다. 이후 북으로는 차령산맥과 금강이, 동으로는 계룡산이 막고 있는 새 수도 웅진의 지리(地利)에 힘 입어 고구려의 공격을 막아내었다.그러면서 양국의 국경을 지금의 안성시 도기동과 안성천을 잇는 라인으로 고착화시킨 듯하니, 도기동 산성 및 목책성 일대에서 발견된 고구려 파수부 호(손잡이 달린 항아리), 단경호(짧은 목 항아리), 사발 등의 유물과 백제의 삼족토기(세 발 달린 토기), 고배(굽다리접시), 시루 등의 유물이 이상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한다.
이 유물들은 백제가 만든 도기동 산성 및 목책성을 고구려가 빼앗아 장기간 남진 기지로 삼았음을 말해주는 것인데, 이후 삼근왕(재위 477~479년)과 동성왕(재위 479~501년)까지 이 국경선이 유지되다 무령왕(재위 501~523년) 때에 고토가 회복되어 백제가 갱위강국(更爲强國, 다시 강국이 됨)으로서 부활했음은 앞서 '갱위강국 - 한강유역을 수복한 백제 무령왕'에서 살펴본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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