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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톤헨지와 그리니치 천문대
    거꾸로 읽는 천문학개론 2018. 5. 26. 08:00


    1. 스톤헨지


    영국의 스톤헨지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석(巨石) 유물일 것이다. 런던 서쪽 약 130km 지점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이 환상열석유적(環狀列石遺跡)은 누구든 보는 이를 압도한다. 스톤헨지 유적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높이 4미터, 무게 25~30톤의 거대한 돌들을 언제, 누가, 왜 이 허허벌판에 세웠는가를 궁금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더욱이 그 주변에는 돌을 채석할 만한 곳도 없다) 


    이 거석 유물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한 첫 조사는 17세기 초 영국왕 제임스 1세 때 이루어졌는데, 칙령을 받은 건축가 조운즈는 스톤헨지를 고대 로마인이 건설했다고 보고했다. 물론 그것은 옳은 판단이 아니었지만 딴은 이해도 갈 일이었다. 로마제국이 브리튼 섬을 점령하기 이전에 살았던 고대 켈트인이나 훗날 게르마니아 앙겔로와 작센에서 이주한 야만인들(훗날 이들이 영국인의 본류인 앵글로 색슨족이 된다)이 세웠다고 보기에는 너무 훌륭한 건축물이기 때문이었다. 






    1655년 영국의 존 오브리는 드루이드(기원전 14~13세기의 켈트족의 승려)가 만든 신전이라고 주장했는데, 처음에는 그 또한 일리가 있어 보였다. 스톤헨지는 누구 봐도 외형상 신전에 가까웠고, 시대 또한 그만큼 오래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 플린더스 피트리(1853~1942)는 이곳을 세세히 조사한 후 (AD) 730년 색슨족이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55년 에이브버리 박물관의 로스 클릴 박사 팀이 주장한 스톤헨지의 건립연대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었으니, 무려 기원전 3300년에 처음 건설이 시작됐고, 그로부터 세 단계에 걸친 작업 끝에 완공됐다고 결론지었다.(이것이 아직까지는 정설이다) 다만 그 용도는 여전히 각양각설인데,(신전, 제단, 무덤, 납골당 등) 흥미로운 것은 조셉 노먼 로키어(1836~1920)에 의해 주장된 천문대 설이었다. 1869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잡지 '네이처'를 창간한 바로 그 인물이었다. 





    1894년 '천문학의 여명기'란 논문을 통해 주장한 로키어의 학설에 따르면 스톤헨지는 무덤이나 제단이 아니라 세시(歲時)관측용 천문시설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 증거로서 스톤헨지의 구조가 절기상 중요 시기의 일출이나 일몰, 그리고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한 선을 기초로 해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아직도 스톤헨지는 그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거석 유물이지만 아래의 사진은 그것이 천문 관측과 무관치 않은 장소였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하지의 태양 첫 광선은 스톤헨지의 중심선과 정확히 일직선을 이룬다. 




    2. 그리니치 천문대


    영국의 고대에 스톤헨지가 있었다면 근세에 들어서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은 유명한 천문대인데, 그것이 유명해진 데는 천체관측보다 '본초자오선', 즉 지구 경도점의 중심이라는 것 때문이리라. 그 경도점은 세계의 시각을 정하는 더없이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는 바, 그리니치 천문대의 위상은 그만한 대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영국 런던 교외의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 

    그리니치 천문대는 빛 공해 등으로 인해 1948년 서식스로, 1990년 다시 캠브리지 대학 천문연구소로 이전됐다.  



    잘 알다시피 세계 시간의 표준은 그리니치 표준시, 이른바 GMT이다. 지금은 명칭이 바뀌어 협정세계시(協定世界時)라는 말을 쓰게 되었지만,(1972년 1월 1일부터) 그리니치 표준시라는 말은 여전히 입과 귀에 익숙하다. 이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0°)으로 하여 오른쪽 180°까지가 동경, 왼쪽 180°까지가 서경으로, 우리나라는 동경 126°와 130º 사이에 위치하고 있지만 일본의 표준시인 동경 135°를 써왔다. 따라서 협정세계시보다 9시간이 빠르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것이 우리나라와 30분의 시간차가 나던 북한의 시계를 본래대로 되돌리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표였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며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기존의 동경 135°를 버리고 한반도의 중앙을 관통하는 127° 30'을 기준으로 하는 시각을 정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잘 된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평양 시간과 서울의 시간은 같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 표준시가 없었을 당시, 경도의 설정은 정말로 중요한 문제였다. 배를 타고 멀리 나갈 경우, 바다의 지도인 해도(海圖)를 읽어야 하는데, 위도와 경도로써 표시되는 이 해도에서 있어 위도는 적도를 중심으로 0°가 되어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경도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기준점을 마련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으니, 이로 인해 길을 잃어 난파하는 배도 허다했다. 그야말로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에 1884년 각국의 대표들이 미국의 워싱톤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가는 가상의 세로 선을 설정해 이를 기준으로 정한 후(본초자오선) 그로부터 지구에 24개의 세로 선을 그은 경도선을 만들었다. 지리상의 분류에서 우리나라가 극동(Far East)이 된 것도 바로 그 이유였으니 그 기준선으로부터 동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제국주의의 논리가 적용된 셈이었다. 


    또한 이 본초자오선은 세계의 표준 시각이 되기도 했다.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각 나라마다 해가 뜨고 지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자오선으로부터 동쪽으로 세로선 하나씩을 건너가면 한 시간씩 빨라지고, 서쪽으로 세로선 하나씩을 건너가면 한 시간씩 느려지게 되는 기준이 마련되게 된 것이었다.(다만 지구가 둥근 까닭에 적도에서 극지방으로 갈수록 경도 15도에 해당하는 거리와 시간이 짧아지게 된다) 


     위도와 경도


    그런데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는 어떻게 세계의 경도점과 GMT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물론 1884년 미국의 워싱톤에서 열린 국제경도대회에서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것도 있지만, 그들이 당시 가지고 있던 'H1 시계'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였기에 자국의 천문대를 지나는 선을 본초자오선으로 하자는 데 설득력이 실릴 수 있었다. 세계 표준시가 되면 자신이 중심이니 정말로 세상 편하다. 가령 한국이 지금 몇 시니까 뉴욕은 몇 시겠구나 하는 복잡한 계산 등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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