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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穎漁) 김병국의 지인지감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8. 15. 22:39

     

     

    앞서 '사영 김병기의 묘는 명당이었을까?'에서 조선말 안동김씨 세도정치 가운데서도 천하의 권력을 다툰 김병국, 김병학, 김병기, 삼경 (三卿) 중 사영(思穎) 김병기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늘은 김병국(金炳國, 1825~1905)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김병국의 본관은 안동, 자(字)는 경용(景用), 호는 영어(穎漁)이다. 이조판서 김수근(金洙根)의 아들이며 김병학의 동생이다. 1850년 문과 급제 이후 1853년 대사성에 특진되었고, 1857년에는 예조판서, 1858년에는 병조판서와 호조판서를 맡았으며, 1860년에는 훈련대장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것은 1864년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꺾였으나 김병국은 오히려 승승장구했다는 점이다. 

     

    흥선대원군이 천하 권력을 쥐었을 때 광주유수로 좌천된 사영 김병기가 흥선이 게워놓은 국수가락까지 집어먹었다는 얘기를 앞서 했다. 그는 그만큼 살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인데,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1864년 김병국은 의외로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65년 대원군이 숙원사업으로서 경복궁을 중건하자 판중추부사로 영건도감제조(營建都監提調)가 되어 중건을 감독하는 중책을 맡았으며, 대원군의 실각 후에도 계속 집권하여 우의정으로서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1802년 미국과 수교했다.

     

     

    흥선대원군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경복궁 중건
    경회루도 당시 중건됐다.
    겸재 정선의 <경복궁> / 18세기 폐허로 남은 경복궁을 그렸다. 그가 살던 옥인동에서 바라본 광경으로 왼쪽으로 경회루 연못과 기둥들이 보인다. 가운데 ㄱ자 집은 경복궁 터를 관리하던 궁감(宮監) 건물로 여겨진다.

     

    이를 볼 때 김병국은 한마디로 정치감각을 지닌 인물인 듯하다. 아울러 지인지감(知人之鑑, 사람을 보는 안목)이 빼어났던 듯하니, 이를 잘 알게 해주는 것이 흥선군 이하응과의 일화다. 앞서 말했듯 흥선군 이하응은 종친이긴 해도 왕실의 본류와는 20촌 이상 벗어나 있는, 말하자면 무늬만 왕족인 사람이었다. 까닭에 젊었을 때부터 먹고살기 위해 이것저것을 해야 했는데, 그중에는 사복시(司僕寺) 일도 있었다.  

     

    사복시는 왕이 타는 말, 수레 및 마구와 목축에 관한 일을 맡던 관청으로 지금의 종로구청과 이마빌딩 자리에 었었다. 이곳은 원래 국초(國初)의 재상 정도전이 백자천손(百子千孫)의 명당, 즉 백 명의 아들과 천 명의 손자를 볼 수 있는 명당으로 꼽아 자신의 집을 지었으나 정안군 이방원과의 권력 싸움에서 패한 후 이방원에 의해 말 키우는 장소로 전락하였다. 이하응은 사복시 제조의 감투를 지녔으나 실직(實職)이 아닌 명예직이라 늘 돈이 궁했다.

     

     

    사복시가 있던 종로구청 앞 거리 / 오른쪽 종로구청과 이마빌딩도 사복시 자리이다.
    종로구청 뒤 이마빌딩 이름에서 사복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마(利馬)는 '말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로서 본래 중국 주나라 목왕의 팔준마 중 하나인 녹이(綠耳)를 뜻했으나 풀이가 어려워 '이로울 이' 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종로구청 앞 사복시 터 표석

     

    하루는 김병국 대감의 집에 사복시 제조 이하응이 놀러 왔다. 말로는 새해라서 인사차 들렀다고 했지만 별 말 없이 앉아만 있다 돌아갔다. 김병국은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잠시 이하응을 멈춰 세운 후 청지기 박도원을 불러 약채전(藥債錢)이 얼마나 들어왔는가를 물었다. 약채전은 '빚진 약값'이란 뜻으로서, 각지 수령들이 권문세가에게 새해에 보내는 돈을 말함이었다. 박도원은 정확히 계산 안 해봤으나 수만 냥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김병국은 곧바로 1만냥의 어음을 써오게 했다. 

     

     

    당대의 어음 / 이 음표를 제시하는자에게 즉시 600냥을 출급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남양주 실학박물관)

     

    "이거면 되겠소?"

     

    김병국이 이하응에게 어음을 내밀며 물었다. 그러한 그의 표정이 진심이었던 바, 거들먹거리거나 상대를 무시하려는 기색일랑 전혀 묻어있지 않았다. 이하응은 고개를 끄덕인 후 어음을 받아 쥐었다. 그리고는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와 부인 민씨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후 곁다리 왕족 이하응의  곤궁한 처지를 알게 된 김병국은 정초에는 꼭 일정액의 돈을 보냈고, 가끔씩 일 없이 놀러와 이하응의 아들 명복에게 50냥, 혹은 100냥이라는 적잖은 돈을 용돈으로 주고 돌아갔다. 생활비에 보태라는 뜻이었다. 

     

     

    운현궁 노안당 / 흥선군 이하응의 집은 훗날 명복이 왕이 되며 왕의 잠저로서 궁(宮)의 명칭이 붙었다.

     

    김병국이 흥선대원군 실각한 후에도 중용되어 삼정승의 반열까지 이른 것도 이와 같은 음덕 때문일 터였다. 앞서 말한 <육도삼략(六韜三略)>은 기본적으로는 태공망 여상(呂尙, 흔히 강태공이라고 부른 인물)이 희발(주나라 무왕이 왕이 되기 전 불린 이름)에게 가르침을 준 병법서이지만, 병법 외에도 이러저러한 것에 대해 희발이 묻고 여상이 대답한 내용을 엮은 대화체 형식의 책으로, 본래 <육도>와 <삼략>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후세 사람들이 합본했다.

     

    그 <육도>의 '선장편'(選將篇)에서 여상은 희발에게 '사(士)의 고저(高低)'를 아는 15가지 유형을 설명했다. 여기서 여상이 말한 저급한 선비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겉은 현명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은 자

    2. 겉은 엄격하면서 속은 흐트러진 자

    3. 겉은 선량하지만 속은 도둑놈인 자

    4. 겉은 겸손하지만 속은 교만한 자

    5. 겉은 절제하지만 속은 무절제한 자

    6. 겉은 치밀하지만 속은 어설픈 자

    7. 겉은 중후하지만 속은 경박한 자

    8. 겉은 과감하지만 속은 주저하는 자

    9. 겉은 용감하지만 사실은 비겁한 자

    10. 겉은 관대하지만 속은 옹졸한 자

    11. 겉은 믿음직하지만 사실은 쓸모가 없는 자

     

    여상은 이러한 자는 반드시 는 버려야 한다고 했다. 탄핵된 윤석열 대통령이 믿고 선택했던 어떤 자가 생각나는 이미지다.  반면 다음과 같은 자는 고결한 자이니 가까이 해야 한다고 했는데, 김병국은 흥선군 이하응을 이렇게 본 듯했다. 

     

    12. 겉은 중구난방이지만 속은 충실한 자

    13. 겉은 파격적 성격이라 남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일을 맡기면 뜻밖의 결과를 얻는 자

    14. 엄격하고 냉혹하게 보이지만 속은 고요하고 성실한 자

    15. 허약하고 볼품이 없지만 일을 맡기면 반드시 이루어내는 자.

     

     

    <육도삼략> / 육도(六韜)의 '도'는 문자 그대로 감추는 기술이다. 병법이란 기본적으로 적을 속이는 데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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