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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만이 살길이라고 외친 박제가와 그 길을 막는 위정자들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9. 26. 18:48
지난 9월 4일 실학자 박제가(1750~1805년)의 저서 <북학의>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북학의>는 박제가가 1778년 청의 북경을 다녀온 후, 국가 제도와 정책 등 사회와 경제의 전 분야에 대한 실천법을 제시한 지침서다. 내외편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내편은 각종 기물과 장비에 대한 개혁법을, 외편은 제도와 정책에 대한 개혁안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박제가 고본 북학의>는 작성 시기가 초기본에 가장 가깝고, 박제가의 친필 고본(稿本, 저자가 친필로 쓴 원고로 만든 책)이라는 점이 분명하여 가치가 탁월하다. 다른 사람이 옮겨 베껴 쓰는 필사본의 저본(底本, 옮겨 적을 때 근본으로 삼는 책)이 되어 자료적 가치가 있고, 첨지(籤紙, 책에 무엇인가를 표시하거나 적기 위해 붙이는 종이)의 주석과 본문의 첨삭 내용을 통해 내용이 수정·보완·편집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지사적 가치도 크다.
그리고 이 책에는 박지원(1737~1805년)의 친필 서문(序文, 책 소개글)이 함께 남아 있는데, 두 역사적 인물이 직접 쓴 글씨가 함께 남아 있는 매우 희소한 사례라는 점,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서로 당대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점도 가치를 높인다. (이상 국가유산청 보도자료) 박지원이 붙인 서문에 대해서는 '박제가의 북학의와 그가 구상한 가난구제책'에서 간단히 소개한 바 있다.

고본 <북학의(北學議)> 
박지원의 서문 박제가는 1778년(정조 2년) 3월, 29살의 나이에 이덕무와 함께 채제공을 수행해 청나라 사신 길에 나섰다. 이후 박제가는 1801년까지 청나라를 네 번이나 다녀오는데, 그의 청나라 사행(使行)은 벌족(閥族)이었던 홍대용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미 청나라에 다녀온 바 있는 홍대용은 뜻있는 젊은이가 선진문물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여 채제공의 연행사(燕行使) 속에 박제가를 우겨 넣었다.

<연행기(燕行紀)> / 1790년 연행사로 파견된 서호수의 연행기록이다. 이때는 박제가와 유득공이 동행했다. 그 첫 사행에서 박제가는 그저 오랑캐의 나라라고만 여겼던 청나라의 발달한 문화와 물질적 풍요를 목도하고 무척이나 놀랐다. 그리하여 귀국 후 필생의 대작인 <북학의>를 저술하게 되는데, 그는 당시 청나라 백성들의 부유함, 그리고 그에 비해 한낱 거지 같았던 조선 백성의 삶을 다음과 같이 은유했다.
"꽃에서 자란 벌레는 그 날개나 더듬이조차도 향기가 나지만 똥구덩이에서 자란 벌레는 구물거리며 더러운 것이 많은 법이다. 사물도 본래가 이러하거니와 사람이야 당연히 그러하다. 빛나고 화려한 여건에서 성장한 사람은 먼지 구덕의 누추한 처지에서 헤어나지 못한 자들과는 반드시 다른 점이 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나라 백성의 더듬이와 날개에서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박제가의 스승이었던 박지원은 <북학의>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어 박제가를 거들었다
"우리 조선의 선비들은 세상 한 모퉁이 구석진 땅에서 편협한 기풍을 지닌 채 살고 있다. 발로는 청나라 땅을 단 한 차례도 밟아보지 못했고, 눈으로는 청나라 사람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조선 땅을 벗어나 본 적도 없다. 긴 다리의 학과 검은 깃털을 가진 까마귀가 제각각 자신이 타고난 직분을 지키며 사는 꼴이고, 우물 안 개구리와 작은 나뭇가지 위의 뱁새가 자신이 사는 곳이 최고라고 자랑하며 사는 꼴이다."

실학박물관에 전시된 <연행도> 제13폭의 '유리창(琉璃廠)' 그림 / 북경 번화가 유리창 거리를 그린 그림이다. 사람들이 거의가 수레나 말을 타고 이동하며 낙타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21세기의 유리창 거리 / 과거 이 거리에서 조선 사신들은 서구에서 유래된 선진사고의 책을 쓸어담았다. 정조가 주자학 외의 모든 서적에 대한 수입을 금지시킨 1786년 전까지의 일이다. 
위에서 본 유리창 거리 
수원 화성 / 정조는 서양 선진기술을 도입해 화성을 조영했으나 정작 백성을 이롭게 만드는 실사구시의 학문은 도외시했다. 화성 축조는 국가 재정을 심각하게 축냈고 이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박제가는 자신이 보고 들은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들여와 조선의 백성도 부유하게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저술한 책이 <북학의>로 그는 이 책에는 청나라의 수레, 기와, 벽돌, 수차, 화폐, 종이, 의복, 문화예술 등을 적극적으로 배워 나라를 부강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외국과의 통상을 주장하였는데 특히 해로무역의 육성을 강조하였다. 우선 표류해 온 중국 배가 있으면 모방하여 배 만드는 법을 배우고, 중국으로부터 기술자를 초빙해 큰 배를 만들어 외국과 무역하자고 했다.오늘날 백성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곤궁해지고,
나라의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사대부라는 사람들은
팔짱만 낀 채 바라보고 있을 뿐,
나라와 백성을 구제하려 들지 않는다.
저들은 언제까지 과거의 인습과 풍속에 갇힌 채
편안한 생활을 누리며 현실을 외면할 것인가?
<북학의> '자서(自序)' 중에서
<북학의> '강남 절강 상선과 통상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 중에는 또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한 이래로 거의 4백 년이 지났는데 여태껏 다른 나라와는 배 한 척 왕래한 적이 없다. 이에 어린아이가 낯선 사람을 보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다가 입을 삐죽거리며 울음을 터뜨린다. 원래 본성이 그래서가 아니라 세상에 관해 보고들은 것이 적다 보니 의심이 많아서 생겨난 일에 불과하다. 이렇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쉽게 두려워하고 의심을 잘한다. 풍속과 기상이 우둔하고, 재주와 식견이 확 트이지 못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오로지 다른 나라와의 통상이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풍속이다."
박제가는 무역만이 조선이 살 길이라고 했다. 조선은 작고 가난해서 국내 산업만으로는 부국을 이루기가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외국과 무역을 해야 하는데 마침 삼면이 바다이니 해로(海路) 무역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는 해로 수송이 육로보다 10배 이상 편리하고, 백 수레에 싣는 양이 배 한 척에 싣는 것에 미치지 못하며, 육로로 천리를 가는 것보다도 뱃길로 만리를 가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가 가지 않아도 그들이 스스로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의 기술과 문물을 배우고 풍속을 물어 나라 사람들이 견문을 넓히고 세상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또한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은 세상을 개화하기 위한 밑바탕이 될 것이므로,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청나라는 오랑캐'라는 거대한 이념의 장벽에 막혀 도대체 먹혀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비난을 받았다. 박제가는 이르기를, 자신이 청나라 사람들의 부(富)와 편리한 생활을 제대로 전달하면 언짢아하고, 반대로 '만주사람이 말을 하면 개짖는 소리 같고, 음식은 고약하며, 뱀을 시루에 쪄 먹고, 황제의 누이동생은 역졸과 간통한다' 등의 말을 하면 귀 기울여 들으며 좋아한다고 했다.이는 작금의 대한민국과 흡사하다. 무역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나라거늘 위정자들은 최대 무역국인 미국에 대해 헐뜯고 비난하기 바쁘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의 무역 협정안이 마음에 들지않는다며, 또 쌩으로 갇다바쳐야 될 3500억 불이 아깝다며 무역 협정안에 사인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아마도 그는 처음에 어느 정도의 돈을 주고 나머지는 외상으로 하려 했던 모양이었다. 국내 외환보유고가 총 4천억 불에 불과하니 3500억 불을 주고 나면 그의 말대로 IMF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금액을 낮춰 접근해야 했다는 것이 대부분의 경제전문가와 통상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괜히 일본을 따라 하지 말고 1000억 불이나 1500억 불에서 투자 협정을 맺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이 그들 대다수의 의견이었지만, (전 정권에서도 국내 사정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최대 1500억불 선을 지키려 했다고 한다) 이재명 정부는 좌파 정권에 대한 미국의 인정 및 좌파 정권의 생명줄과도 같은 쌀시장·쇠고기시장의 개방을 막으려 높은 투자금액을 제시했다가 제 발등을 찍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간절히 원하는 반중 노선 구축 같은 것은 외면한 채, 오히려 미국비자와 통화 스와프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미국 내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협박 같은 소리나 해대고 있으니 (국무총리 김민석은 자신이 뱉은 이 말의 파장이 커지자 급히 해명에 나선 상태다) 점점 협상은 어려워만 가고 있다. 이도 저도 답이 없는 이재명 정부는 결국 미국에 모든 원인을 돌리며 반미 선동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김민석의 형 김민웅은 이미 시작했다) 향후 닥칠 국민들의 어려움은 과거 IMF의 상황을 초월할 듯하다.
자꾸만 이재명의 말이 바뀌자 트럼프는 오늘, 약속한 3500억을 선불(an upfront)로 내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렇지 않으면 관세 25%를 물라는 것이다. 하지만 관세 25%면 우리나라의 미국 수출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의 제네시스가 독일의 벤츠보다 비싼데 누가 한국 차를 사겠는가? 그럼에도 배부른 강남 좌파들은 향후 어려워질 대한민국의 경제와 서민들의 삶은 외면한 채 정권 지키기에만 몰두하고, 더 나아가 연임까지 획책하고 있다.
양심도 상실하였으니, 헌재소장과 장관을 포함한 이재명 정부의 핵심 인사 11명은 강남3구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국민들은 임대아파트를 선호한다고 말하며 입주를 유도하고 있다. 그렇게 좋으면 자신들이나 임대아파트에 살 것이지 국민의 상위 1%만이 살 수 있는 그곳에 11명이나 들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뜻 좌파들이 청빈하다고 생각되지만 그 역시 좌파들이 만든 프레임에 불과하다) 그나저나 빨리 관세를 내려 기업들이 무역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다.

SNS에서 빌려온 이미지 
강남 좌파의 세계 / 하지만 이런 곳은 바라지도 않음. 그저 먹고 살게나 해 줘.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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