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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차산 시루봉 고구려 보루
    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5. 12. 20. 07:39

     
    고구려의 남진 기지인 한강 보루는 아차산을 중심으로 홍련봉, 용마산, 배봉산, 시루봉, 망우산 등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지금은 남한의 고구려 유적으로써 귀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사실 이 보루들은 존재 자체도 모르다가 지난 1989년 서울 구의동에서 건축업을 하던 김민수씨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계기도 매우 우연적이었으니 아차산과 가까운 광진구 구의동에서 살며 민방위대원 자격으로 산불을 끄러 아차산에 올랐던 그는 화마가 지나간 폐허 속에 모습을 드러낸 옛 성벽을 발견했다. 가히 유레카와 같은 발견이었다. 
     
    이후 생업마저 팽개치고 아차산과 그 일대의 유적과 유물들을 찾아나선 그는 자신의 발품과 연구의 결과를 <한강유역에서의 삼국사의 제문제>라는 논문에 담았고, 그것이 전국 향토사자료 연구논문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그간의 노고와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게 된다. 아울러 그의 논문은 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1994년 서울시의 아차산 지표조사가 이루어졌고, 1999~2000년 2년에 걸쳐 서울대박물관이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에 연계돼 홍련봉, 용마산, 봉화산, 배봉산, 시루봉, 망우산 등에 분포된 삼국의 흔적이 조사되었다. 
     
     

    아차산 4보루 / 2020년 정비가 막 끝났을 때의 사진이다.
    서울 구의동과 아차산성 출토 고구려 토기 / 국립중앙박물관
    1997년 고려대 최종택 교수가 아차산 4보루에서 발견한 '後部都○兄' 명문 토기
    아차산과 그 일대의 보루군


    오늘 말하려는 고구려 보루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7-2번지, 서울시와 구리시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205.8m 시루봉 정상에 위치한 시루봉 보루이다. 시루봉은 그 모양새가 떡이나 쌀 따위를 찌는 데 쓰는 둥근 질그릇인 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새와 같다 하여 그렇게 불리는데, 우연찮게도 시루봉 보루에서 출토된 고구려 군 토기 중 시루가 2점 포함돼 있어 화제를 모았다.
     
    보루(堡壘)는 '돌이나 목책 등을 이용하여 튼튼하게 구축한 방어시설물'을 뜻하는 말로서, 지금도 '반드시 지켜할 장소나 대상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예컨데,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려는 이재명 정부의 무차별적 공격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식의 표현인데, 아닌 게 아니라, 적의 대규모 공격에 처한 함락 직전의 요새를 보는 듯 불안 불안하다.  

     
     

    시루봉 가는 길
    시루봉 정상 고압 철탑 아래의 고구려 보루 / 아차산 4보루에 이어 두 번째로 복원된 고구려 보루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2012년 6월 14일에 복원을 완료했다.
    복원 전 사진
    시루봉에서 출토된 시루
    구의동 보루에서 출토된 시루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 속의 시루 걸린 부뚜막

     
    시루봉 보루는 한강을 낀 서울 강남지역과 왕숙천을 낀 구리시 토평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입지에 건설된 보루로서,  둘레 246m, 내부 면적 1,840㎡의 비교적 큰 보루이며, 남북으로 길게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시루봉 보루는 천혜의 입지 위에 화강암을 이용해 3~4m 높이로 석축한 요새로서, 고구려 성벽의 특징인 돌출된 치(雉)가 4개나 설치돼 있어 방비에 만전을 기한 요새임을 알 수 있다.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 17개소는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4년에 국가사적 제455호로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시루봉 보루는 아차산 4보루와 더불어 고구려 보루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서, 고구려 남진 거점인 아차산 보루가 어떻게 만들어져 운영됐는지를 볼 수 있다. 특히 성벽에 성에 다가서거나 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여러 쪽에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든 치(雉)에 대해 살피기 최적이다. 

     

    내부에는, 땅을 판 후 바닥과 벽에 개흙을 발라 방수처리한 집수시설, 창고 외에는 모두 구들을 놓아 온돌을 설치한 주거시설, 빗물들을 처리하는 배수시설 등이 갖춰져 있었으나 배수시설 외에는 발굴 후 도포했다. 발굴시 100점가량의 철제 무기·공구류와 22종의 토기편 300여 점이 발굴되었는데, 고구려가 남진을 시작한 465년경 축조되어 백제와 신라의 나당 동맹군 공격을 받아 북으로 후퇴한 551년까지 약 76년간 사용된 진지로 추정하고 있다. 주둔군의 수는 평균 100명을 유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3치에서 본 망우산
    제3치(오른쪽)과 보루
    밖에서 본 제3치와 제4치
    제4치에서 보이는 한강
    제4치 쪽에서 바라본 망우산
    밖에서 본 제4치
    제1치에서 본 한강과 강남
    제1치
    제1치 쪽에서 본 구리시 방면
    밖에서 본 제1치(오른쪽)와 제4치
    밖에서 본 제4치
    밖에서 본 제2치
    옆에서 본 제2치
    아래에서 본 제2치
    제3치 쪽 사면에서 본 아차산
    보루 옆 배수시설
    보루 밖 배수시설
    온돌 건물과 목책이 있던 곳 / 대형 건물지와 외곽의 소형 건물지 9개가 있었으며 온돌시설이 확인되었다.
    동서 6.3m 남북 9.5m 깊이 3.5m의 저수시설이 있던 곳 / 발굴 후 도포했다.
    시루봉 보루 평면도
    시루봉 보루 단면도
    아차산 보루군 도해
    아차산 고구려 보루군 안내문
    시루봉 보루를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4개의 '치'를 갖춘 작은고구려 성이다.
    아차산 시루봉 발굴보고서
    '치'가 뚜렷한 고구려 백암성 / 백암성은 지금 연주성산성이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바뀌었다. 고구려 성은 만주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다.
    백암성은 요녕성 등탑시에 있다. 백암성은 645년 당태종의 공격시 성주 손대음(孫代音)이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다. 당태종은 백암성 일대를 암주(巖州)로 명명하고 손대음을 암주자사로 삼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암성은 방어성의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지금껏 살아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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