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진구 홍련봉 고구려 보루와 신라 사찰 영화사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5. 12. 25. 21:27
2013년 서울 광진구 홍련봉 고구려 보루 발굴현장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려 철제 깃대가 발견됐다. 나는 당시 이 유물에 많은 관심이 갔는데, 그 이유는 <삼국사기>에 쓰여 있는 다음과 같은 기록 때문이었다.
고구려 군대가 비록 수는 많으나 모두 수를 채운 가짜 병사입니다. 그중 날쌔고 용감한 병사는 오직 붉은 깃발의 군대뿐이니, 만일 그들을 먼저 쳐부수면 그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彼師雖多 皆備數疑兵而已 其驍勇唯赤旗 若先破之 其餘不攻自潰)
이 문장은 <삼국사기/백제본기> '근구수왕 편'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369년 음력 9월 백제와 고구려 간의 대전투가 벌어진 치양성(현 황해남도 배천군 치양성)이 배경이다. 이때 고구려 군에서 탈영해 투항한 사기(斯紀)가 근초고왕의 태자인 근수구에게 고구려군의 약점을 알려주는데, 이에 근수구는 그 약점을 이용해 고구려 고국원왕의 2만 군사를 대파하고 5천 명을 사로잡는 대승을 거둔다. 4세기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근초고-근수구왕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5세기 국력을 회복한 고구려는 남진을 하여 거꾸로 백제를 괴롭히는데, 그때도 붉은 깃발 군대가 앞장을 선듯하니 한강 전선까지 내려와 홍련봉 보루를 축조하고 백제와 대치했던 그 붉은 깃발 군대의 흔적이 바로 홍련봉 제2보루 석벽 바닥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아울러 홍련봉 제1보루에서는 아차산 일대 보루군 중 유일하게 와당과 기와가 출토되었던 바, 붉은 깃발 군대가 옹위하는 사령관이 머물렀을 것이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이 깃대에는 붉은 깃발을 매달았을 것으로 짐작되니 아래 고구려 안악고분과 쌍영총 벽화에는 붉은 깃발 부대의 위용이 잘 드러나 있다. 즉 아래 그림 속 붉은 깃발 부대들은 고구려의 최정예병으로서, 이들은 보병마저 특별하게 붉은 깃발과 붉은색 방패로 무장했다.

출토된 붉은 깃발 군대의 흔적 깃대 / 연합뉴스 DB 
깃대와 X선 투시 사진 
고구려 쌍영총 벽화 속의 군기를 든 장수 
고구려 붉은 깃발 부대의 상징 
안장에 연결된 말등 기꽂이도 있었다. 
일본이 가져간 합천 옥전고분 출토 말 깃대 / 도쿄박물관 
안악3호분 대형렬도 속의 붉은 깃발을 든 사람들 / 높이 2m, 길이 10.5m에 달하는 그림이다.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의 안악 3호분 행렬도의 동영상 / 가운데 주인공의 마차 아래 부월수, 중기갑군, 방패를 든 창수(槍手)가 보인다. 
중기갑군 
중기갑군 철갑기병 
붉은 방패를 든 창수 / 붉은 방채를 든 붉은깃발 부대와 더 큰 방패를 든 일반 부대가 구별된다. 말하자면 붉은깃발 부대는 요즘의 특전사 같은 곳이다. 
도끼를 둔 부월수 / 부월수는 갑옷을 입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궁수에 이어 2차로 기갑병, 창수, 환도수(칼을 든 군인)가 어느 정도 적을 부순 다음 3차로 투입되는 군대 같다. 
안악 3호분의 또 다른 부월수 
고구려 대장간 유물전시관의 고구려 부월 / 아차산 보루 출토품이다. 도끼의 종류가 다양하다. 
안악3호분 벽화편 / 국립중앙박물관 
홍련봉보루 발굴 사진 
홍련봉보루 석벽 홍련봉은 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상이 땅콩 모양으로, 해발 125.1m의 남쪽 봉우리와 해발 126.3m의 북쪽 봉우리가 서로 마주 보는 모양새다. 이 두 개의 봉우리에 각각 보루가 만들어졌으며, 남쪽 봉우리에 제1보루가 있고 북쪽 봉우리에 제2보루가 있다. 두 보루 사이는 약 15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두 개의 보루는 2012년 7월부터 10개월 간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제2보루 성벽 외곽에서 폭 1.5~2m 정도의 외황(外湟, 마른 해자) 흔적이 발견됐는데, 국내 고구려 성곽에서 최초로 확인된 해자이다.
출토된 유물도 다양해 제2보루 석벽 밑에서는 위의 철제 깃대가 발견되었고 주변에서 기타 많은 유물이 수습되었다. 이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수장고, 구리시 우미내 고구려대장간마을 전시관 등에 전시·보관되고 있는데, 내년 6월 제2보루 자리에 건립 중인 홍련봉보루 유적전시관이 완공되면 일괄해서 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홍련봉보루에 오르면 한강 이남이 한눈에 펼쳐지며 풍납토성과 몽촌토성도 관측된다. 산 뒤로는 마찬가지의 고구려 보루군이 있는 아차산, 시루봉, 망우산, 용마산이 눈에 들어오며, 산 밑으로는 신라시대 사찰인 영화사(永華寺)가 지척이다.

홍련봉 제1보루 
홍련봉 제2보루 / 홍련봉보루 유적전시관이 건립 중이다. 
홍련봉보루 일대에서 출토된 고구려군의 교구(郊具)와 마구(馬具) / 국립중앙박물관 
홍련봉 제2보루 출토 명문(銘文) 접시 / 국립중앙박물관 
홍련봉 제2보루에서 보이는 아차산과 용마산 
내려본 한강과 천호대교 
내려본 워커힐아파트 / 1978년 서울 세계 사격 선수권 대회의 선수촌으로 지어진 후 일반분양된 명품 아파트다. 56평~77평의 초대형 평수로만 구성되어 있다. 
구리시 우미내 고구려 대장간 마을 
고구려 대장간 마을에 재현된 대장간 
고구려 대장간 마을 유물전시관 당대 최강의 고구려 붉은 깃발부대는 이곳 요새에 주둔하며 겨울을 나았을 것인데, 건물지에서 발견된 온돌 유구를 보면 차가운 강바람 속에서도 견딜만한 겨울을 보냈을 것 같다. 영화사는 삼국의 전쟁이 끝난 672년(신라 문무왕 12) 유명한 의상대사가 화양사(華陽寺)란 이름으로 창건한 화엄사찰이다. 지금은 옛 흔적을 찾아보기 힘드나 입구에 걸린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인상적이다. 오늘이 성탄절이며 세밑인데 경기 탓인지 거리가 썰렁하다. 이렇게 썰렁한 분위기의 성탄절을 평생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영화사 입구의 현수막 
영화사 일주문 
영화사 보호수 느티나무 
설법전 
대웅전 
대웅전 삼존불 / 문수보살 · 석가여래 ·보현보살을 모셨다. 
삼성각 / 산신·칠성·독성을 함께 봉안했다. 
미륵전 미륵불상 / 3.5m의 고려말 불상으로 중곡동 옛 절의 것을 옮겨왔다. '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 탑과 발해 탑 (2) 2026.03.23 남한의 고구려계 탑 묘적사 팔각칠증석탑 (0) 2026.03.22 아차산 시루봉 고구려 보루 (1) 2025.12.20 한성백제의 멸망을 불러온 개로왕의 외교 실패 (0) 2025.09.30 서울 자양동의 고구려 흔적 (5) 202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