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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 탑과 발해 탑
    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6. 3. 23. 14:22

     

    오래전 같은 회사에 있던 조선족으로부터 중국 심양에 고구려 탑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 방문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던 차에 불현듯 생각이 나 사진을 찾아보았다. 찾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의외로 잘 정리된 사이트가 있어 그중 몇 장을 올려본다. 빌려온 사이트는 건축도시연구정보센터 - AURIC(Architecture & Urban Research Information Center)으로서 첨부된 글은 아래와 같다. 

     

    중국 심양의 북쪽, 신성자(新城子) 석불일촌(石佛一村)의 주산(主山)인 칠성산(七星山) 정상에는 고구려의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전탑이 남아 있습니다. 그 마을에는 고구려 우물로 추정되는 유적도 남아 있습니다. 고구려의 탑은 모두 그 터만 남아 있으나 탑의 잔해가 실존하고 있어 고구려 탑 연구는 물론 백제, 신라 등으로 확산된 한국 탑의 계통을 연구하는 데에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리장치가 있었던 심초석 자리가 도굴된 상태이고, 잔존하던 탑을 중국정부에서 자국의 역사로 그 흔적을 지우고 있어 더욱 안타깝습니다. 

     

     

     

    물론 이 탑이 고구려의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발해의 것일 수도 있고, 요나라나 금나라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조선족의 말로는 이곳에 사는 조선족들이나 중국인들은 다 그렇게 믿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구전돼 왔으니 그렇게 믿는 것이고, 그렇게 보자면 유일하게 남은 고구려의 탑임에 분명한 듯하다. 혹시라도 찾아가고자 하는 분이 계실까 덧붙이자면 이 지역의  행정 구역은 과거 신성자구(新城子區)에서 현재의 선베이신구(沈北新区)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우연의 일치처럼 유일하게 남은 발해의 탑인 영광탑(靈光塔)도 전탑(塼塔)이다. 위 고구려 탑처럼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탑으로서, 5층에 높이 약 13m에 달하는 적지 않은 규모이나 전체적인 구조나 높이는 고구려 탑이 훨씬 아름답고 높았을 듯하다. 장소는 길림성(지린성) 장백조선족자치현에 위치한다. 본래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며 1908년 청나라 관리 장봉대가 공자 사당의 영광전(靈光殿)처럼 홀로 우뚝 남아 있는 모습에 감탄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비교적 오래된 영광탑 사진
    최근의 영광탑 사진
    영광탑 설경 / 지린성 문화관광부 사진

     

    8~10세기경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광탑은 지하 묘실(무덤)이 있는 묘탑(墓塔)의 형식을 띠고 있다. 즉 이 탑은 1980년 발견된 발해 3대 문왕의 넷째 딸 정효공주(貞孝公主, 757~792)의 무덤과 같은 형식인 것이다. 정효공주 무덤은 1980년 길림성 화룡현(和龍縣) 용두산(龍頭山)에서 발견되며 발해 문화의 정수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유적이다. 이곳은  문화대혁명 당시 이곳에 하방(下放)됐던 홍위병이 소꼴을 먹이다가 우연히 전탑의 기단부를  발견하였고, 이어 연변박물관이 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밑에 위치한 무덤을 발굴하게 되었다.

     

     

    정효공주의 지하 무덤방 / 전축분에 회를 바른 형식으로 무덤 안길과 무덤방 벽면에서 악사, 시종, 무사 등 12명의 인물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었다. 앞에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가운데는 관을 놓았던 대석이 솟아 있다.
    무덤 위의 묘탑(상상도) /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무덤 내부 구조 / 우리역사넷
    안쪽 벽화 / 양 옆으로 악사, 시종, 무사 등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무덤 방 인물 벽화
    입구의 묘지명 / 앞면에 해서체로 18행 728자가 새겨져 있다.
    정효공주묘 표석

     

    정효공주 묘에서는 1949년 깨진 채로 발견된 문왕의 둘째 딸 정혜옹주의 묘지명(墓誌銘)과 달리 높이 105cm, 너비 58cm, 두께 26cm의 묘지명이 완벽한 형태로 발견되어 자료가 부족한 발해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정효공주 묘는 1992년 수교 직후에는 일반 개방되었으나 이후로는 큰 보호각이 지어지고 관람이 차단되어 접근조차 할 수 없다. 다만 묘지명만이 연변조선족자치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내용은 완전 판독되어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다.

     

    묘지명에 문왕은 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라는 존호로 쓰여 있다. 즉 대흥(大興)과 보력(寶曆)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며 전륜성왕(轉輪聖王)과 같은 강력한 통치자로서 사천하(전 세계)를 통치한 금륜왕(金輪王)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皇上(황상)이라는 단어도 발견되어 황제국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묘지명에 따르면 정효공주는 대흥(大興) 56년(792년) 여름 6월 9일 36세로 사망하였고 그해 겨울 11월 28일 염곡의 서쪽 언덕에 장사지냈다. 

     

     

    중국에 세워진 정혜옹주 묘지명 복제비 / 우리나라에도 이 같은 복제비가 세워졌으면 좋겠다. 발해는 엄연한 우리 역사이기에.... (아틀라스 뉴스 사진)
    중국이 복원한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黑龙江省 牡丹江市 宁安市)의 발해 수도 상경용천부 유적
    성문지 유적
    상경용천부 유지 표석
    상경용천부 내 발해의 석등
    복원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성 / 발해의 5경 중 하나로, 발해 역사에서 행정과 대외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중요한 지역이다. 중국 지린성(길림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훈춘시 일대 유적으로, 중국은 2002~2006년 동안 진행된 발굴과 복원에 있어 옌볜대 사학과 등에 수십 년간 발해사를 전공한 저명한 조선족 사학자가 상당수 있었음에도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사학자는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가까이서 본 발해 석등 / 신라와 당나라에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장중한 미(美)가 있다.
    헤이룽장성 발해 상경유적박물관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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