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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오 구청장에 120년 앞서 멕시코에 왔던 한국 사람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4. 6. 18:11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이 재임시절 멕시코 휴양지 칸쿤에 왜 갔는가, 그리고 여직원과 동행했던 칸쿤 2박3일의 일정이 과연 공무였는가 하는 문제가 뜨겁다. 유튜브에서 민주당 측의 한 여성 패널은 "정원오가 여성 공무원과 함께 출장을 간 것이 왜 문제인가? 생각이 저급하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공문서 위조라는 의심까지 받을 수 있는 성별(性別) 바꿔치기는 왜 했을까? 도덕적 문제는 처벌을 받지 않지만 공문서 위조는 제법 큰 죄가 아니던가?
그래서 어제 도서관에서 김영하 작가의 소설 <검은 꽃>(문학동네)을 빌려왔다. 김영하은 워낙에 입심과 서사가 좋아 재미 있지 않은 소설이 드문데 이 소설은 매우 슬프게 읽었다. 그것이 꼭 10년 전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검은 꽃>은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팔려간 최초 조선인들의 희망과 좌절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한국과 멕시코와의 인연은 1905년 4월 4일, 영국 기선 일포드 호가 조선인 1033명을 싣고 제물포항을 출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일포드 호 안에는 조선인 승객을 인도할 외교관은 물론 멕시코 교민 한 명조차도 없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가슴 아팠던 것은 당시 대한제국과 멕시코가 미수교국이었던 까닭에 그들 1세대 이민자들이 대놓고 버려진 몸이나 다름없던 신세였다는 것이다. 소설은 잠깐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영국 영사관'이라는 작은 목간판이 걸려 있는 곳에서 한 서양인이 나와 제물포항 부두로 내려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사내가 바로 모집인 존 마이어스(Jhon G. Myers)다.

1884년 11월에 찍은 제물포항 / 오른쪽 언덕 위의 건물이 영국영사관이다. 
1904년 프랑스 신문에 실린 제물포항과 월미도 사진 
옛 영국영사관 자리에서 바라본 제물포항과 월미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멕시코 이민선 일포드 호
우리나라가 대한제국 시절인 1900년대 초 <황성신문>에는 하와이 및 멕시코 이민을 모집하는 광고가 실렸다. 특히 1904년 8월 한국에 들어온 네덜란드계 영국인 중개인 마이어스는 전국의 주요 항구 도시에 이민모집사무소를 열고, <황성신문>에 '북미 묵서가국(멕시코) 농부 모집' 광고를 대대적으로 냈다. 내용은 "생활비가 저렴하고 임금이 높다"는 식의 과대광고였지만 당시 더 나은 삶을 꿈꾸던 많은 한국인들이 이에 현혹되었다.
1904년 황성신문에 실린 해외 농부모집광고 당시 멕시코라는 나라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소설 속 이연수라는 여자 아이의 생각에서 잘 드러난다.
묵서가(墨西哥, 멕시코)라는 나라는 몰랐지만 미국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미국의 이웃이라면 그곳도 어느 정도는 발전된 문명이 아니겠는가. 여자도 남자처럼 배우고 일하고 제 의견을 펼치는 곳일 테고, 무엇보다 여기서와 같이 황족이라는, 허울만 그렇듯한 굴레에 사람을 묶어두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곳은 개명(開明)한 곳이 아닌가.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그녀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집을 버리고 조상의 위패를 짊어지고 제물포로 떠났다.
그들 1033명의 이민자는 양반 상놈 구별 없이 모두 화물칸에 타 좁은 영역을 차지했다. 여객선이 아닌 화물선이기에 애초부터 여객을 위한 시설이 전무한 배 안에서 그들은 뱃멀미에 시달렸고, 배의 요동침에 요강이 엎어지거나 깨지면서 그 안에 담겨 있던 토사물과 오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욕설과 한탄, 비난과 주먹다짐이 일상사였고 고약한 냄새들은 가시지 않았다. 빨래나 목욕 같은 사치스러운 일은 아무도 꿈꾸지 않았다. 그저 배가 빨리 도착하여 단단한 땅에 서는 것만이 승객들의 소망이었다.
1905년 5월 15일, 한 달 열흘 간의 긴 항해 끝에 배가 드디어 멕시코에 도착했다. 이들이 닿은 항구는 태평양에 면한 남부 항구 살리나크루스였다. 이들은 파나마운하의 개통으로 곧 쓸쓸한 시골 항구로 전락하게 될 살리나크루스에서 기차를 타고 멕시코 반도를 가로질러 코아트사코알코스 항구로 왔고, 거기서 배를 타고 유카탄 반도의 관문인 프로그레소 항으로 이동했으며, 다시 기차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메리다에 이르렀다. 유카탄주의 주도(州都)로서, 정원오 구청장과 그 일행이 공무로써 2박3일 머문 곳이기도 하다.

멕시코 코리안 루트 주요 지명 아마도 여기까지가 그들 한국인이 꿈 꾼 마지막 재부(財富)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곧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이국의 모기와 엉덩이를 물어뜯는 개미,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숨 막히는 고온(高溫) 속에 메리다로 왔고, 오는 동안, 메마른 땅 위에서 알 수 없는 식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열을 지어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악마의 발톱을 거꾸로 세운 것 같은, 불꽃 같기도 하고 웃자란 난초 같기도 한 그 식물은 눈길 닿은 곳 어디에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유카탄반도가 원산지인 용설란 속에 속하는 에네켄(Henequén)이라는 식물로, 가시 돋친 잎에서 추출한 강인한 섬유질이 주로 선박용 밧줄을 만드는 데 쓰였다. 에네켄은 필리핀 마닐라삼과 더불어 세계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는데, 화물 운송량이 급증하면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었고, 이에 노동력이 달리자 아프리카 노예, 중국인 쿨리(막노동꾼)에 이어 한국의 노동자들까지 수입해 오게 된 것이었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에네켄 
크게 본 모습 
당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던 아프리카 노예들의 모습 이 에네켄은 원어 발음보다도 당시 한인들이 부르던 '애니깽'으로서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후 '애니깽'은 멕시코와 쿠바 지역의 한인 이민자나 그 후손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쓰이게 되었는데, 소설 속에서는 "그 식물은 눈길 닿은 곳 어디에나 있었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흰옷을 입은 인디언들이 낫을 들고 그 식물의 잎을 쳐내는 장면이 간혹 보였다. 흰옷을 입고 일하는 것이 몸에 밴 몽골리안들에게 그 장면 만큼은 낯이 익었다"고 했다.
그리고 "몇몇 눈치 빠른 사람들의 머리에 어쩌면 저 일이 자기들의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상의 모든 것을 증발시킬 듯이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마야 인디언들은 천천히 낫질을 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그 일은 하나도 힘들 것이 없는, 목가적이고 느긋한 오후의 산책처럼 보였다"고 썼다. 하지만 이것이 곧이어 현실이 될 가혹한 노동을 돋보이기 위한 서사라는 것을 나 역시 10년에는 몰랐던 바, 당시 에네켄 농장에서 실제로 일했던 최병덕 씨의 회상은 다음과 같다.
일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우리들의 손이 엉망이 되었는데, 특히 왼손은 에네켄 가시에 찔리고 긁혀 하루도 피가 멈출 날이 없었다. 발가락부터 무릎까지 온통 가시에 찔려 항상 몸이 엉망진창이 됐으며 가시가 엉겨 붙은 채 집에 돌아와서는 가시를 빼고 상처를 만졌다. 감독들은 일을 느리게 한다거나 잘못한다고 하여 채찍으로 때리기 일쑤였다. 이와 같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심각한 언어장애와 이질적인 문화로 상당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 인천시 월미도 인천한국이민사박물관)

당시 에네켄 농장의 한인 노동자들 / 얼굴이 아프리카 노예만큼 검다. * II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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