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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관한 저술 중에서 눈 여겨 볼 만한 책은 단연 제프리 버튼 러셀의 악에 관한 4권의 연작이다. 하바드 대학 등에서 종교학과 역사학을 강의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 바바라의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약 15년 전, 악에 관한 4권의 연작('데블', '사탄', '루시퍼', '메피스토펠레스')을 출간했는데, 이후 이 책은 악에 관한 명저가 되었다. 나 역시 그 책들을 탐독했는데, 그 이유는 악에 대해 알고 싶기보다는 선(善)에 대한 접근을 위해서였다.(아직까지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으나 악은 선에 비해 훨씬 구체화된 개념으로 존재한다) 어찌됐든 이 책은 나의 선과 악의 개념 정립에 도움을 주었고, 특히 악마에 대한 기독교 주장의 허구성을 파악하는 데 일익이 되었다.
연작 시리즈 첫번 째 책 '데블'과 저자
하지만 그와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연작 시리즈의 3번째 책 '중세의 악마 루시퍼' 등에서는 특히 상이점이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오늘 내가 악을 말함에 있어서는 그 책들의 내용을 중시하려 하는 바, 그것은 그 책이 그만큼 악에 관한 구체적인 서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꼭꼭 짚어 설명할 수 있어 본 블로그의 짧은 글에서의 피력이 보다 수월하다 여겨졌던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악에 대한 담론을 시작해보자.
먼저 서문의 한 대목을 빌려 오기로 하겠다.
악(살아 있는 존재에 고통을 부여하는)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되고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많은 문화 속에서 악은 빈번하게 의인화되어왔다. 이 책은 악이 의인화된 '악마(Devil)'의 역사를 다룬다.
맞는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악이 의인화된 존재가 바로 악마다. 악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서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개념이다. 아울러 악은 보편적일 뿐 아니라 인간의 경험 속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란 과거의 일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니, 불행한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악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악을 경험시켜주는 사람이 바로 악마일 터, 우리가 흔히 악마가 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본문에서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악은 왜, 어떠한 이유로서 인격화(의인화)되는가? 가장 기본적인 답은 이렇다. 즉 악을 외부로부터 침투된 고의적인 악이라고 여기기에 인격화된다는 설명이다. 이 악은 20세기에 만연된 공포개념 속에(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같은 극악한 상황) 오랜 시간 내재돼 있던 악마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급속도로 재현되고 있다.
1974년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악마의 존재를 믿는 사람의 숫자가 1965년 이후 37%에서 48%로 증가했고, 나머지 20%의 사람들도 악마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는 답을 했다 한다.(저자는 근거 자료까지 제시했다) 악마를 초자연적인 존재로 여기든, 무의식에서 비롯된 통제할 수 없는 분노로 여기든, 혹은 본래부터 가진 인간 본성의 한 부분으로 여기든 그 본질을 포착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늘 악의 낯설고 호전적인 힘에 의해 도전받고 있음이다.
이어 저자는 악이 인격화된 악마를 다음과 같이 풀어 설명한다.
악마란 호전적인 힘이 인간적으로(비종교적으로), 혹은 신적으로(종교적으로) 구체화된 것이고, 이 같은 호전적인 힘이 우리의 의식 밖에서 지각화 된 것이다. 이 같은 힘은 외경, 불안, 두려움, 공포와 같은 종교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 악마는 신들만큼이나 종교적인 의미를 표출한다. 실제적으로 악마를 경험해서 얻은 감정은 선한 신을 경험하고 얻어진 감정만큼이나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기독교의 원류가 되는)의 신과 달리 악마는 고의적인 파괴본능을 가지고 인격화된다. 때때로 그러한 악의는 하나님이나 여타 천상의 신들에게서 기인되고, 때로는 타락한 정신세계를 가진 이들의 소행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1215년 제 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는 악마(Devil)와 여타 악령 등(Demons)을 논제로 다뤘다. 이같은 구분은 근본적 문제는 아니지만 절대악이 인격화되는 발전과정을 설명해준다. 여러 시대와 사회를 거치며 호칭이나 성별 등이 바뀌더라도 이렇게 인격화된 존재를 (우리는) 악마라고 부른다.
러셀은 영화 '엑소시스트' 속의 악마를 '이 세상에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국가 정부를 선택하는 대신 어린 소녀를 재물로 삼은 어리석고 찌질한 악마'라고 폄하하며 조롱하는데,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저자의 주장은 나의 생각과 상충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을 보면 악마로 취급되는 존재들이 다수 출현한다. 이를테면 바알세붑(벨제붑)이나 리워야단이나 베헤모스 등이다. 하지만 이들을 악마로 보기는 힘드니, 흔히 거대한 악마처럼 여겨지는 바알세붑은 열왕기(하)의 서두에 딱 한 번 스쳐지나가는 지방 신(우상)에 불과하며, 괴수로 이해되는 리워야단이나 베헤모스가 악마라는 설명 역시 딱히 찾아보기 힘들다.(* 리워야단과 베헤모스에 대해서는 '예수가 말한 '지혜로운 뱀'- 리워야단 최후의 전쟁' 참조)
사탄의 대장이라는 루시퍼가 악마가 아닐 뿐더러 성서의 오역 과정에서 탄생한 실체도 없는 존재임은 앞서의 글 예수가 말한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진 사탄' -그 거대 집단의 반격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따라서 이상의 존재들은 절대로 악마가 될 수 없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타락시킨 우리가 미워하는 뱀도 직접 사탄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러셀의 설명에 가장 부합하는 악마가 구약에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저자 러셀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때때로 그러한 악의는 하나님이나 여타 천상의 신들에게서 기인된다'는 단서를 붙인 듯하다) 그 여호와의 악마적 행위를 구약에서 찾아보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어서 이 좁은 지면에 일일히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이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죄상을 최대한 축약해보면,
여호와는 자신을 받들지 않는 자에 대한 죄를 그 당사자 뿐 아니라 3~4대까지 걸쳐 응징하라 하고,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애급기 20:5)
아울러 이스라엘 족속 외에는 언약도 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기도 말며 혼인도 하지 말고 하고,(그 결혼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이교도가 됨을 염려해서인데, 이같은 소심함은 이럴 경우 족속을 멸하겠다는 협박으로까지 이어진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신명기 7:2-4)
이방의 민족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애석히 여기거나 용서하지도 말고 그냥 떼로 덤벼 죽이라 하고,
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신명기 13:7-10)
정복한 성들의 백성들은 물론 그 가축들도 모두 죽이고 성읍은 방화하여 초토화시키라 하고,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신명기 13:15-16)
항복하기를 거부하면 피정복민의 남자들은 칼로 다 쳐죽이고 여자들은 강간하며 아이들은 노예로 삼고, 기타 말 안 듣는 것들은 모두 죽여버리라 하고,(공동번역에서는 내용이 순화됐다)
만일 너와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신명기 20:12-16)
나아가 성인 남녀는 물론 어린이와 젖먹이, 소, 양, 낙타와 나귀까지 죽이라 명령한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사무엘상 15:3)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대규모로 살육해 마지않았으며(에스겔 8:17-18, 9:1-8/* '성서 속의 UFO/여호와라 불린 외계인의 대규모 학살극' 참조)
심지어는 아무 죄없는 처녀를 번제물로 가납하는 그야말로 최악의 악마적 행태를 보인다.(사사기 11:30-40/* 길르앗 용사의 딸 입다가 여호와에게 번제물로 바쳐진 사실은 본인의 책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다만 거기서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으나, 나는 이 대목을 그녀가 번제물로 태워진 것이 아니라 UFO를 타고 승천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성서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기록이 될 것이기에)
기독교에서는 신은 전능하며 전적으로 선하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위에 열거된 몇 가지 사례만 봐도 성서의 하나님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예수 역시 수없이 인간들을 저주하였으며 때로는 식물에게까지도 저주를 퍼붓는다.(마태복음 21:19/ 길가던 예수는 길가의 무화과에게서 과일을 얻고자 하였으나 나뭇잎 밖에 얻지 못하자 예수는 그 나무에게 네가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는 끔직한 저주를 선사한다)
아울러 신이 정말로 전능하고 전적으로 선하다면 오늘날 보여주는 성직자들의 부도덕한 행태, 이른바 교회내 성폭력 같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아야 옳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제 딸을 건드린 놈도 있는데, 하나님은 그런 자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저 사람이 드디어 악마의 초대를 받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이것은 성직자들의 악마적 행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기록에의 이기심과 호전성과 폭력성에 기인한다) 때로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낸 경우도 있다. "아이고. 이 양반이 결국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갔군" 하는 식으로. 이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를 낸다. 또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사람일지라도 적어도 불쾌한 얼굴표정 만큼은 숨기지 못한다. 그럴 때 나는 발언의 경솔함을 탓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을 바꾸진 않는다. 성서의 기록 자체가 도무지 선의 기록으로 여겨지지 않는 까닭이다.
아다시피 나는 이 블로그에서 쉽게 분노하고, 자비롭지 못하며, 배타적이며 타인에 대한 공격성 또한 강한 그 여호와를 애오라지 지구 바깥의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 여호와의 그 행태가 전형적인 호전적 인간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레셀의 저술로 돌아와 말하자면, 그가 말하는 악마는 확실히 '인격화된 악'이다. 그리고 그 인격화된 악마는 인간의 뇌로부터 기인한다고 설명한다.(다만 그 설명이 조금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악이란 인간 두뇌의 복잡성에서 오는 다양한 매카니즘의 산물인데, 다행히도 그 악은 수양으로 다스려질 수 있다고 한다.(실제로도 그렇다)
여기서 나의 경솔함을 한번 더 드러내자면,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 처음에는 교회가 수양을 위한 곳이라 생각했으나 내가 경험한 교회는 여호와의 이기심을 배우는 곳이었고 예수의 이중인격을 배우는 곳이었다.(예수는 산상수훈에서 인간이 실행하기 힘든 어려운 선을 거룩한 선인의 마음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자기 자신이 그러하지는 못했다)
흔히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오히려 이기적이다' 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이유로 인해 진실로 선함을 가르치는 교회는 장사가 잘 안된다. 본질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한 그럴 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기독교는 '진화하는 종교'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 역사적으로 그러해 왔던 바, 부패한 가톨릭에 저항해 탄생한 프로테스탄트가 그러했고, 그 프로테스탄트로부터 다시 진화의 가지를 편, 이른바 교파 분리가 그러했다.(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분명 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인간 두뇌의 복잡성에서 오는 다양한 매카니즘을 극복할 수는 없었을 터, 이는 제네바의 살인자라는 오명을 얻은 종교개혁가 칼뱅의 집단 살인행각에서 잘 드러난다. 자신은 선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적극적인 악, 그것도 가장 극악한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장로교회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장 칼뱅은 제네바를 장악한 5년 동안(이른바 신정정치 기간 동안)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고문과 살인을 멈추지 않았으니, 13명이 고문 끝에 교수형을 당했고 10명은 단두대로 보내졌으며 35명은 화형당했다. 그리고 76명은 국외로 추방됐다. 그러한 칼뱅이 지향한 것도 분명 선이었을 것이다.
장 칼뱅(1509-1564)의 초상과 중세의 고문 장면
나는 기독교의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진화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 이들 중의 한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개악(改惡)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어쩔 수 없이 악을 지향해야 하기에..... 러셀은 악의 문제에 관한 챕터를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다.
아마도 악마조차도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을 것이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 국내도서
- 저자 : 김기백
-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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