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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재하지도 않는 사탄에 얽힌 일화
    성서와 UFO 2019. 2. 5. 23:42


    흔히 악마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사탄(satan)은 '반대하다', '방해하다', '비난하다'라는 의미의 어근에서 비롯됐다. 이것이 그리스어로는 중상모략자, 위증자의 뜻을 가진 디아볼로스(διάβολος)로 번역되었고, 디아볼루스(diabolus)라는 라틴어를 거쳐 프랑스어의 디아블(diable), 독일어의 토이펠(Teufel), 영어의 데블(devil)이 됐다.  


    우리나라 성서에는 디아볼로스, 즉 사탄이 '사단'으로 번역된 탓에(오랫동안 쓰였던 개역성경에) 조금 연세 든 목사님들은 대부분 사단이라고들 하는데, 웬지 늘 귀에 거슬린다. 앞서 몇 차례의 자세한 설명을 달았지만, 신구약 성서 전반을 통해 별 역할도 없고 악마적 본질조차 모호한 이 사단이라 하는 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들 설교의 단골 손님이다. 그래서 어설프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얘기를 할 때면 꼭 사단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저 목불인견일 뿐이다.


     

    영화 '디아볼릭'의 포스터


    1996년 우리나라에서 '디아볼릭'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이 영화는 1955년 프랑스 영화 'Diaboligue'을 리메이크한 헐리웃 작품으로, 'Diaboligue'의 감독 앙리 조르주 클루조는 훗날 이 영화가 최초의 반전 영화, 공포 스릴러의 교과서로 불려질 만큼의 기막힌 반전을 연출해냈다. 디아볼릭은 '악마 같은'이란 뜻의 프랑스어이다



    'Diaboligue'의 두 여 주인공인 시몬느 시뇨레와 베라 클루조.(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들어봤을 듯)



    헐리웃 작품은 이자벨 아자니와 샤론 스톤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미녀 배우를 더블 캐스팅했는데, 캐스팅 자체로도 화제가 되었다. 스토리는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이자벨과 정부인 샤론이 공모하여 남편을 익사시키는 것이 전개 과정으로, 며칠동안 그 시체가 나타나지 않은 채 클라이막스를 향해 간다. 그리고 기막힌 반전이 펼쳐지는데, 영화의 포인트는 그 반전이 아니라 반전을 향해 가는 숨 막히는 과정이다.(스토리는 원작과 거의 동일하며, 그것이 단점이 되어 스릴감이 뒤진다는 평을 받게 되지만, 헐리웃 나름대로의 맛이 있는 영화다)



    'Diaboligue'의 한 장면


     

    과연 시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런 치명적 아름다움을 가진 악마라면 누구라도 한 편이 될 것 같다.(그저 나만의 생각인가?^^ 계속 무거운 주제의 글이 이어져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의 스틸 컷을 넣어봤다. 아무튼 늘 말하지만 우리가 무서워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은 악마가 아니라 악마 같은 사람이다. 악마란 종교세계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없는 허상이기에) 




    바로 앞 '악마를 찾아서'에서도 언급했거니와 구약의 악마들에게서 실질적으로 악마의 혐의를 찾아내기는 힘들고 출연 빈도도 현저히 낮다. 이는 사탄이라 불리는 신약의 악마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에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실린 이른바 '사탄의 유혹'이라는 불리는 내용들로서,(* '방황하는 예수 I' 참조) 여기서 광야의 예수 앞에 나타난 사탄은 예수를 제 편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가지 꼬드김을 행한다. 하지만 예수의 저항에 무기력하게 물러나고, 그나마 다시 나타났을 때는 더 맥없이 물러나는,(마가복음 1:39, 누가복음 4:41) 어찌 보면 오히려 곰살맞은 악마다.  


    그렇지만 목사들의 설교에서는 그런 악마들이 우리 주위에 넘쳐나며 갈수록 흉포해진다. 선과 악의 이분법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종교의 태생적 한계와, 악이 기승을 부려야만 밥벌이가 용이한 교회의 본질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창세기의 한 대목까지 악에 편승된다. 그 어처구니 없었던 일화는 위 영화가 나올 무렵, 내가 잠깐 동네 교회에 다니던 시절의 어느 화창했던 일요일 아침에 생겨났다. 


    그날 설교에서 한참 주변의 악마들을 비난하던 목사님은 갑자기 다음 대목에서 목소리를 더욱 키웠다.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에 이르시길, 하나님께서는 땅을 정복하라 하셨습니다. 거룩한 우리 성도들은 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악마들과의 싸움에서 이겨 땅을 정복해야 합니다. 아멘."


    이에 신도들도 따라 아멘을 외칠 즈음, 그 엉터리 설교는 다시 엉뚱하게 비화된다.(당시의 유행이었는지, 아니면 요즘 교회에서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 교회에서는 유독 아멘을 수시로 외쳐댔다) 


      "예, 아멘. 맞습니다. 정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괜히 양보하지 마시고 정복하라는 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단 마귀와의 싸움에서, 주위 사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시고....."


    이쯤에서 나는 눈을 감고 딴 생각에 잠긴다. 그 딴 생각 중에서도 '빨리 이 말 같지도 않은 설교가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질 쯤, 목사가 나를 지목해 한마디한다. 


      "우리 성도님. 눈 뜨세요. 아멘."

      

    이에 놀라 후딱 눈을 뜬 나 역시 아멘을 따라 읊는데, 그 맥없는 목소리가 맘에 안들었던 목사가 다시 외친다. 


      "그렇게 하면 사단 마귀가 찾아옵니다. 더 크게. 아멘!"


      "(헉!)"


    이후 나는 다시 그 교회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목사의 부인과 민망한 조우를 해야 했다. 한전 민원실에서 였다. 그 부인은 담당자에게 연체된 교회 전기 요금을 분납으로 해줄 것을 사정 중이었고, 이에 대한 담당 직원의 대답은 시니컬했다. 


      "그래도 전기 요금은 계속 나갈 텐데, 그럼 다음 전기 요금은 어떡하실 거예요? 그러지 마시고 전기 사용을 줄이시라니까요. 밤에 십자가 불도 좀 끄시고....."


    그러면서 직원은 재촉하는 표정으로 뒤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았고, 그 바람에 덩달아 고개를 돌린 목사 부인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아, 저는 뭐 바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한 말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허둥지둥 민원실을 나왔다. 내가 왜 그래야 했는지 모르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장의 민망함이었다.(당시 전기 증설이 급박한 입장이었음에도)


     '남의 돈 먹기가 그리 쉬운가? 헌금을 거두는 데도 스킬이 있어야지, 그렇게 매련없이 헌금을 강요하니 역효과가 날밖에. 사탄을 그렇게 값싸게 이용해먹으면 아무리 악마라도 자존심이 상할 거야.' 

      

    나오면서 이렇게 두서없이 중얼거렸던 듯한데, 마음 같아서는 정말이지 유명 대형교회의 신도로 등록해 그들의 빼어난 헌금 모금 방식을 배워 오시라는 어드바이스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헌데 그 한전 직원의 말처럼 밤에 교회 십자가 불은 좀 꺼뒀으면 한다. 국가의 전력 낭비가 걱정되는 면도 있지만 혹시라도 그 불빛을 보고 자존심 상한 악마가 찾아올까도 두렵다. 


    앞서 '거대한 공동묘지 서울?'에서도 말했듯 신앙인이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면 신은 그 주위를 떠나게 되는데, 크리스트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저버린 저들 성직자들은 그 사탄을 대적할 힘이 없을 것 같기에..... (목사님이 남 걱정하실 때가 아니라는 말씀. )


     

    외국 블로그 'When Foreigners See Seoul At Night For The Fist Time.....'에서 발췌한 서울 밤하늘의 십자가.(그나저마 서울의 미세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 성서의 '사단'은 1998년에 개정된 개역개정판부터는 정식으로 '사탄'이 됐는데, 만일 사탄이란 이름의 악마가 정말로 존재하다면 매우 기뻐했을 듯하다. 1938년도부터 무려 60년 간이나 잘못 불려진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셈이니.....  아울러 개역개정판 출간은 한국어 성서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대한성서공회에도 매우 기쁜 일이었으니, 난해한 한자어, 시대에 맞지 않는 맞춤법 등의 몇몇 오류와 장애인 비하 단어 등을 바로잡은 개역개정판 덕에 다시 강남의 빌딩 몇 채가 더 불어났다. 그간의 영화는 2012년 저작권이 만료되며 아쉽게 끝이 났지만..... (이후 한국어 성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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