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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한 공동묘지 서울?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19. 2. 3. 03:01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과소함은 앞서 '침묵하는 예수 그리스도'에서 언급한 바 있다. 까닭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은 그 많은 교회 앞에 놀라 자빠지기 일쑤인데,(불국사 석굴암을 위시한 한국의 대표적 관광 명소는 대부분 불교 유적이므로 그들의 인식에서의 한국은 불교 국가이다) 그중 한 일본소녀가 말했다는 서울의 밤풍경에의 묘사는 다소 충격적이다. 


      "내려다 보이는 서울 밤하늘의 빨간 십자가들이 너무 무서웠어요. 서울에는 십자가(교회)가 왜 그리 많은지..... 마치 거대한 공동묘지에 온 것 같아요."


    이상은 내가 오래 전 신문 기사에서 본 내용으로, 아마도 그 소녀는 남산 하야트 호텔 쯤에 투숙했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내려 본 풍경을 읊은 듯하지만, 꼭 그곳이 아니라도 서울에는 정말로 교회가 많아서 어떤 상가건물에는 서너 개씩의 교회가 들어서 있기도 하다. 그래서 꼭 위의 일본 소녀가 아니라도 서울의 밤 풍경을 본 외국인들은 아래와 같은 착각을 하는 모양이다. 



    일본 블로그 '일본인이 서울을 보고 놀라는 것'에서 발췌한 사진 





    또 다른 블로그 '외국인이 서울을 보고....'에 실린 사진들



    앞서 말한 일본 소녀의 언급을 넘어 외국인들이 서울을 보고 놀라는 것은 대동소이하니, 그것은 서울에(포괄적으로는 한국에) 교회가 무지무지하게 많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사항은 서울에 교회가 많다는 사실이 아니라 교회의 십자가를 보고 왜 무덤을 연상했을까 하는 것이며, 나아가 왜 공포를 느꼈을까 하는 것이다. 


    십자가가 무섭다는 말과 서울이 거대한 공동묘지 같다는 소녀의 표현은 매우 솔직한, 느낌 그대로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은 무척 놀랍다. 십자가는 예수의 거룩한 죽음에의 상징을 넘어 이제는 예수의 상징, 기독교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그것은 안식에의 상징이기도 할 터, 무덤에 십자가를 세우거나 표식을 하는 것도 그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그래서 서울의 그 많은 십자가를 보고 '서울에는 왜 이리 무덤이 많지?'라는 인식을 가졌으리라. 내가 놀랍다는 것은 그런 십자가가 공포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십자가는 악마나 악령을 쫓는 축사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공포영화 속에의 십자가는 흔히 축사의 도구로 쓰인다. 그래서 과거의 드라큘라들은 십자가 형상만 봐도 즉사했다. 다만 세월이 흐르며 최근의 드라큘라는 꽤 면역력을 지녀 과거처럼 죽거나 혼비백산해 도망가지 않고 그저 십자가를 만진 손에 약간의 화상만을 입는다.(* '드라큘라 백작의 억울한 누명' 참조) 과거 화제작이었던 영화 '엑소시스트'에서도 악마의 위력은 강해, 체력이 달렸던 늙은 신부는 악마와의 싸움에서 기력이 쇠해 죽는다.



    소녀의 몸 속에 들어간 악마가 몸을 띄워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는 '엑소시스트'의 명장면


    소녀 몸 속의 악마가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노신부의 엑소시즘에 악령이 괴로워 하지만 기력이 소진된 신부는 결국 죽고 만다.    



    거론한 '엑소시스트'는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이었던 영화로 그 장르를 떠나 명화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이제는 고전이 되었던 바, 요즘 영화 속의 악마는 그때보다도 훨씬 강해진 느낌이다. 하긴 요즘 사람들이 내성이 강해진 만큼 더욱 자극적인 악마가 필요할 터인데, 얼마 전에 본 미국 드라마 속의 괴물 형상의 악마는 그 힘을 떠나 매우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 거기서 그 악마는 엑소시스트(악마추방자)로써 등장한 신부가 내민 십자가에 놀라기는커녕 망연자실해 있는 신부의 십자가를 나꿔채 가볍게 부러뜨러버린다. 그리고 신부는 악마에 의해 목숨을 잃는데, 이때 악마는 신부가 죽기 전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내가 왜 십자가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는지 궁금하지? 너는 지금 나를 보고 매우 놀라고 공포심을 가졌기 때문이야. 그로써 너는 너의 신을 부정한 셈이고 네가 든 십자가는 그 순간 위력을 상실했던 것이지."




    제목은 알 수 없지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간단치 않으니 비록 악마의 말이라 해도 커다란 울림이 있다.  신앙인이 순간적으로나마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면 신의 위력은 그 주위를 떠나게 된다는 의미이기에.... 다만 이것은 매우 어려운 주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다시 읽은 칼 바르트의 논문 '회의와 신앙'에서의 지적이 새삼 가슴에 남는다. (* '칼 바르트에 대해서는 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참조)


    .....이와 마찬가지로 참 신앙도 한갓된 실용적인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적인 신앙 역시 언제라도 소용에 닿는 신앙의 확실성을 요지부동하게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믿사오니,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마가복음 9:24) 욥,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파스칼, 키르케고르가 말하고 있는 신앙은 노심초사 애써 얻은 것이기는 하지만 다시 사라질 수 있는 무조건적인 신뢰인 것이다.


    성폭행과 교회자금 횡령의 범죄가 거의 매일 뉴스를 타는, 그래서 이제는 마치 교회가 범죄의 온상이 된 듯한 느낌마저 받는 요즘에 있어서는 성직자들의 신앙이라는 것도 이와 같은 포말처럼 여겨지는데, 더욱 딱한 것은 그럼에도 그런 교회에 목메며 '목사님, 목사님, 우리 목사님,', 혹은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을 외치는 교인들이다. 그래서 칼 바르트는 다시 이렇게 일갈한다. 


    자신의 상품을 팔려고 하는 장사치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또 절대적인 지식을 터득하지 못한 스승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한다는 것도 현명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벗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고결한 일이다. 그런 신뢰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확실이 알게 될는지는 모르지만, 그 경우에 신용을 잃는 자는 신뢰한 사람이 아니라 그 신뢰를 악용한 사람이다. 


    하지만 신뢰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깊은 상처가 남을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아무튼 지금 대한민국의 성직자들은 온통 딴생각에 골몰해 있는 듯해 걱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까지 보이고 있는 바, 저 많은 교회들은 그저 예수를 팔아 밥을 먹고자 하는 상점이요, 성직자라 하는 자들은 그 상품을 파는 장사치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이것이 내가 성직자를 걱정하거나, 교회를 걱정하거나, 혹은 대한민국의 기독교를 걱정해 하는 말은 아니다.(장사하는 직업을 비하해 하는 말은 더욱 아니다)


    * 참고적으로 말하면 대한민국의 개신교회 수는 78,000개로 편의점 수 25,000개보다 3배 이상 많다.(2014년 12월 11일 JTBC 뉴스룸)



    사실 어느 교회를 지목하고 싶었지만 보나마나 또 당하게 될 터, 그저 두루뭉술한 사진을 실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기독교에서 매양 말하는 사탄이 정말로 나타나면 어떡하나 해서 이다. 앞서 언급한 악마의 말처럼 크리스트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저버린 저들 성직자들은 그 사탄을 대적할 힘이 없을 것 같기에..... 아니, 그건 절대적으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걱정은 붙들어매도 괜찮을 듯싶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우리에겐 마루치와 아라치가 있는 바, 만일 악마가 나타나면 틀림없이 그 친구들이 처치해줄 것이다. 

     

     

    도시에 나타난 악마와 싸우는 마루치 아라치
     

     

    ㅎㅎ 이건 물론 농담이다. 본시 사탄이란 기독교가 만들어낸 무존재의 존재이니 실질적으로 존재할 리 만무하다. 성서에 나오는 여러 악마들은 모두 신의 신통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도구에 지나지 않는 바, 말하자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확장 같은 것이다. 그리고 서두에 담은 내용 대로 소녀가 십자가를 보고 무덤을 연상하고 더불어 공포심을 느끼는 것을 보면 신 또한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말이 나온 만큼 다음 회에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구약의 악마들을 한번 찾아가 볼까 한다. 그것들이 허상임을 증명코자 하는 것이다.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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