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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 발견된 클레오파트라 얼굴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9. 5. 15. 03:16


    지난 2008년,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세계적으로 한바탕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투탕카멘 무덤의 발굴에 비견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상히도 우리나라에는 기사가 소개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우선 우리나라에서 외신(최초 보도는 이탈리아의 il messaggero 지)을 접하는 것이 늦었고, 외신을 접했을 때는 이미 그것이 진위 논쟁에 휘말려 있었던 바, 기사로써의 가치가 상실돼버렸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그것에 전혀 깜깜이가 되었지만 어찌됐든 페이크 뉴스를 보도하는 것보다는 나았을는지 몰랐다.(그렇다고 그것이 지금 가짜로 결론지어진 것은 아니다)


    여하튼 그 발견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사실이었는데, 여담이지만 그 무덤의 발굴을 주도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고고학자 캐서린 마르티네즈(Kathleen Martinez) 박사가 클레오파트라에 비견될 만한 미인이라는 것도 번외의 관심거리로 작용했다. 이탈리아의 il messaggero 지의 기사를 받아 온 영국의 The Times 지는 '이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1922년의 투탕카멘 이후 최고의 고고학적 발굴이 될 것'이라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The Times 판매 부수의 위력을 등에 업은) 캐서린 마르티네즈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으로, 9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뇌색녀라는 점도 화제거리가 되었다. 



    '미녀'라는 단어와 함께 '아마츄어'라는 수식어도 함께 따르는 캐서린 마르티네즈



    마르티네즈는 처음부터 발굴의 촛점을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두 사람의 시신이 같이 묻혀 있을 것이라는 데 두었다. 기원전 31년 옥타비아누스와 로마의 패권을 두고 싸운 세기의 대전(大戰)인 악티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대패했고 이후 이집트로 돌아온 두 사람은 거의 한날한시에 죽었던 바,(☞ '클레오파트라의 최후') 마르티네즈의 이 같은 추론을 억측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황을 미뤄보면 그러할 개연성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장소가 마르티네즈에 의해 발견되어졌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과 70인역 성서')에서 서쪽으로 45km 떨어진 아부시르에 있는 타포시리스 마그나(Taposiris Magna) 사원 유적의 지하에서였다. 타포시리스 마그나 사원은 프톨레마이오스 4세(BC 221-203) 때 건립된 이시스 여신의 신전과 그 부대 시설로서 서방에는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인해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는데,(신전보다는 요새로서) 이후 다시 관심에서 멀어졌던 곳이 마르티네즈에 의해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었다.




    아부시르 위치와 타포시리스 마그나 사원의 원경

     

    가까이서 본 타포시리스 마그나 사원


    사원의 내부



    타포시리스 마그나 유적을 둘러보는 마르티네즈



    무덤 방은 사원 지하 120m 터널에서 발견되었다. 이 터널은 무덤을 만들기 위해 조성한 것이 아닌 군사용 터널로 여겨지는데, 아무튼 무덤은 그 길 어디에서 발견되어졌고 그곳에는 그녀가 고대하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부부의 유해가 놓여 있었다. 만일 이것이 리얼이라면 가히 세기적인 대발굴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단지 추정일 뿐 그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어디 다른 곳에 그 두 사람의 DNA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에.....)




    터널의 입구


    마르티네즈가 주장하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유해


    위의 작은 사진은 그녀가 발굴한 프톨레마이오스 5세(BC 203-181)의 석회암 비석으로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시스 신전의 제사장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내용과 왕의 가족 관계 등이 기록돼 있다.(105X65X18cm로 클레오파트라 여왕과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다)



    그녀는 이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유적지에서 수습된 몇 개의 유물을 제시했는데, 그 첫 번째가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이 새겨진 은화 한 닢이었다. 타포시리스 마그나는 왕궁이 아닌 사원 건물이긴 하지만 클레오파트라와의 연관성을 증명할 수 있는 유물이라는 것이었다. 곁들여 그녀는 여인의 작은 두상 하나를 소개하며 그것이 클레오파트라의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에사리온(클레오파트라의 아들)의 두상을 제시했다.(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타포시리스 마그나가 클레오파트라의 무덤이라는 결정적인 증빙 유물이 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위 유해의 한 구는 안토니우스가 아니라 카에사리온의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동전 속 인물은 과연....?

    이 은화 속의 여인은 내가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이라고 소개한 아래 로마시대 조각상과 확실히 닮은 구석이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정말로 미인이었나?'


    클레오파트라 두상의 프로필



    마르티네즈가 주장하는 클레오파트라 얼굴


    마르티네즈가 카에사리온이라 추정하는 유물


    신시내티 박물관의 카에사리온 두상

    클레오파트라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이에서 난 아들로 알려져 있다. 클레오파트라 사후 멀리 에디오피아 남쪽까지 도망갔으나,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 왕으로 책봉할 것이라는 말에 속아 귀국하다 붙잡혀 죽는다.('클레오파트라의 최후')



    그런데 이후의 분위기는 마르티네즈의 기대와는 반대로 '사실 무근' 쪽으로 흘러갔다. 특히 카이로 대학 고고학 교수 압델 하림은 이에 회의적이었다. 그의 반대 주장은 한마디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을 왜 수도 알렉산드리아로부터 45km 떨어진 곳에서 찾느냐'는 것이었다. 아울러 마르티네즈가 제시한 유물들은 당시 이 지역을 통치했던 귀족의 것일 뿐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 주장했다. 게다가 같이 무덤 발굴에 참여했던 이집트 고고학의 권위자 자히 하와스(이집트 고고부 장관 역임)조차 처음의 자세를 바꿔 '이집트에서 신전에 무덤이 조성된 예는 없었다'며 마르티네즈의 주장을 일축시켰다.






    마르티네즈와 함께 무덤 발굴에 참여한 자히 하와스는 처음에는 발굴에 적극적이었고 최초 보도를 한 이탈리아 언론을 상태로도 설레발을 친 인물이었으나,



    마르티네즈가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음에 화가 났던 것일까, 갑자기 '근거 없음'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그래서 이 두상이 클레오파트라의 것인가 아니가의 판단은 오롯이 보는 이의 몫이 됐다.

    여러분들의 판단은 어떠신지요?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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