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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 죽음의 비밀(I) - 그는 언제 죽었나?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9. 5. 5. 22:55


    예수가 죽은 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아래 성서의 문장에 의거, 그 대략이 짐작되어질 뿐이다. 


    디베료(티베리우스)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안티파스)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누가복음 3:1-3)



    티베리우스 황제(재위 AD 14-37)의 상

    율리우스 케이사르 함대 사령관이었던 아버지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어 군인으로 봉직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양자가 됐다. 56세에 황제에 오른 후 안정된 통치로써 로마 제국의 기틀을 닦았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재위는 AD 14년부터였으니 그 열다섯 해라면 AD 28년이 될 터이다. 예수는 이때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므로 그때의 나이가 33살 쯤이었겠는데, (BC 5년 탄생을 근거로 할 때 ☞ '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 III' ) 보통 예수의 활동기간(이른바 공생애)을 3년으로 추정하고 있는 바, 그가 죽은 연도는 AD 31년 초가 될 것이다.(유대력 니산 달인 1월에 죽었으므로) 즉 예수는 서른 여섯 해의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것이다. 


    예수가 죽은 해는 이렇게 추정할 수밖에 없으나 성서에서의 죽은 날짜만큼은 명확하니 1월 13일이나 14일 중의 하나이다. 그 두 날짜가 양립하는 것은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에 써 있는 유월절 만찬, 즉 '최후의 만찬'이 벌어진 날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인데, 공관복음서의 기록을 따르자면 최후의 만찬이 있던 날은 유월절 하루 전이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마가복음 14:1-18)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건물

    예루살렘 성 시온 문 근방에 위치한 1300년 대의 건물로 마가의 집 터에 지어졌다는 전승이 전한다. 오스만 제국 이후로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1층에는 다윗 왕의 가묘가 있고 2층에는 '마가의 다락방'으로 불리는 홀이 위치한다.


    '마가의 다락방'

    기독교인들이 최후의 만찬 장소라고 여기고 있는 이곳은 사실 예수 시절의 그곳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이다. 차라리 다락방이라면 그때의 것이라 생각되어지기라도 하련만.... 그래도 늘 관람객이 북적대는 이유는 그저 아래 그림의 유명세일 듯하다.

     

    '최후의 만찬'

    이탈리아 산타마리아 델라 그리치 수도원의 정면 벽을 장식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프레스코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림이다.



    그림의 원경(그림 크기는 910x420cm)


    산타마리아 델라 그리치 수도원



    유월절 전날의 만찬에서 예수는 제자들 중의 한 사람에 의해 자신이 팔릴 것을 예언하는데, 그날 밤 정말로 유대 성직자들의 무리에 붙들려 대사장 안네스의 집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예수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형을 당해 죽는다. 즉 니산 달(1월) 14일인 유월절 날에 죽은 것이다.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만찬 직후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십자가 형을 당하는데, 그날이 1월 13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한복음 19:30-34)


    즉 요한복음 속의 예수는 유월절 하루 전인 13일 날(금요일) 죽었음으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불길한 날 '13일의 금요일'은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말이다. 참고로 유월절(Pascha, Passover)은 과거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급(出埃及: 이집트를 탈출함) 전야(니산 달 13일)에 있었던 여호와의 응징이 양의 피를 바른 히브리인들의 집은 유월(踰越, pass over)한 것을 기념하는 유대인의 전통 축제인데, 훗날 예수의 처형이 유월절에 행해졌으므로 칼케돈 공의회(☞ 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II )에서 이를 폐지하고 비슷한 날짜인 부활절을 명절로 대체시켰다.


    ~ 천주교에서는 유월절을 과월절(過越節)로 표기하는데, 낱말만 다를 뿐 똑 같이 '넘어간다'는 의미이다. 성서에서 유월절을 무교절과 혼용해서 쓰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이날 유월절에 무교병(無酵餠, 효모를 넣지 않은빵)을 먹는 관습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인들은 급히 이집트를 탈출하는 바람에 효모를 넣어 구운 빵을 만들 짬이 없었던 것인데, 유대인들은 조상들의 어려움을 되새기고자 유월절 날에는 효모를 넣지 않은 딱딱한 빵을 먹었다. 



    1800년 대의 골고다 언덕

    영어 'skull Hill'로 번역되어지기도 하는 이곳의 당대 명칭은 해골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크파이온(Κρανίου)에서 비롯된 칼바리오(calvario)였다. 이것이 '고난'의 의미인 영어 캘버리(calvary)가 됐는데 우리나라 말로는 요상하게 '갈보리'가 되어 교회의 이름으로 흔히 쓰인다. 골고다(Golgotha)는 의외로 아랍어라 한다.


    지금의 골고다 언덕

    이곳이 예수가 처형된 곳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는 바, 이곳 역시 전승일 뿐이다. 골고다 언덕 아래는 오래 전부터 예루살렘의 주요 버스터미널으로 개발돼 일찌감치 옛 자취를 상실했다.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하는 또 다른 골고다 '정원 무덤(Garden Tomb)'

    18세기 독실한 크리스천이던 찰스 고든 장군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멀리서 이곳을 보고 얻은 영감에서 비롯된 예수 처형 장소다. 발굴 결과 실제로 이곳에서는 오래된 무덤들이 발견되었는데, 예수 당대의 것이라는 신빙성이 희박함에도 이곳 역시 늘 관람객들로 붐빈다. (찰스 고든 장군 ☞'난세의 영웅 이수성')


    1800년 대의 '정원 무덤'



    이렇듯 두 날짜가 양립하지만 예수가 죽은 날은 14일로 여겨야 옳을 듯하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하루 계산법은 자정을 기준으로 하는 우리 현대인과는 달리 일몰에서 다음 날 일몰까지였기 때문이다. 즉 요한복음 속의 예수는 13일 날 처형되었으되 사망 시점은 제9시(오후 6시)이니 14일 날 죽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성서의 모든 기록을 종합해보면 재판은 오전 9시, 날이 밝아 시작됐고 십자가 형은 정오에 거행됐으며 예수는 그 십자가에서 6시간 정도를 매달려 있다 죽었던 바, 1월의 오후 6시는 이미 일몰이 시작된 시점이다)




    '불길한 날 13월의 금요일'은 그저 허구일 뿐.



    따라서 병원식의 사망 선고를 해보자면 예수의 사망 시기는 AD 31년 1월 14일 오후 6시, 사인은 십자가 형으로 인한 질식사가 될 것이다. 아울러 제육시(오후 3시)로부터 예수의 사망 시각인 제구시(오후 6시)까지 있었다는 어두움(마태복음 27:45/마가복음 15:33/누가복음 23:44)을 일식과 같은 현상으로 해석해 억지로 천문학상의 기록을 꿰맞추거나 당시의 니케아, 지중해 지진 등과 연결시켜려는 시도가 있으나 내가 볼 때는 타당성이 전혀 없다. 


    설사 그날 일식이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오랜 시간 지속되는 일식은 있을 수가 없으며,(길어봐야 5분 정도) 설사 인근에서 지진이 일어나 그 흙먼지가 태양을 가렸다 하더라도 그 흙먼지가 3시간 후 깨끗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일식설은 그리스 역사가 플래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해묵은 주장이며 지진설은 미국 슈퍼소닉 지오피지컬 팀과 독일 지질과학 연구소의 주장인데, 지오피지컬 팀의 윌리엄스 박사는 이를 근거로 예수의 사망일을 AD 33년 4월 3일로 추정하기도 했다.(성서의 날짜 까지 바꾸다니..... --;;)


    따라서 복음서에 실린 어둠 등의 기록은 그저 레토릭에서 비롯된 과장일 터이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살아생전 온갖 기적을 창출하던 예수가 그와 같은 이상 현상도 없이 밋밋하게 사망하는 것은 어쩌면 더 어색한 일일는지도 모르기에..... 게다가 그는 곧 부활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킬 몸이 아닌가. 하긴 그 부활이라는 것도 각 복음서마다 각양각색이긴 하지만.....

     

    * '예수 죽음의 비밀(II) - 유다는 왜 예수를 밀고했나?'로 이어짐.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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